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리뷰]

» ‘얼굴 있는 거래’ 로컬푸드가 지역경제 살린다. 일러스트레이션 손정욱
오늘 아침 밥상을 떠올리자. 심장병이 있어서 아침 식사를 가볍게 한다. 훈제 연어와 당근·양파·양배추를 버무린 샐러드와 명태국을 먹었다. 파인애플 몇 조각과 포도 몇 알도 먹었다.

훈제 연어는 노르웨이산이었다. 파인애플은 필리핀산, 포도는 칠레산. 명태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입된다. 양배추는 오스트레일리아산이라고 상정하자. 당근과 양파는 중국산이었을 것 같다. 국내산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른바 푸드 마일리지(식품 이동거리)로 계산을 해보았다. 훈제 연어 8200㎞, 파인애플 2600㎞, 포도 2만㎞, 명태 1200㎞, 양배추 8200㎞, 당근과 양파가 900㎞다. 이를 모두 합하면 4만2000㎞,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다. 아침 식사 한 끼로 배출된 ‘글로벌푸드’의 탄소 배출량은 얼마나 될까? 지구의 온도는 얼마나 더 더워졌을까?

» ‘얼굴 있는 거래’ 로컬푸드가 지역경제 살린다. 일러스트레이션 손정욱
글로벌푸드는, 내가 먹는 훈제 연어와 포도를 누가 어떻게 생산했고 유통과정에서 또 어떤 약물이 뿌려졌는지 전혀 알 수 없다는 ‘결정적 하자’를 태생적으로 안고 있다. ‘얼굴 없는 거래’로 인한 방부제 등의 약물 부작용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수입산이 식탁을 점령하는 동안, 우리 농촌과 농민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달에 전북 완주 소양면 인덕마을을 방문했을 때, 어귀의 정자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할머니들은 젊은이와 함께 이야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거듭거듭 “고맙다”고 했다. 알고 보니, 가장 연로한 이노순(80) 할머니를 포함해 5명 모두 혼자서 지내는 분들이었다.

그나마 큰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대형마트가 지배하는 유통시장에서 기대하는 상품성을 맞출 수 있다. 대규모로 단일 품목 농사를 짓는 것이다. 하지만 완주에서 그런 경쟁력을 갖춘 농민은 20%를 넘지 못한다. 소농들은 서울 사는 자식네 집에 보낼 수 있을 만큼의 자투리 농사를 짓거나, 아예 땅을 놀리기도 한다.

로컬푸드는 대량 탄소배출, 얼굴 없는 거래, 소농의 붕괴라는 부작용을 낳은 글로벌푸드의 대항마다. 아직까지 개념이 생소하지만, 가까운 지역에서 누가 어떻게 생산했는지 알 수 있는, 그래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고 소비하자는 자연스런 움직임이다. 달리 표현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행복한 밥상”을 추구한다. 물리적 거리를 줄일수록 좋지만, 생산과정이 투명해야 한다는 점에서 심리적 거리를 더 중시한다. 생산농가와의 직거래가 가능해지고, 작은 농사를 짓는 농민도 소량 판매로 소득을 올릴 길이 열리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환경과 식품안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로컬푸드가 힘을 얻어가고 있다. 대규모 단작 생산의 원조 격인 미국에서도 최근 소규모 유기농 생산을 하겠다는 젊은층의 귀농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도시에서 농산물을 직거래하는 농민 장터가 정부 지원을 업고 4000곳이나 생겨났고, 1년치 출자금을 생산농가에 미리 지급한 뒤 매주 신선한 농산물을 공급받는 공동체지원농업(CSA, 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도 터를 잡았다. 땅덩어리가 큰 만큼, 100마일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먹자는 식의 푸드 마일리지 운동 또한 활발하다.

영국 런던은 런던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까지 2012개의 시민텃밭을 만들겠다는 재미있는 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시민들이 자기가 경작해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동시에 공동체 유대도 끌어올리겠다는 발상이다. 지역 생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는 도시민의 식탁 안전과 함께 농촌 주민 소득 향상에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브라질의 벨루오리존치는 아예 식량권을 기본권으로 설정하고, 학생이나 빈곤층에게 지역 농산물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는 제도를 정착시켰다.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25%,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나라 중 26위이다. 상위 13개 나라는 자급률이 100%를 웃돌고, 24위인 포르투갈조차도 50%에 육박한다. 지금 이 순간도 자급률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중앙정부가 방치하니, 지자체들이 나서서 다양한 로컬푸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사회적기업도 지역농협도, 지역 시민단체, 일부 지역의 교육청도 로컬푸드에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미국식 푸드 마일리지 개념을 강조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모든 산물이 서울 한곳으로 모아지는 현실을 전적으로 외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얼굴 있는 거래로 식품 안전을 회복하고, 지역의 소농들이 가족을 생각하고 직접 재배한 신선한 농산물을 도시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등의 지역경제 활성화 전략이 더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식탁의 안전과 농업생산의 안정화를 기하고, 지역사회를 살려보자는 것”이라고 로컬푸드의 개념을 정리했다.

» 연구진 및 전문가들
다만, 로컬푸드의 좋은 뜻을 실행에 옮기고 성과를 만들어내기란 지난한 일이다. 공동화하고 노령화한 농촌 소농의 경쟁력을 끌어올려야 하는 과제가 맨 앞에서 길을 막고 있다. 소농들은 친환경 생산능력도 떨어진다. 대형마트에 익숙해진 도시 소비자의 인식 전환에도 끈기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로컬푸드가 자칫 우리 지자체 농산물만 유통시키겠다는 소지역주의로 빠질 위험성은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인근 지역간의 제휴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공동체 붕괴로 인한 사람의 공백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온다. 농촌 마을에 정부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농촌의 변화는 오지 않는다. 빈 건물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을 뿐이다. 중앙정부는 소농을 지원하는 근본책 마련에 인색하기 짝이 없다.

로컬푸드 정착에 먼저 나선 지자체와 농협, 사회적기업, 시민단체는 격려를 받을 자격이 있다. 한계는 있지만 지역농산물의 학교급식을 이뤄낸 전남의 나주와 순천이 그렇다. 경기 평택과 전북 완주는 전면적인 로컬푸드 시행이라는 가장 어려운 실험에 도전했다. 안전한 밥상을 생각하는 소비자의 공감과 지지가 기대된다.



김현대 한겨레 지역경제디자인센터 소장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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