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리뷰] 특별인터뷰 : ‘원조 사회적 기업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원재 기자



»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박원순.
그는 기업가 정신을 체득하고 있는 전형적인 기업가다.

우선 시장을 포착하는 감각이 탁월하다. 그가 벌이는 모든 일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리고는 성공해 벤치마킹 대상이 된다. 한국 사회에 ‘빈 자리’가 너무나 많고, 그곳에 뛰어들어서 일을 벌이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기 경영전략서인 <블루오션전략>에 나올 법한 교훈이다.

또 기업의 힘과 혁신의 중요성을 믿는다. 기업이야말로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똑같이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늘 차별화를 고민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 사회의 진보를 평생 고민하는, 전형적인 운동가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지내면서 반부패 재벌개혁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엄청나게 많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 앞에 닥친 문제를 생각할 때마다 잠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신이 난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니까. 늘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생각하고 해결책을 메모한다.

기업가 정신을 가진 사회운동가이고, 시장의 빈 자리를 가장 먼저 포착하는 이 사람으로부터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까지 잘 알려진 ‘히트상품’이 나왔다.

“브랜드와 카피가 있으면 그게 바로 기업이지”

우선, 사회적 기업이라는 세계적 현상을 박원순 이사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미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정부, 기업, 비영리기관이 해결하지 못한 사회 문제를 푸는 새로운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 움직임에 대해 한국의 ‘원조 사회적 기업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 최근 사회적 기업이 많이 등장하면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 사회적 기업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시작되어 우리나라로 넘어온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그 말을 알기 전부터 우리 역사 속에서도 기업적 방법을 사회 문제 해결에 사용하는 활동이 많이 있었다. 예를 들면 아름다운가게도 그렇고, 거슬러 올라가면 과거 참여연대도 그랬다고 할 수 있다.

- 반부패 재벌개혁운동을 하던 참여연대도 사회적 기업이란 뜻인가?

= 브랜드가 있고, 카피가 있으면 기업 아닌가?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도 비영리 경영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업의 경영, 정부의 행정, 비영리기관의 경영이 모두 통한다. 참여연대도 마찬가지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었나?

= 참여연대는 정부 돈을 전혀 받지 않고, 기업에서도 거의 받지 않고 활동했다. 그래서 늘 수익모델을 고민했다. 회원 회비도 모아야 하지만, 수익사업도 고민해야 했다. 느티나무 카페 같은 곳을 열어 사업을 하기도 했다. 아름다운가게도 원래 참여연대의 사업 아이디어로 나온 것이다. 후원금 모금을 위해서도 혁신적인 기획을 많이 했다. 예를 들면 액티즌닷컴이라는 웹사이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여기서는 잘못한 정치인을 올려놓고, 회초리 한 대 때리는 데 1천원, 몽둥이는 3천원을 후원받는 식으로 꾸미려 했다. 때릴 때 소리도 나게 만들려고 했다. 웹에 국가보안법 장례식장을 열어놓고 국화를 바치는 데 몇 천 원씩 받는 모델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카페부터 인터넷 후원 방식까지 모두 기업가적 상상력이 가미된 기획이다. 또 사회적 가치를 위해 벌인 경제적 활동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면에서 현재의 사회적 기업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인간 박원순 몸속에 박힌 기업가 DNA

한 사람이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투신하면서 동시에 기업가 정신까지 갖추는 일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인간 박원순 안에는 사회적 기업가의 유전자(DNA)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일까?


- 애초부터 기업가 정신을 갖추고 있어서 그런 기획이 가능했나?

= 글쎄. 나는 학자이기도 하고 운동가이기도 변호사이기도 하다. 사실 모든 사람은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사회가 한 사람에 대해 하나의 역할로 규정해버리기 때문에 한 가지 모습만 나타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 다빈치나 아리스토텔레스를 보면 모든 것을 다 해내지 않았나?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이고, 동시에 예술가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모든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들을 발휘해볼 기회를 갖게 되면 비로소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 어떤 계기로 사회적 기업가 정신을 갖추게 되었는가?

= 사회적인 동기가 컸다. 우리 사회는 사회적 문제를 지식인이 해결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특히 나는 법률가였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제도를 어떻게 바꿀까, 시스템을 어떻게 만들까 하는 것에 온갖 고민을 다하며 운동을 했다. 그런데 사회운동을 하면서 말로 외치는 것보다 실제 살림을 도맡아 하는 일을 많이 했다. 역사문화연구소에서는 이사장도 했었고 운영 비용도 댔다. 참여연대에서는 사무처장으로 조직의 경제적 생존을 책임져야 했다.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도 벤처이면서 우리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며 고민인데, 그 살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제작소도 마찬가지다. 생존을 책임지다 보니 자연스레 기업가 정신을 갖추게 되는 것 같다.

박 이사 말대로 모든 인간이 전인적 삶을 지향한다면, 돈을 버는 영리기업가는 사회적 가치에 자연스레 관심이 끌리게 된다. 사회운동가는 혁신과 기업가 정신에 호감을 갖게 된다. 자신이 삶에서 채우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가능성이 높은 법”

그는 요즘 소기업에 관심이 많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농촌 마을과 작은 사업가들을 끊임없이 만나고 있다. 인터뷰 전날에도 경기도 남양주시를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1박2일 동안 만난 다섯 명의 소기업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를 열거했다.

- 소기업은 영리기업 아닌가? 그것 자체로 사회적 가치가 있는가?

= 기업과 정부, 비영리기관이 수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은 영리를 추구해야 한다든지, 국가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든지 하는 영역별 구분을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졌다. 기업이 사회를 위해 돈을 내겠다고 하면 안되나? 정부가 공공을 위해 수익성을 높이면 안되나? 사실 이런 경계가 모두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영혼이 있는 기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영혼을 갖고 있다면, 기업활동 자체가 사회운동일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기업이라고 하면 재벌, 큰 기업만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기업은 집에 컴퓨터 한 대 놓고 거리에 좌판 하나 놓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국민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장려하고 키워주는 것이 우리 사회의 큰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 우리나라에서 소기업의 경영환경은 어떤가?

= 사실 우리나라는 소기업이 성공하기에 장애가 많은 나라다. 예컨대 지적재산권 제도도 취약하다.

이런 문제는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정부가 해야 한다. 그런데 정작 이런 일을 해야 할 중소기업청이나 중소기업중앙회는 손을 놓고 있다. 중기업만 되도 매출이 몇 백억 원이다. 정작 있어야 하는 것은 중소기업청이 아니라 소기업청이다.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도 재벌 대기업을 비판하고 감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기업을 살려 대안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 소기업이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보는가?

= 소기업은 가진 게 없다. 하지만 그게 강점일 수 있다. 희망제작소 앞에 스타벅스가 있는데 그 바로 앞에서 20대 젊은이가 자동차를 대놓고 커피를 판다. 희망제작소 식구들은 모두 거기서 커피를 사다 마신다. 작아서다. 스타벅스와 공정무역으로 수입한 아름다운커피가 경쟁하면 누가 이기겠는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라. 다국적기업의 배를 불리겠는가, 제3세계 가난한 사람을 위해 공정 무역 커피를 마시겠는가? 결국 아름다운커피가 이길 수밖에 없다. 이게 소기업의 힘이고 선행의 힘이다.

다윗은 원래 골리앗을 이길 가능성이 높은 법이다. 다윗은 날렵하고 약점을 찌르기 쉽지만 골리앗은 덩치만 클 뿐이다. 무서운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기 어렵다는 선입견이다. 소기업의 천국을 만들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경제 흐름을 보면, 대량생산 제품보다 수공예품이나 개인 브랜드 같은 제품이 시장에서 더 먹히고 있는 추세다. 이 점에서 박 이사의 생각은 경영전문가들의 예측과 일치한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부의 미래>에서 미래 경제는 거대기업 대신 개인이 주도한다고 했다.

“정부와 대기업이 도와줘야 한다”

사회적 기업이 시장에 처음 발을 딛기는 너무나 어렵다. 우리 사회 소비자의 인식 부족 탓이다. 어떻게 시장에 진입하는 게 좋을까?

- 선한 가치를 지녔더라도, 사회적 기업이 처음 시장에 진입하기는 쉽지 않다.

= 예를 들면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이 만든 물건이라고 해서 일반 소비자에게 무조건 사달라고 할 수는 없다. 결국은 상품의 품질이 좋든지, 다른 곳에서 살 수 없는 제품이라야 한다. 물론 극복하기 어려운 핸디캡이 있다면 도움이 필요하다. 공공기관은 품질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장애인이 만든 물건이라면 구매해야 한다. 일본의 다나카와 현청에 가면 입구에 장애인들이 고용된 카페가 있다. 미국에는 굿윌이라는 사회적 기업이 있는데, 정부는 청소 용역 등을 가능하면 이곳에 맡긴다.

대기업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일본에서는 소규모 작업장이 유행이다. 작은 단위로 빵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대기업과 연계되어 기술 지도도 받고 일부 판매도 도와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면 기술도 키울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소비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품질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

박 이사는 “민주주의는 합리적 차별”이라고 강조했다. 핸디캡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만큼 공공부문이나 가진 사람들이 혜택을 줘서,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좋은 뜻으로 시작한 사회적 기업이긴 해도 처음 맞닥뜨린 시장은 매정하고 두렵기만 하다. 사회적 기업가는 어떤 자세로 시장을 대해야 할지, 원조 사회적 기업가인 박 이사에게 물었다.


- 사회적 기업가가 가져야 할 정신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기업가 정신을 갖고 도전해야 한다. 세상은 못할 것이 없다. 못한다는 생각, 상식, 기존 관념에 도전하는 것이 기업가 정신이다. 기존 관념에 따라가면서 하는 사업은 음식점밖에 없으니 대한민국은 음식점만 늘어난다. 알고 보면 음식점을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것에도 엄청난 창조성이 필요한데 말이다.

- 어딜 가나 경쟁이 치열한데, 도전만으로 잘될까?

= 사회적 기업은 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들어가려고 하기보다 농업과 같은 비어 있는 시장을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들어가려면 자본과 판로와 노하우 등이 필요하다. 이런 것들을 쌓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견뎌내기 쉽지 않다. 하지만 비어 있는 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단시간 내에 가능할 수 있다. 아름다운가게의 경우, 처음 들어갔으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도전, 혁신적 아이디어, 새로운 시장 기회 창출 의지. 영리기업을 경영하는 데도 어느 하나 빠짐없이 필요한 덕목이고, 기업가 정신의 핵심이다.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이 알려지기 전에 우리 곁에는 이미 기업가 정신이 있었고, 기업가 정신을 사회 문제 해결에 적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박원순 이사가 바로 그들 중 하나다.

정리=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김지예 연구원 minnings@hani.co.kr

박원순의 블랙박스

과거 자신이 기획했던 사회 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이야기하던 박원순 이사는, 문득 두툼한 자료집 한 권을 꺼냈다. 언뜻 보기에도 400쪽은 족히 되어 보이는, A4용지 크기의 제본된 자료집에는 <비상2004>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이 자료는 박 이사가 2003년 한 해 동안 꼬박 정리한 2004년의 사업기획서다.

예를 들면 ‘자선티브이’ 아이디어가 여기 있다. 기부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다. 또 누리꾼 기부 활성화 계획인 도티즌(도네이션+네티즌) 같은 개념도 있다. 아름다운가게에 대해서도 인쇄나 참기름, 미숫가루, 의류 등을 직접 만들어 판매하는 직영점을 운영해 보자는 아이디어가 있고, 휴면 계좌를 활용해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사업을 벌이자는 기획도 있다. 최근 재단으로 구현된 휴면예금 활용 방안을 미리부터 생각했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바쁜 시간을 보내는 박 이사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이 모든 사업을 기획했다고 한다. 자료집 맨 앞에는 ‘2003년 1월 북경 그레이스호텔 밤’ 같은 식으로 언제 어디서 작성했는지를 써두었는데, 출장 중 호텔에서나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경우가 많다. 이 중 아직 절반도 실현되지 않았다고 한다.

박원순 약력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서울대 사회계열 중퇴. 단국대 사학과 졸업. 런던대 정치경제대학원 수학. 1980년 사법시험 합격. 대구지검 검사.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참여연대 사무처장. 성공회대 겸임교수.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등을 거쳐 현재 아름다운재단 총괄상임이사,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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