기획보도
‘서울의 사회복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지난 1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시민복지기준’ 설정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시민 복지기준 어떻게 만들까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세미나
‘서울의 사회복지 기준,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까?’

지난 2월 서울시는 ‘서울시민복지기준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 위원회는 소득·주거·돌봄·교육·건강 등 5개 분야에서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복지의 기준을 9월 말 확정·발표할 예정이다. 서울시민에게는 몇 ㎡의 주거공간이 필요하고 한 달 소득은 얼마쯤 돼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답하고자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와 서울시민복지기준추진위원회(공동 위원장 김연명)는 지난 10일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대회의실에서 ‘서울시 사회복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일본 도쿄와 영국 런던의 사례를 제시하고 서울시민을 위한 복지 기준을 가늠해 보는 대안을 제시했다.

쟁점·실현 가능성

‘서울시민복지기준’은, 대부분의 지방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심지어 서울 사람조차 아직 잘 모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제 이 용어를 알아야 할 때다. 서울시는 올 9월 말께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복지 기준을 내놓다. 서울시민이라면 자신이 그 기준에 맞게 살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이 아닌 수도권과 지방 사람은 더욱더 알아야 한다. 왜냐면 서울시가 만든 기준이 자신이 살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수준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서다. 서울시의 복지 기준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자체에 좀더 복지 정책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김연명 중앙대 교수는 10일 열린 토론회에서 ‘서울시민복지기준 설정의 의의와 과제’라는 주제 발제를 통해 “이 기준은 광역자치단체 최초의 실질적인 종합 복지계획”이라며 “중앙정부의 복지·의료·주거·교육정책의 수준을 높이고 광역·기초 자치단체의 복지정책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시민복지기준이란? 서울시민복지기준이란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한 소득·주거·돌봄·건강·교육의 5개 분야에서 서울시민 누구나 누려야 할 복지의 기본 수준을 말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거 공약 중 하나였다. 이런 기준은 왜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김경호 서울시 복지건강실장은 “서울은 그동안 급속한 발전을 통해 경제규모에서 세계 20위권의 대도시로 성장했지만 서울시민이 느끼는 삶의 수준은 아직도 개발도상국 도시 수준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전국적인 평균을 기준으로 한 복지의 수준은 서울시의 높은 물가 등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서울시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차별적인 복지가 이뤄져, 서울의 복지수준이 시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결국 서울시 복지기준은 서울시민 누구나 누려야 할 복지기준을 만들어 복지 투자를 높이고 그에 걸맞은 정책을 추진해 서울시의 복지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있다.

서울시 복지기준은 시민참여를 통해 추진되는 게 특징이다. 이 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민 의견을 전달할 서울복지메아리단이 꾸려졌다. 여기에는 의사·교수·주부·학생·노점상·택시기사 등 다양한 직업의 일반 시민과 전문가 집단이 참여한다.

최저선이 중요할지
적정선이 더 중요할지
시민 눈높이에 맞추길

■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하나? 서울시민 복지기준은 ‘최저선’(minimum standards)과 ‘적정선’(descent standards)으로 구분된다. 최저선은 소득·대상·주거지 등 개인이 처한 환경에 관계없이 서울시민이라면 누구든지 권리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복지수준을 일컫는다. 적정선이란 서울시의 경제·사회적 발전 수준을 고려할 때 서울시민이 누려야 할 적절한 삶의 질을 보장할 수 있는 복지수준을 말한다.

교육의 예를 들어 좀더 쉽게 풀이하면 이렇다. 초·중·고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수업료 이외에 내는 학교운영지원비·학용품비·체험학습비 등을 단계적으로 무상화하는 것은 최저선에서 검토된다. 학교 보안관 확대 배치, 학생 고민 상담을 위한 전문상담인력 추가 배치 등은 적정선에서 검토된다.

김연명 교수는 “서울시복지기준이 상징성이 큰 서울시의 정책인 것을 감안하면 정책적으로 적정선이 더 중요할 수 있다”며 “질 좋은 공교육, 질 좋은 주거환경이 서울 중산층의 핵심 욕구인 만큼 서울시 복지정책과 중산층 시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적정선에 기준을 두고 관련 정책을 충분히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최저선과 적정선이라는 용어 자체가 상당히 어려워 시민들이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예컨대 주거와 관련해선 ‘서울시민은 원하지 않는다면 한데에서 자지 않는 권리가 있다’는 식으로 구체적인 슬로건을 내세워 다가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권혁철 <한겨레> 사회2부 수도권팀장도 “개념이 어려운 측면이 있어 일반 시민이 뭔지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회성 정책으로
끝나지 않도록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 실현 가능한가? 관건은 실현 여부다. 일본에서 한때 바람을 일으켰던 시빌 미니멈이 쇠퇴한 이유는 재원 확보라는 걸림돌 때문이었다.

김연명 교수는 “5개 분야에서 적정선을 모두 제시하고 이를 단기간에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적정선으로 나아갈 발판이 될 수 있는 핵심 정책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며 “가령 서울시의 공공병원 중 2~3개를 지정해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 운영 등 적정선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경혜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준을 만들고 있는 현시점에서 시민과 전문가들이 굉장히 의욕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며 “관건은 기준이 일회성 정책으로 끝나지 않도록 실행 가능한 범위 안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와 각 구청 간의 역할 배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최영준 고려대 교수는 “복지기준을 놓고 서울시와 자치구가 어떻게 역할을 배분해야 할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며 “강남구가 셋째 아이를 출산할 경우 500만원을 출산장려금으로 지급하고 있는데 모든 지자체가 이런 수준으로 맞추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지방 간의 복지 불균형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다. 정재철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시민 중 일부는 고등학교까지 지방에서 살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서울에 살게 된 사람”이라며 “그들의 부모를 위해 서울시가 공헌할 대안도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명 교수는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민복지기준에 열정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이번에 만드는 기준이 한국의 복지수준을 높여가는 데 디딤돌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내셔널 미니멈(National Minimum·국민생활 기본선)

국민의 생활복지에 꼭 필요한 최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한 나라의 경제 규모, 1인당 국민소득에 비춰 영양·주거·생활환경 등이 어느 정도가 돼야 하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내셔널 미니멈은 영국의 시드니·비어트리스 웹 부부가 1897년 함께 쓴 책 <산업민주주의>에서 처음 제시한 개념이다. 1942년 발표된 영국의 베버리지 보고서에서 내셔널 미니멈을 사회보장의 구체적인 정책목표로 정하고 최저한의 생활비를 제시했다. 내셔널 미니멈의 목적은 현재 국민생활 수준이 어느 정도고, 국민의 기대수준과 얼마만큼 격차가 있는지,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해 정부가 어떤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파악하려는 데 있다.


시빌 미니멈(Civil Minimum·시민생활 기본선)

시빌 미니멈은 1968년 2월 일본의 미노베 료키치 도쿄도 지사가 발표한 ‘중기계획’(1965~1971)에서 처음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시민이 쾌적한 도시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 조건을 말한다. 한 나라 전체 국민의 생활복지에서 필요한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내셔널 미니멈의 개념을 도시에 응용한 것이다. 시빌 미니멈은 내셔널 미니엄의 기준이 너무 낮기 때문에 도시 주민의 구체적인 수요와 필요를 반영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당시 일본의 보수 자민당 정권의 산업화 정책으로 빚어진 저임금, 열악한 주거환경, 환경오염에 맞서 복지와 환경 정책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시빌 미니멈은 일본의 다른 지방정부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빌 미니멈이 도입된 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지시를 이행하던 이전과 달리 자체적인 복지 정책을 펼쳐나갔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김성원 도쿄경제대 교수
일본 도쿄 사례

1970년대 도쿄 ‘시빌 미니멈’ 쇠퇴
‘지방재정 악화’가 가장 큰 이유

“현재 일본에서 시빌 미니멈은 거의 논의가 되지 않는 죽어 있는 단어다. 하지만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김성원(사진) 도쿄경제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1960~70년대 일본 시빌 미니멈론의 전개’를 주제로 발제하면서 이런 말로 포문을 열었다.

시빌 미니멈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일본 열도를 풍미했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산업화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빈곤과 열악한 주거환경 등의 문제를 낳고 있을 때였다.

이때 도쿄교육대 교수였던 미노베 료키치가 1967년 도쿄지사 선거에서 사회당과 공산당 등 야당 단일후보로 출마해 자민당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른바 ‘혁신지사’로 불린 미노베 지사는 여당의 산업화 정책으로 빚어진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복지와 환경 정책에 무게중심을 둔 시빌 미니멈을 강력히 진행했다. 1967년엔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69년엔 노인 의료비 무료화 정책을 도입했다. 시빌 미니멈은 다른 지방정부에도 파장을 미쳤다.

김 교수는 “정치적인 위협을 받은 자민당도 73년 ‘경제에서 복지로’ 정책을 전환하기에 이르렀다”며 “아동수당 지급과 노인 무료 의료비 정책을 도입하며 도쿄도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빌 미니멈은 73년 1차 석유파동 이후 일본 경제가 고도성장의 종지부를 찍으면서 급격히 쇠퇴해 간다. 지방재정의 악화가 가장 큰 이유였다. 70년대 말 일본 정부는 아동수당을 축소하고 노인의료 무료화 제도도 폐지해 버렸다. 이런 반복지 정책은 일본 경제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결국 일본의 젊은이들은 가족을 형성하는 데 소극적으로 변했고, 저출산·고령화로 성장 동력마저 잃는 직간접적인 원인이 됐다.

김 교수는 “한국은 일본보다 더 심한 가족 의존적인 국가인데다, 더 심각한 저출산·고령화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며 “일본의 시빌 미니멈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김보영 영남대 교수
영국 런던 사례

노동당 시장이 추진한 ‘런던플랜’
보수당으로 시장 바뀌어도 계속

“런던플랜은 노동당이 계획을 만들었지만 보수당이 그 정책을 물려받아 시행하고 있다.”

김보영(사진) 영남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런던시의 시민복지전략’을 주제로 발제하면서 진보적인 정당이 만든 계획을 보수적인 정당이 폐기처분하지 않고 진행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지방정부 수장의 당적이 여당과 야당으로 바뀌면 이전 정책을 휴지통에 집어던지기 일쑤인 우리나라에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런던플랜은 영국의 수도인 런던이 직면하고 있는 인구증가·경제성장·환경문제·빈곤과 차별 등의 문제를 해결해 영국의 수도를 다시 부활시키겠다는 각오에서 시작됐다. 이 플랜은 2000년 노동당 출신의 켄 리빙스턴 시장과 함께 많은 전문가와 런던시민의 참여로 출발했다. 기본계획이 나오는 데만 4년이 걸렸다. 2006년에는 다시 수정 보완되기도 했다.

런던플랜을 만드는 과정에서 눈여겨볼 점은 바로 시민 참여다. 김 교수는 “지방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이 아니라, 중앙정부, 지방정부, 시민, 비즈니스 관련자, 여러 이해 단체들이 참여해 플랜을 만들어 나갔다”고 말했다.

시장이 바뀌더라도 런던플랜이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 다양한 법적 장치와 근거도 만들어 놓았다. 이 때문에 런던시장이 보수당 출신의 보리스 존슨으로 바뀌어도 런던플랜은 큰 틀에서 변화 없이 추진되고 있다.

런던플랜의 또다른 주목할 만한 점은 ‘복지비용을 얼마나 투입했느냐’는 관료 중심의 발상이 아니라 ‘시민의 삶의 질을 어떻게 바꿔 놓느냐’는 시민 중심의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점이다. 이를 위해 런던 정부는 24개의 지표를 만들어 매년 시민에게 검증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런던플랜이 구체적으로 결과를 측정하고 투명하게 공개해 시민에게 검증하고 점검하는 방법을 활용했기 때문에 정당이 바뀌더라도 계속 추진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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