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리뷰] 6·2 지방선거 통해 본 정당 싱크탱크 실태와 과제
 

127773070633_20100629.JPG
» 정당 정책연구소가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면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사진은 여의도연구소(왼쪽)와 민주정책연구원의 토론회 모습. 각 연구소 제공
 
선거땐 앉을 새도 없는 연구원들
 

6·2 지방선거 유세기간 중 방문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민주당 민주정책연구원, 진보신당 상상연구소에선 연구원들 대부분이 선거지원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연구원들은 주요 선거본부에 결합해 후보들의 방송토론용 자료를 만들었고, 지역으로 파견돼 현안을 정책으로 만드는 일에 투입됐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연구원들은 여전히 분주하다.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공동정부운영이나 혁신적 지방자치에 관한 워크숍을 운영하고 있고, 지자체 인수위원회에 파견돼 정책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선거를 전후한 연구소들의 이러한 ‘분주함’에도 불구하고, 정당 정책연구소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부정적이거나, 아예 무관심하다. 대표적 의정감시단체인 참여연대의 이지현 팀장 역시 “정당의 정책역량을 중시하지만, 정책연구소들을 대상으로 한 모니터링은 따로 하지 않는다. 별로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다른 민간 싱크탱크 관계자는 “그 많은 돈을 받아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표시한다.

 

정당간 국고보조금 ‘천양지차’

 

현재 국내에는 7곳의 정당 정책연구소가 있다. 이들은 연간 100억원 이상의 국고보조금을 지원받고 있다. 2004년 정치자금법과 정당법 개정을 통해, 정당은 중앙당 산하에 별도 법인으로 연구소를 설립하고, 정당에 배분되는 국고보조금 총액의 30%를 배당하도록 됐기 때문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된 2009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정당 연구소에 지급되는 126억여원 가운데, 여의도연구소(약 65억원)와 민주정책연구원(약 39억원) 몫이 전체 보조금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나머지 5개 연구소는 1년에 겨우 수억원 정도의 국고보조금만 지원받는다. 이러한 격차에 대해 장석준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연구기획실장은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의 지원규모 차이가 너무 커, 소수정당의 정책역량 강화에 심각한 제약이 된다”고 비판한다.

 

보조금 지급이 정당을 경유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예산이 변칙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점도 자주 문제로 지적된다. 연구원으로 이름을 올린 당직자들의 급여로 사용되고 있거나, 반대로 정당의 단기적 정책수요에 대응하는 역할로 연구원들이 차출된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예산을 운용하는 여의도연구소 정태윤 부소장조차 “정책연구소의 강화는 정당체제 자체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중장기 연구를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말할 정도이다.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127773070584_20100629.JPG
» 정당 정책연구소 현황


독일식 정치재단 이상적 모델
 

한국의 정당 정책연구소는 독일식 정치재단 모델을 따른 것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의 정책역량을 강화하고, 민주시민교육을 지원하는 대신, 별도 법인으로 둠으로써 정당에 예속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현실은 “독일 모델의 껍데기만 베낀 ‘한국식’ 정당 정책연구소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 한국과 독일의 정당 정책연구소를 꾸준히 연구해 온 선거연수원 신두철 교수의 설명이다.

 

정당 정책연구소가 정당의 중장기적 전략과 정책,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이견은 없다. 중앙당이나 개별 의원은 단기적 현안대응과 구체적 의안개발에 치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당과 연구소 사이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연구원들은 ‘중장기적 전략과 정책 개발’에 힘을 쏟기는커녕, 몇 쪽짜리 현안분석 자료와 몇 개월짜리 단기 보고서 만들기에 바쁘다. 이렇게 만들어낸 결과물에 대해서도, 정당과 학계, 시민사회 모두가 불만을 표시한다. 당장 써먹기 곤란하다는 평가와, 지나치게 현안 따라잡기에 급급하다는 상반된 평가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정책연구원 문병주 연구실장은 “정책연구소의 문제는 ‘돈’만은 아니며, 오히려 연구소에 대한 편견과 협소한 인식에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지혜는 모으고, 자원은 나눠야”

 

이처럼 한국의 정당 정책연구소는 모순적인 위치에 놓여 있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정책연구소가 맺고 있는 ‘관계의 재구성’을 통해 가능하다. 여의도연구소 정태윤 부소장은 “정책연구소는 정당과 가까이 있음으로써, 강한 정책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정당 정책연구소의 힘은 정당과의 관계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민주정책연구원 문병주 연구실장 역시, 정당의 정책역량 강화라는 원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 정책위원회와 연구소 사이의 훨씬 더 강한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면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시민사회와의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정당의 중장기 비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시민사회와의 넓고 깊은 네트워크 구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최규엽 소장이 “당의 요구에 충실히 응하되, 당에 종속되지 않고 비판할 수 있는 연구소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장석준 실장 역시 “시민사회의 요구나 학계의 권위를 정치로 연결하고, 이들과 정당을 소통하게 하는 매개” 구실을 강조한다. 정당 정책연구소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독일식 정치재단 모델을 따른다면, 연구소와 시민사회의 충실한 소통, 긴밀한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우선적 과제일지 단언하기란 어렵다. 연구소장을 누가 맡느냐부터 견해가 엇갈린다. ‘당 정책위원장이 겸임’(신두철 선거연수원 교수)하는 방안과 ‘당 외부의 독립적 학자’(정해구 성공회대 교수)가 맡는 방안 등 뚜렷이 나뉜다. 현실 정치에서의 정책적 영향력 행사가 더 중요하고 가능한 경우와 시민사회에 착근하여 더 긴 호흡의 영향력 확보를 중시하는 경우는, 상황인식과 대안방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당 정책연구소가 지금보다 더 큰 구실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정당 정책연구소나 정당의 정책역량 강화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정책지식 생태계 전반의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국책연구기관들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 정당 정책연구소가 ‘정책을 매개로 한 정치’를 더 잘해 주어야 한다. 기업연구소들과는 ‘공공성’과 ‘공익’의 경쟁을 벌여야 한다. 관료집단들이 시민사회 두뇌집단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증폭장치’ 노릇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정당 정책연구소가 더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고, 자원을 나누는’ 모습을 보일 때, 그들이 처한 ‘모순적 위치’는 그저 ‘딜레마’가 아니라, 오히려 풍부한 ‘자산’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홍일표 한겨레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iphong1732@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헤리리뷰 18호] 갈수록 높아지는 위상…자금·인력 부족 호소

[HERI Think Tank] 한국의 독립 민간 싱크탱크 실태 » 한겨레경제연구소,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등의 독립 민간 싱크탱크와 야 4당 정책연구소, 민주노총 등이 3월7일 ‘한-미 FTA에 대한 진보개혁진영의 선택’ 포럼에서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833

[헤리리뷰 17호] ‘싱크탱크 네트워크’가 뜬다…특정주제 넘어 분야별 협력도

[헤리리뷰] HERI싱크탱크|새로운 도약 예고하는 한국 싱크탱크 생태계 » 한국 싱크탱크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한참 훗날의 일처럼 여겨졌던 정치권의 ‘복지논쟁’, ‘세...

  • HERI
  • 2011.06.24
  • 조회수 12845

[헤리리뷰 17호] 정당·사회단체·언론과 연결…영향력 극대화

[헤리리뷰] HERI싱크탱크|미국 싱크탱크들의 연대와 협력 » 미국 싱크탱크들의 역할과 협력 유형 미국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형태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협동연구 프로젝트인 브루킹스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183

[헤리리뷰 16호] 2012 총선·대선 대비 남북관계·복지 정책 수요 봇물

[헤리리뷰] 2011년 국내 싱크탱크들의 연구과제 » 지난 9월 남북군사실무회담이 끝난 뒤 남북 대표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2012년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함께 있는 해다. 권력구도를 크게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879

[헤리리뷰 16호] “독립성·객관성 있어야 연구결과 신뢰”

[헤리리뷰] 인터뷰/ 농업 싱크탱크 ‘GSnJ’ 이정환 이사장 » 이정환 지에스앤제이 이사장은 농정에서의 정부 역할 재정립을 강조한다.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연구를 표방하는 농업분야의 민간 싱크탱크. 이정환(64) ...

  • HERI
  • 2011.06.24
  • 조회수 8335

[헤리리뷰 15호] 싱크탱크 위상 급부상중

[헤리리뷰] 2010 아시아미래포럼 한중일 3국의 정책지식 생태계는 » 한중일 각계 지도자 30명으로 구성된 민간회의체 ‘한중일 30인회’가 2009년 4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에서 열렸다. 연합뉴스 한국·중국·일본 3국의 정책 지...

  • HERI
  • 2011.06.24
  • 조회수 8601

[헤리리뷰 15호] ‘국가적 의제’까지 쥐락펴락…정책논쟁엔 소극적

[헤리리뷰] 한국 싱크탱크 장악한 기업연구소 » 삼성경제연구소가 있는 서울 강남역 삼성그룹 빌딩. 박미향 기자 삼성경제연구소는 그 위상에 걸맞게 자주 화제의 중심이 된다. 최근 보건복지부가 ‘미래복지사회 실현을 위한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854

[헤리리뷰 15호] 독일, 풍부한 지원에 충분한 자율까지

[헤리리뷰] 세계 싱크탱크 톺아보기 » 독일의 대표 정치재단인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연구기관 시스템은 한국과 비슷 흔히 싱크탱크의 나라로 미국을 떠올리고, 브루킹스연구소와 헤리티지재단을 모...

  • HERI
  • 2011.06.24
  • 조회수 7356

[헤리리뷰 14호] 엔고로 ‘강한 경제’ 현실화…사회보장이 아킬레스건

[헤리리뷰] 민주당 정권 교체 이후의 일본 » 에다노 유키오 일본 민주당 간사장이 지난 7월11일 참의원 선거 출구조사 결과 패배한 것으로 예상되자, 침울한 표정으로 간 나오토 총리의 얼굴이 들어 있는 포스터 옆을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815

[헤리리뷰 13호] “가까우면서도 멀리” 정당 연계성·독립성 동시에 갖춰야

[헤리리뷰] 6·2 지방선거 통해 본 정당 싱크탱크 실태와 과제 » 정당 정책연구소가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면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사진은 여의도연구소(왼쪽)와 민주정책연구원의 토론회 모습. 각 연구소 제공...

  • HERI
  • 2011.06.24
  • 조회수 7888

[헤리리뷰 13호] 시민사회와 정당 연결통로 역할 주목

[헤리리뷰] 정당 외곽지원 싱크탱크 » 시민사회와 정당 연결통로 역할 주목 정당의 공식 연구소는 아니지만, 각 정당의 이념 및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는 연구소들도 적지 않다. 주로 과거 정부 ...

  • HERI
  • 2011.06.24
  • 조회수 8107

[헤리리뷰 13호] 영국 정권교체기 속 아이디어 경쟁 활발

[헤리리뷰] 세계 두뇌집단 톺아보기 » 캐머런 영국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5월 총선 결과 영국에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구성됐다. 총리에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가 선출됐다. 총리와 부총리, 내각의 핵...

  • HERI
  • 2011.06.24
  • 조회수 8229

[헤리리뷰 12호] 자원 부족과 불균형…두뇌집단간 협력구조 만들어야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대구·경북사례로 본 지역 싱크탱크 실태 » 대구·경북사례로 본 지역 싱크탱크 실태.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대형 국책사업 유치에 큰 역할 정책지식 생산...

  • HERI
  • 2011.06.24
  • 조회수 7496

[헤리리뷰 12호] 중국 싱크탱크들 급성장세 ‘시선집중’

[헤리리뷰] World 세계 두뇌집단 톺아보기 » 2009년 7월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싱크탱크 정상회의. 중국국제경제교류중심 제공 2009년 7월 3~4일 중국 베이징에서 세계 싱크탱크 정상회의가 열렸다. 전세계 유수의 싱크탱크 ...

  • HERI
  • 2011.06.24
  • 조회수 7401

[헤리리뷰 11호] 독립 민간 ‘싱크탱크’ 균형사회 밝힌다

[헤리리뷰] Special Report 한겨레경제연구소 출범 3주년맞이 특별기획 |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조사 » 독립 민간 ‘싱크탱크’ 균형사회 밝힌다 발달장애는 개인에게 큰 어려움이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이해하...

  • HERI
  • 2011.06.24
  • 조회수 7609

[헤리리뷰 11호] SERI·KDI 압도적…독립성·객관성은 낮아

[헤리리뷰] Special Report 국내 싱크탱크 현주소 언론·학계는 KDI, 엔지오·의원실은 SERI 꼽아 정부·대기업 구미 맞는 정책·지식 생산 한계 사람들은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 많은 생각들을 한다. 우리의 두뇌는 담고 있...

  • HERI
  • 2011.06.24
  • 조회수 7684

[헤리리뷰 11호] ‘브루킹스연구소’ 영향력 최고로 선정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세계 싱크탱크 비교 한국 싱크탱크 국제 인지도·평판 매우 낮아 세계 싱크탱크들의 비교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제임스 맥갠 교수팀의 2010년 발표 자료를 보면, 세계에...

  • HERI
  • 2011.06.24
  • 조회수 6269

[헤리리뷰 11호] 전문성은 기본…독립성·객관성 갖추느냐가 관건

[헤리리뷰] Special Report 한국 싱크탱크 지형도 조사 | 이상적 싱크탱크의 조건 » 오피니언 리더 100인의 국내 싱크탱크 생태계 평가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

  • HERI
  • 2011.06.24
  • 조회수 7056

[헤리리뷰 11호] 권력·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 권위와 신뢰 토대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왜 독립 민간 싱크탱크인가 » 미국 진보 진영의 대표적 싱크탱크인 경제정책연구소의 회의 모습. 경제정책연구소는 연구원과 인턴들이 함께 회의에 참석해 주요 안건을 논의한다. 워싱턴/탁기형 선...

  • HERI
  • 2011.06.24
  • 조회수 6884

[헤리리뷰 11호] ‘한국판 브루킹스·헤리티지’ 꿈꾼다

[헤리리뷰] Special Report 2000년대 중반 이후 희망제작소 등 출범 잇따라 » 희망제작소 2006년 3월, 희망제작소(사진)는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나 헤리티지재단의 규모, 역량,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것을 목표로 내세우며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