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리뷰] 위기관리 실패 사례 연구

» 15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지난해 9월 파산 신청을 낸 뒤, 한 시민이 미국 뉴욕에 있는 이 은행의 본사 건물 앞에서 “다음 차례는 누구?”라고 쓴 팻말을 들고 서 있다. 뉴욕/AP 연합


1987년 10월, 이른바 ‘블랙 먼데이’(검은 월요일) 직후의 금융시장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혼돈의 세계였다. 하지만 지난 65년 창립된 월스트리트의 금융회사 뱅커스트러스트에서 일하던 스물아홉 살의 전설적 트레이더 앤디 크리거의 머릿속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젊은 트레이더의 야심만을 잔뜩 부추기던 회사는 그에게 7억달러의 거래대금을 손에 쥐여줬고, 크리거는 회사의 다른 동료나 상사 그 누구와도 아무런 상의 없이 최첨단 통화옵션 상품에 거금을 쏟아부었다. 겉으로 드러난 실적은 눈부셨다. 그해 회사가 거둔 전체 통화거래 이익 가운데 절반 이상이 그의 작품이란 소문이 무성했다. 그해 연말 크리거는 한껏 고무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로 화려한 연말 휴가를 떠났지만, 회사가 거둔 것으로 알려진 수익 가운데 크리거 단 한 사람만 알고 있던 8천만달러라는 ‘가공의 이익’이 숨어 있다는 비밀이 드러나기까지는 그로부터 고작 몇 주의 시간만이 필요했다.


지금부터 20여년 전, 이미 월스트리트의 저명한 금융기관을 파산 직전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대사건의 불씨를 지핀 건 이처럼 단순했다. 통제받지 않은 내부관리. 무엇보다 직원의 고삐 풀린 이기심을 부추기는 회사의 단기 성과주의와 위험 통제 시스템 부재가 대표적이다. “고객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도 그것이 회사에 많은 돈을 벌어주는 것이라면 간부들이 직원들이 그렇게 하도록 부추겼다.” 후회와 자성의 목소리는 너무 늦게 나왔다.


리먼브러더스-자산불리기에만 골몰


블랙 먼데이 당시보다 몇 곱절이나 더 큰 충격을 전세계 금융시장에 안겨준 지난해 금융위기는 내부의 위기관리 시스템 부재가 외부에서 던져진 위기의 불씨를 얼마나 증폭하고 확대재생산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월스트리트의 거인들이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이번 금융위기야말로, 특히 위기관리 전략으로서의 사회책임경영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생생한 ‘실패 교과서’가 되고 있다.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대표적인 위기관리 전략으로서 그 중요성이 부각된 게 바로 이해관계자 관리다. 이해관계자, 특히 내부 직원 관리상의 문제는 20여년 전 뱅커스트러스트를 파산 직전으로 몰고 갔지만, 이번 위기에서는 158년 전통의 리먼브러더스를 결국 파산으로 몰고 간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20년 사이 금융시장은 훌쩍 커버렸지만, 그에 발맞춰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내부관리 체제가 빚을 폭발력은 훨씬 커진 셈이다. 실제로 월스트리트를 대표하는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러더스의 비극적 운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리먼브러더스는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기업 내 조직원들조차 제대로 그 위험성을 알지 못하는 다양한 파생상품을 양산하면서 자산규모 부풀리기에만 몰두했다. 신용디폴트스와프(CDS)나 부채담보부증권(CDS) 등 위험도가 높은 상품 거래에 치중하면서도 적절한 내부관리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는 소홀했던 대표적인 장본인이 바로 리먼브러더스다.


AIG-구제금융 자금으로 보너스잔치

보험회사에 뿌리를 둔 또다른 ‘공룡’ 에이아이지(AIG)의 운명은 또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에이아이지는 세계적으로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는 것으로 이름을 드날렸다. ‘경영전략’으로서 사회책임경영에도 일찌감치 눈떴다.

하지만 이번 위기 과정에서 에이아이지는 뼈아픈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다. 부실 투자에 따른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보험사 파산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해 1800억달러의 구제금융을 서둘러 쏟아부었지만, 그 뒤 에이아이지가 보여준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안겨줬기 때문이다. 구제금융 자금을 밑천 삼아 1인당 평균 100만달러 이상의 보너스를 임직원들이 나눠 가진 것이다. 그릇된 정책을 제어하고 통제할 내부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는 한, 사회책임경영은 한낱 ‘선언’에 그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십상이다. 고객과 시장 참여자들의 신뢰를 잃은 에이아이지는 결국 생명보험 위주의 에이아이에이(AIA)와 손해보험 위주의 에이아이유(AIU)홀딩스로 쪼개지고 말았다.


메릴린치-CEO 결정 제어장치 없어

오랜 역사를 뒤로한 채 쓸쓸히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손에 넘어간 메릴린치의 실패 사례에서는 무엇보다 내부 지배구조의 중요성을 눈여겨볼 수 있다. 미국 내 5대 투자은행 가운데 하나로 꼽히면서도, 메릴린치는 최고경영자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지 않는 정책을 고수해 왔다. 일상적인 경영활동에 대해 이사회의 적절한 견제가 작동하지 못함으로써, 그만큼 잘못된 의사결정을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처음부터 봉쇄된 상태였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의 경영 환경은 그릇된 투자 판단이 파국적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비춰 볼 때, 견제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은 위험을 분산하는 가장 기본적인 위기관리 전략인 셈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유독 캐나다나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의 금융기관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경영 성과를 이어간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예컨대 캐나다의 경우, 정책의 무게를 금융기관의 대형화에 두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금융기관의 고삐 풀린 영업을 보장하기보다는 정부의 엄격한 감독에 신경을 쓴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캐나다 금융기관들이 탄탄한 내부 위기관리 시스템을 앞서 갖출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정부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합작품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최우성 기자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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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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