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경제연구소·지역재단
지역기업실태 공동연구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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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지역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역발전 과제는 뭘까? 2008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서 30.6%가 ‘일자리 창출’을 꼽았다. 농촌에서 도시로 떠나는 가장 큰 이유를 물은 농촌진흥청의 한 해 전 조사에서는 39.5%가 ‘자녀 교육’을 들었다.
한겨레경제연구소와 (재)지역재단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건강한 지역정책 토론을 위해 지역산업과 지역기업의 현주소를 살피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하는 장을 마련했다. 양질의 일자리로 이어지는 건강한 지역산업을 구축하는 것은 결국 인구 유입을 유발하고 학교 문제까지 해결하는 정공법이기도 하다. 4월 한 달 동안 문경·상주·순창의 현장을 취재했으며, 지역소재 대기업과 지역밀착형 기업 및 지역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희망의 싹을 엿본 것은 성과였다. 각 지역의 특화산업들이 주민 고용과 지역경제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경의 오미자는 성장의 과실이 농가의 소득증대로 흡수되는 안정적인 구조를 정착시키고 있었고, 상주는 곶감과 한우 농가에서 각각 2000억원대 이상의 총매출을 올리는 규모화를 이뤄내고 있었다.
고창의 복분자는 지자체와 주민 및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지역산업의 추진체계를 잘 갖추었으며, 순창의 전통 장류업체들은 농촌형 가업의 기업화 모델로 진화하고 있었다. 보성 녹차의 후발주자인 하동 녹차는 명품 차별화로 착실한 기반을 닦아가고 있었고, 영월은 ‘박물관 고을’이란 이색적인 관광전략으로 연 100만명의 유료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박진도 지역재단 상임이사는 “지난 참여정부에서 뿌린 신활력사업의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라며 “지역 스스로 사업을 기획하고 집행하도록 함으로써 지역 특성에 맞는 산업의 기반을 닦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반적인 현실은 많이 실망스러웠다. 지역산업의 생태계가 망가져 있었다. 지역소재 대기업의 현지인 고용 비율은 대체로 낮고, 농산물을 비롯한 지역 원재료 구매는 기대 이하였다.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는 다수의 지역밀착형 기업들 또한 영세하거나 경영이 불안해 양질의 많은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형편이었다.
1980년대 말 이후 전국의 359개 농공단지에 5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들어섰지만, 지역경제와의 연계협력은 뒷전이었다. 입주 기업 수를 늘리고 지원하기에 급급했을 뿐, 그 기업이 지역경제 발전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는 정부 정책의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암담한 현실과 희망의 싹을 동시에 보면서, 연구진은 몇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기업 유치는 선이고, 기업은 클수록 좋다는 외부 이식형 지역발전 방식이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확인했다. 무조건적인 기업 유치가 아니라, 좋은 기업을 유치하자는 지역 리더들의 인식 변화도 감지할 수 있었다. 영국 남서부 콘월 지역의 에덴 프로젝트는 지역과 상생하는 좋은 지역기업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개장 10년 만에 국제적 생태 관광지로 떠오른 에덴 프로젝트는 농산물과 식료품의 80% 이상을 영세한 지역 농가에서 공급받고, 직원들이 나서서 주민들의 사업 구상을 컨설팅하고, 브랜드와 판로를 제공해 준다. 에덴 프로젝트와 주민들의 건강한 협력은 가치에 감동한 방문객의 증대로 이어졌고, 주민들의 관광 수입도 덩달아 늘어났다.
생산과 소비의 지역 내 순환구조가 지속가능한 지역산업의 중요한 기반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문경의 오미자산업은 총매출이 순창 장류산업의 5분의 1에 불과하지만, 농가소득은 10배가량 창출한다. 지역 가공업체들이 문경산 오미자를 구매하도록 처음부터 탄탄한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가구당 연 40㎏의 문경산 오미자를 구입해 집에서 담가 먹거나 직거래로 판다. 지역 가공업체가 지역농가의 수요처가 되고, 지역주민이 지역 가공업체의 소비자가 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냈다.
지역산업의 발전 전략을 세우고 이끌어갈 지역 내 추진체계 수립의 필요성 또한 높아지고 있었다. 복잡하게 중복되거나 부서별로 흩어져 있는 정부 예산 사업의 전략적이고 효과적인 추진을 위해서도, 개방적이고 투명한 예산 집행으로 외부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도, 민·관과 전문가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추진체계의 도입이 시급해 보였다.
인구의 공동화, 사회서비스의 결핍, 일자리의 상실. 그 악순환을 끊고 일어서자면, 먼저 지자체와 주민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의 싹을 북돋우자면 건강한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지금 정부 들어 포괄보조금 도입 같은 일부 정책의 진전은 있었지만, 경쟁력에 밀려 지역균형의 개념은 실종되고 말았다. 지역과 주민에게 이로운 지역정책을 생각하는, 배려의 철학이 절실히 요구된다.
“일반적인 생활수준이 아무리 높다 하더라도, 3분의 1이나 4분의 1 아니 10분의 1의 국민이라도 의식주와 생활의 불안을 느낀다면 국가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진보의 힘>(존 포데스타 지음)에 인용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연설문 가운데)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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