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2010년 홍콩 폭스콘 주주총회에서 애플을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폭스콘의 집단 자살 사건에 대한 애플의 책임을 요구했다. AP 연합뉴스
[헤리리뷰]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의 ‘주주 관여 활동’
영국 교회투자자그룹(CIG)과 지방정부연금연합(LAPFF) 등 52곳의 기관투자자 연합은 지난해 석유 메이저 비피(BP)와 로열더치셸에 “2015년 주주총회에 기후변화 안건을 상정하라”고 요청했다. 대규모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이들 기업이 배출하는 탄소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과 이로 인한 기업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비피와 셸은 이들 기관투자자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기후변화 리스크 보고서’를 발간하는 한편, 올해 상반기 열리는 주총의 기후변화 이슈를 특별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다.

기후변화 등 비재무적 이슈 목소리 높여

또다른 석유 메이저 엑손모빌은 지난 1월 사내 평등 정책을 일부 수정했다. 레즈비언이나 게이, 양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등 성적 소수자들이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으로 인해 기회 균등과 고용에 차별받지 않을 것을 명시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트릴리엄자산운용 등을 중심으로 한 기관투자자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사안이다.

애플의 공급망 관리는 기관투자자들의 주된 관심사다. 2010년 애플의 주요 협력업체인 중국 폭스콘사 직원들이 잇따라 자살을 시도하는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관투자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공급망 환경 개선을 요청해왔다. 2014년 초 열린 애플의 주총에서는 기관투자자들이 지분을 모아 기업 내 인권정책을 검토하는 인권위원회 설치를 주주제안 형식으로 상정하기도 했다.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투자 기업의 경영 성과뿐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 비재무적 경영 이슈에 대해 발언권을 높이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들에 기후변화 대응, 임직원 평등, 공급망 관리와 작업장 안전과 같은 문제를 선제적으로 제기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상 쟁점 안건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서도 대부분 찬성 거수기 노릇에 그치고 있는 국내 현실과는 한참 다르다.

중국 후베이성 우한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컴퓨터를 조립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목적은 문제 개선, 경영권 위협은 안해

기관투자자들이 주주로서 투자 기업의 쟁점 경영 사안을 논의하고 개입하는 것을 ‘주주 관여 활동’(인게이지먼트)이라 한다. 적극적인 사회책임투자 방법 중 하나로 장기투자를 하는 기관들이 주로 사용한다. 투자 기업의 특정 경영 사안이 기업 가치와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판단되면 주주의 권한으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다. 문제 개선을 위해 기업에 서면을 발송하거나 공식·비공식적 대화를 요청하고 때로는 주주제안 등의 공식적 절차를 밟기도 한다.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관투자자들끼리 연대하기도 하고 주총 때 의결권을 활용해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한다. 이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다량 매수해 주요 주주가 된 뒤 오로지 차익 실현 극대화를 위해 경영에 개입하는 ‘주주 행동주의’와는 구분된다. 주주 관여 활동은 ‘주주’라는 주요 이해관계자로서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 문제를 개선하려는 것이며 경영권을 위협하지 않는다.

100억달러 이상 사모펀드 85%가 참여

글로벌 기관투자자들이 점점 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에 관심을 두고 적극적으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비재무적 사안들이 실제 기업 가치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주요 투자자로서 기업의 위험요소를 개선해 투자의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에서 발표한 연구보고서를 보면, 100억달러 규모 이상의 사모펀드 42개 중 85%가 “자산관리에 기후변화나 소비자 이슈, 임직원 정책 등 비재무적 요소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험관리는 물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탁자 의무와도 연결되어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다른 금융기관 고객들이 맡긴 보험료·기금 등을 위탁운용하는 것이어서 위탁 자산을 투명하고 안전하게 운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최적 수익률과 안전한 운용, 사회적 역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투자 기업의 부정적 이슈들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또한 금융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은 혈관에 비유할 수 있다. 돈이 책임성을 갖고 건전하게 돌지 않으면 사회의 수많은 구성원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설명한다.

국내 기관투자자들 인식은 매우 낮아

국내 기업이나 기관투자자들에게 주주 관여 활동은 아직 낯설거나 번거로운 일이다. 가장 큰 이유는 주주 관여 활동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국내 주요 기관투자자들은 주주로서의 역할보다 수익성을 중심으로 투자 기업을 바라보는 경향이 크다. 단기적 수익이 주요 평가 기준이다 보니, 투자 기업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로 간주하거나 외려 투자 가치를 훼손하는 일로 여기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국내 기관투자자들의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최근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내 공적 연기금 관련 직무자 45명 중 사회책임투자를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6%, 사회책임투자 방법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11%에 그쳤다.

국내 기업들은 주주 관여 활동에 냉담하거나 경영권 침해로 판단한다. 2006년 이른바 ‘장하성 펀드’로 불렸던 라자드코리아자산운용의 ‘한국기업지배구조개선펀드’ 사례가 대표적이다. 주주로서 주요 투자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개진했으나 대부분 방어적 태도를 보 였다. 세계적으로 기관투자자들이 점점 더 적극적으로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에 관여하는 추세다. 주식투자를 수익성 차원에서만 접근한다면 주주로서의 역할은 제한된다. 주주는 기업에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는 중요 이해관계자다. 주주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사회적으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양은영 한겨레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ey.y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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