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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요즘 2012년 올림픽 준비로 부산하다. 그중에 ‘수도의 성장’(Capital Growth)이라는 재미있는 프로젝트 하나가 지난해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까지 런던의 근린 주거공간에 2012개의 시민텃밭을 조성한다는 내용이다. 런던 시민들이 가까운 텃밭에서 신선한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이를 통해 지역사회의 ‘녹색성장’을 도모하자는 기치를 내걸었다. 시에서는 시민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 텃밭 운영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빈 땅의 임대도 적극 주선한다. 런던의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공급체계’를 만드는 작업이다.
지금 영국에서는 뒷마당에 텃밭을 만들고 애완용 닭을 키우는 것이 대유행이다. 달걀도 얻고 동물의 성장 과정을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기회로 생각한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과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민텃밭 프로젝트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텃밭을 매개로 주민들 간의 교류가 많아지면서 행복지수 상승에도 기여하고 있다.
런던시 당국이 지역 먹을거리, 곧 로컬푸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시민단체인 서스테인(sustainweb.org) 산하에 런던의 건강한 먹을거리 생산과 소비를 연결해주는 런던푸드링크(London Food Link)가 조직된 것이다. 지금은 런던푸드링크의 회원 단체만도 250개가 넘는다.
런던시는 이어 2006년에 ‘런던을 위한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먹을거리’라는 2015년까지의 10개년 계획을 발표하고, 런던 지역에서 먹을거리를 매개로 하는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유기농과 근교에서 생산된 로컬푸드, 공정무역 먹을거리 공급 등을 통해 시민 건강을 증진하겠다는 장기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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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드 마일’ 단축해 탄소배출량 감축
이 과정에서 영국 음식은 먹을 게 없다던 기존의 이미지를 벗고, 런던의 식당이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다양한 문화권의 신선한 식재료를 지역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됨으로써 런던만의 다문화 음식문화도 꽃을 피우고 있다.
정부·시민단체와의 협력이 밑거름
런던의 로컬푸드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기까지 중앙정부 및 시민단체와의 전면적 협력이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 사태를 호되게 겪은 이후 ‘환경적 지속가능성’의 증진을 중심에 두고 환경식품농촌부(DEFRA)의 정책 틀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후 식재료 공공 구매와 로컬푸드 활성화 등에 본격적으로 나섰으며, 지역개발청과 지자체 역시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런던시는 2004년 먹을거리 분야와 관련 있는 각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런던푸드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실무 집행을 온전히 시민단체에 맡기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런던개발청(LDA)에서 인건비와 경비를 전적으로 지원하되, 사업 운영은 런던푸드링크가 책임지는 협력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시에서 발간한 2006년의 10개년 계획 역시 몇 년 동안 각계각층의 자문과 시민 의견을 수렴한 끝에 만들어진 민관의 공동작품이었다.
한식 세계화를 통한 농식품산업의 활성화와 첨단의료복합단지 건설을 꾀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런던의 노력에서 이 둘을 연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어야 할 것이다. 산업도 산업이지만 먼저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생계와 건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녹색성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글·사진 허남혁 대구대 강사(지리학) everyne@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