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리뷰] 한국 싱크탱크 장악한 기업연구소 

00375909201_20101102.JPG
» 삼성경제연구소가 있는 서울 강남역 삼성그룹 빌딩. 박미향 기자
삼성경제연구소는 그 위상에 걸맞게 자주 화제의 중심이 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산업 선진화 방안’에 관한 연구용역을 5억원에 삼성경제연구소에 수의계약으로 발주했을 때도 그랬다. 삼성은 건강관리서비스 시장화와 원격의료 도입을 뼈대로 하는 보고서를 냈는데, 논란의 초점은 이대로 정책이 실행되면 최대 수혜자가 삼성그룹 계열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보다 뛰어난 언론감각 주효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둘러싼 논란은 ‘친기업’을 내세운 현 정부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오히려 참여정부 시절에 삼성, 그리고 삼성경제연구소의 ‘유착’ 논란이 더 잦았다.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시절, 삼성경제연구소가 ‘국정과제와 국가운영에 관한 의제’라는 보고서를 제출했고, 여기에 담긴 ‘국민소득 2만달러론’ ‘동북아 금융허브론’ ‘산업연구단지 조성방안’ 등이 참여정부 주요 국정과제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가 삼성으로부터 ‘사람’과 ‘머리’를 빌려 쓰고 있다는 비판이 높았다. 류한호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조정실장은 이에 대해 “그 보고서를 직접 본 적은 없다”며 “만약 있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제출된 여러 보고서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고 의미를 축소했다.

 

오랫동안 삼성에 대해 연구해 온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경제연구소의 힘은 보고서 자체의 우수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언론에 어필하는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 지적한다. 언론이 꼭 필요로 하는 시점과 형식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언론이 삼성경제연구소를 얼마나 애용하는지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매체비평지 <미디어오늘>이 2008년 한해 동안 18개 언론에 인용된 삼성경제연구소 기사를 조사한 결과 총 3197건이었다. 주요 경제지와 일간지에선 하루 평균 한번꼴로 기사화되고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기자들이 “왜 이 문제를 다루는 보고서를 내지 않는가?”라고 요청하여 연구가 시작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인터넷 공간에서 삼성경제연구소의 영향력은 더 위력적이다. 랭키닷컴에 따르면 삼성경제연구소는 경제연구소 분야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점유율이 70%를 상회하며, 웹사이트 전체 순위에서도 2010년 10월 기준 520위를 기록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누리집의 회원수는 170만명을 넘고, 1300여개의 지식포럼, 250만건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 국내 연구소 가운데 최초로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하기도 했다. 1년에 120만원의 회비를 내는 세리 시이오(SERI CEO) 회원이 1만명을 넘는다. 심지어 대학생 리포트와 직장인 기획안의 상당수가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자신의 기준에 사회 맞추려는 의식”

 

엘지경제연구원이나 현대경제연구원, 에스케이경영경제연구소, 포스코경영연구소, 케이티경제경영연구소 등의 기업연구소나 하나금융연구소, 대신경제연구소, 국민은행경제연구소 등 금융권 연구소들은 주로 모기업 경영에 필요한 연구, 조사나 경기 동향과 거시경제지표 분석 등에 집중한다. 반면 삼성경제연구소는 ‘국가적 의제’나 정책을 제안하는 데 적극적이다. 정책결정자, 언론, 대중들이 큰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러한 접근 방식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김상조 교수는 “다른 기업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주어진 룰에 따르는 데 익숙하다면 삼성은 자신의 기준에 사회를 맞추려 하는 의식이 강하다”며 “삼성경제연구소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삼성경제연구소의 정책적·대중적 영향력이 크지만 보고서 내용에 대한 검증이나 논쟁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가 ‘부동산 대세 하락 없다’는 논지의 보고서를 발표한 뒤, 김광수경제연구소, 시민경제사회연구소 등이 이를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으나 삼성경제연구소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맞수’가 될 것이라며 출범한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다른 목소리’ 역시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곤 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선택할 문제이지만 다양한 예측과 분석, 전망이 경쟁하고 다투는 ‘공론의 장’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아쉬움을 준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은환 박사는 “연구소의 보고서는 ‘정책소비자’들에 의한 엄격한 시장검증을 거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잘 팔린다고 해서 그 물품과 회사가 곧 좋은 것이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을 수 있다. 그 회사가 독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128865653213_20101103.JPG
» 오피니언 리더 100인이 본 싱크탱크 영향력/자료: 한겨레경제연구소

 

 

친노동 싱크탱크로 불균형 해소 필요

 

100명이 넘는 석·박사급 경제학 전공자가 모여, 기업 이익과 국가 의제에 관한 연구를 수행하고, 때로는 막강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삼성경제연구소. ‘기업’ 연구소라는 꼬리표는 늘 따라다닌다. 정치적 논란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고, 특정한 기업, 재벌, 자본의 이익만 추구한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경제연구소 스스로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책경쟁과 검증의 장을 만드는 언론의 노력이 절실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막대한 자원과 엄청난 영향력을 경계하는 이들이 늘고 있지만, ‘친기업’, ‘친시장’의 프레임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돕는 더 많은 ‘두뇌집단’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간과되곤 한다.

 

예를 들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만든 한국경제연구원은 ‘자유시장, 자유기업, 자유경쟁’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걸고 재계 이데올로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성봉 정책기획실장은 “우리는 ‘친기업’이 아니라, ‘친시장’”이라며 “시장경제를 왜곡하는 정책에 대해선 정권을 가리지 않고 비판한다”고 설명한다. 한국경제연구원에서 독립한 자유기업원이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선전가 역할의 전면에 서고, 전경련은 로비활동과 조사업무에 집중한다면, 한국경제연구원은 중장기적 국정과제 연구와 이념적, 학술적 기반을 넓히는 역할에 주력한다. 최근에는 공무원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시장경제’ 교육을 광범위하게 진행하고 있다.

 

이들이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언론과 대중의 인식을 좌우하는 지식 생태계가 지나치게 불균형하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불균형의 해소를 위해선 다른 목소리를 더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함께 얘기하고, 서로 귀담아듣도록 해야 한다. 그 첫번째 주자는 ‘친노동’ 싱크탱크들일 것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1732@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헤리리뷰 18호] 갈수록 높아지는 위상…자금·인력 부족 호소

[HERI Think Tank] 한국의 독립 민간 싱크탱크 실태 » 한겨레경제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등의 독립 민간 싱크탱크와 야 4당 정책연구소, 민주노총 등이 3월7일 ‘한-미 FTA에 대한 진보개혁진영의 선택’ 포럼에서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832

[헤리리뷰 17호] ‘싱크탱크 네트워크’가 뜬다…특정주제 넘어 분야별 협력도

[헤리리뷰] HERI싱크탱크|새로운 도약 예고하는 한국 싱크탱크 생태계 » 한국 싱크탱크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한참 훗날의 일처럼 여겨졌던 정치권의 ‘복지논쟁’, ‘세...

  • HERI
  • 2011.06.24
  • 조회수 12845

[헤리리뷰 17호] 정당·사회단체·언론과 연결…영향력 극대화

[헤리리뷰] HERI싱크탱크|미국 싱크탱크들의 연대와 협력 » 미국 싱크탱크들의 역할과 협력 유형 미국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형태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협동연구 프로젝트인 브루킹스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183

[헤리리뷰 16호] 2012 총선·대선 대비 남북관계·복지 정책 수요 봇물

[헤리리뷰] 2011년 국내 싱크탱크들의 연구과제 » 지난 9월 남북군사실무회담이 끝난 뒤 남북 대표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2012년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함께 있는 해다. 권력구도를 크게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879

[헤리리뷰 16호] “독립성·객관성 있어야 연구결과 신뢰”

[헤리리뷰] 인터뷰/ 농업 싱크탱크 ‘GSnJ’ 이정환 이사장 » 이정환 지에스앤제이 이사장은 농정에서의 정부 역할 재정립을 강조한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연구를 표방하는 농업분야의 민간 싱크탱크. 이정환(64) ...

  • HERI
  • 2011.06.24
  • 조회수 8335

[헤리리뷰 15호] 싱크탱크 위상 급부상중

[헤리리뷰] 2010 아시아미래포럼 한중일 3국의 정책지식 생태계는 » 한중일 각계 지도자 30명으로 구성된 민간회의체 ‘한중일 30인회’가 2009년 4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한국·중국·일본 3국의 정책 지...

  • HERI
  • 2011.06.24
  • 조회수 8601

[헤리리뷰 15호] ‘국가적 의제’까지 쥐락펴락…정책논쟁엔 소극적

[헤리리뷰] 한국 싱크탱크 장악한 기업연구소 » 삼성경제연구소가 있는 서울 강남역 삼성그룹 빌딩. 박미향 기자 삼성경제연구소는 그 위상에 걸맞게 자주 화제의 중심이 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853

[헤리리뷰 15호] 독일, 풍부한 지원에 충분한 자율까지

[헤리리뷰] 세계 싱크탱크 톺아보기 » 독일의 대표 정치재단인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연구기관 시스템은 한국과 비슷 흔히 싱크탱크의 나라로 미국을 떠올리고, 브루킹스연구소와 헤리티지재단을 모...

  • HERI
  • 2011.06.24
  • 조회수 7356

[헤리리뷰 14호] 엔고로 ‘강한 경제’ 현실화…사회보장이 아킬레스건

[헤리리뷰] 민주당 정권 교체 이후의 일본 » 에다노 유키오 일본 민주당 간사장이 지난 7월11일 참의원 선거 출구조사 결과 패배한 것으로 예상되자, 침울한 표정으로 간 나오토 총리의 얼굴이 들어 있는 포스터 옆을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815

[헤리리뷰 13호] “가까우면서도 멀리” 정당 연계성·독립성 동시에 갖춰야

[헤리리뷰] 6·2 지방선거 통해 본 정당 싱크탱크 실태와 과제 » 정당 정책연구소가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면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사진은 여의도연구소(왼쪽)와 민주정책연구원의 토론회 모습. 각 연구소 제공...

  • HERI
  • 2011.06.24
  • 조회수 7888

[헤리리뷰 13호] 시민사회와 정당 연결통로 역할 주목

[헤리리뷰] 정당 외곽지원 싱크탱크 » 시민사회와 정당 연결통로 역할 주목 정당의 공식 연구소는 아니지만, 각 정당의 이념 및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는 연구소들도 적지 않다. 주로 과거 정부 ...

  • HERI
  • 2011.06.24
  • 조회수 8107

[헤리리뷰 13호] 영국 정권교체기 속 아이디어 경쟁 활발

[헤리리뷰] 세계 두뇌집단 톺아보기 » 캐머런 영국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5월 총선 결과 영국에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구성됐다. 총리에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가 선출됐다. 총리와 부총리, 내각의 핵...

  • HERI
  • 2011.06.24
  • 조회수 8229

[헤리리뷰 12호] 자원 부족과 불균형…두뇌집단간 협력구조 만들어야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대구·경북사례로 본 지역 싱크탱크 실태 » 대구·경북사례로 본 지역 싱크탱크 실태.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큰 역할 정책지식 생산...

  • HERI
  • 2011.06.24
  • 조회수 7496

[헤리리뷰 12호] 중국 싱크탱크들 급성장세 ‘시선집중’

[헤리리뷰] World 세계 두뇌집단 톺아보기 » 2009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싱크탱크 정상회의.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 제공 2009년 7월 3~4일 중국 베이징에서 세계 싱크탱크 정상회의가 열렸다. 전세계 유수의 싱크탱크 ...

  • HERI
  • 2011.06.24
  • 조회수 7401

[헤리리뷰 11호] 독립 민간 ‘싱크탱크’ 균형사회 밝힌다

[헤리리뷰] Special Report 한겨레경제연구소 출범 3주년맞이 특별기획 |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조사 » 독립 민간 ‘싱크탱크’ 균형사회 밝힌다 발달장애는 개인에게 큰 어려움이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이해하...

  • HERI
  • 2011.06.24
  • 조회수 7608

[헤리리뷰 11호] SERI·KDI 압도적…독립성·객관성은 낮아

[헤리리뷰] Special Report 국내 싱크탱크 현주소 언론·학계는 KDI, 엔지오·의원실은 SERI 꼽아 정부·대기업 구미 맞는 정책·지식 생산 한계 사람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 많은 생각들을 한다. 우리의 두뇌는 담고 있...

  • HERI
  • 2011.06.24
  • 조회수 7684

[헤리리뷰 11호] ‘브루킹스연구소’ 영향력 최고로 선정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세계 싱크탱크 비교 한국 싱크탱크 국제 인지도·평판 매우 낮아 세계 싱크탱크들의 비교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제임스 맥갠 교수팀의 2010년 발표 자료를 보면, 세계에...

  • HERI
  • 2011.06.24
  • 조회수 6269

[헤리리뷰 11호] 전문성은 기본…독립성·객관성 갖추느냐가 관건

[헤리리뷰] Special Report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조사 | 이상적 싱크탱크의 조건 » 오피니언 리더 100인의 국내 싱크탱크 생태계 평가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

  • HERI
  • 2011.06.24
  • 조회수 7056

[헤리리뷰 11호] 권력·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권위와 신뢰 토대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왜 독립 민간 싱크탱크인가 »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의 회의 모습. 경제정책연구소는 연구원과 인턴들이 함께 회의에 참석해 주요 안건을 논의한다. 워싱턴/탁기형 선...

  • HERI
  • 2011.06.24
  • 조회수 6884

[헤리리뷰 11호] ‘한국판 브루킹스·헤리티지’ 꿈꾼다

[헤리리뷰] Special Report 2000년대 중반 이후 희망제작소 등 출범 잇따라 » 희망제작소 2006년 3월, 희망제작소(사진)는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의 규모, 역량,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며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