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서브프라임 모기지, '30년산(産)' 위기

HERI 2011. 06. 24
조회수 8948
서브프라임 모기지, '30년산(産)' 위기

자크 사피르(Jacques Sapir)
프랑스 산업화양식 비교연구센터(CEMI-EHESS) 소장


1954년생으로 파리 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파리 10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를 거쳐 현재 파리 산업화양식 비교연구센터(CEMI-EHESS) 소장을 맡고 있다.
 프랑스에서 처음 싹을 틔운 조절이론(레귤라시옹 학파) 전통을 이어받아 사회변동과 제도 및 규칙의 역할에 대한 연구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으며 특히 체제전환기 국가의 금융시장 분석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2001년 금융경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연구자에 수여하는 튀르고 상을 수상했고, 프랑스 정부와 주요 기업 및 각종 국제기구의 동유럽 지원프로그램 자문관으로 활동했다. 현재 러시아 중앙은행 금융 시스템에 대한 전문가 그룹에 참여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에너지 산업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도 이끌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경제학의 블랙홀:시간과 화폐의 사유 불가능성>(2000), <경제학자는 민주주의의 반대자인가?>(2002), <21세기를 위한 경제학>(2005) 등이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30년산(産)’ 위기

이번 위기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붕괴와 금융기관의 신용위기를 넘어, 지난 1980년대 초 이후 뿌리를 내린 지극히 불평등한 소득분배정책에 기초한 사회경제적 모델이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자산소득자보다는 임금소득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세정책, 공공정책의 무차별적인 축소, 그리고 무분별한 시장개방을 불러온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모델이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지난해 발생한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대파국 사태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 사이에 엄청난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이 사태로 인해 그간 너무나 허술하게 규제돼 왔던 금융 시스템에 내재하고 있는 위험과, 이른바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이 가져올 불안정 효과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런 가운데 각국의 일부 경제지표들이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덜’ 나쁜 것으로 밝혀지면서 최근 1~2개월 사이엔 아주 위험한 자신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쳐들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미국 경제의 중장기 추세뿐 아니라 서유럽 국가들의 ‘실물’ 부문 펀더멘털 전망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태다. 금융위기란 경제의 다른 부문과 아무런 상관없이 발생하는 순수한 혼돈 상황이 아니다. 이 말은 곧 최악의 위기 상황은 아직 종착역에 다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제자리 소득에도 소비 증가 비밀은 ‘홈에쿼티론’
그렇다면 과연 위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 해답은 이 모든 위기 상황의 출발점인 미국 경제의 침체가 왜 시작됐는지를 찾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위기의 징후는 2006년 겨울 무렵부터 미국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연체와 압류가 늘어나면서 비로소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두 해 사이에 이뤄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연체율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해에 이뤄진 주택담보대출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여기서 분명한 건 변동금리부 담보대출이라는 메커니즘이 이 위기를 촉발시킨 주범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주택담보대출과 미국 경제 사이의 상관관계는 1999년 이후 엄청나게 커졌는데, 지난 6년 동안 미국 경제가 어떻게 성장해 왔는지를 되돌아보지 않고서는 그 비밀을 이해하지 못한다.
  미국 경제는 지난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 연평균 2.6% 성장했는데, 이는 1980년대 초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1993~2000년 사이에 해마다 평균적으로 3.7% 정도 올랐던 임금소득이 이 기간에는 겨우 1.8% 오르는 데 그쳤고, 고용증가율마저 크게 둔화된 게 그 원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민저축률마저 현저하게 떨어지면서 미국 경제의 성장세는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특히 국민저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계저축이 처분가능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2002년엔 2.4%였으나 지난해엔 사상 최저 수준인 0.4%까지 급락했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미국 경제가 성장을 지탱할 수 있었던 비밀은, 바로 주택 가격이 꾸준히 오른 탓에 자산가치가 높아져 이른바 ‘홈에쿼티론’(Home Equity Loan)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데 있다. 홈에쿼티론이란 주택을 담보로 1차 대출이 이뤄진 후 이를 제외한 나머지 주택을 담보로 추가대출을 받는 것으로, 주택 가격이 끊임없이 오를 것이란 기대 속에 미국 소비자들은 주저없이 추가대출을 통해 소비재원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처럼 주택을 담보로 해 다른 용도로 빌려 쓴 돈은 1993년에서 2001년 사이엔 실질개인소비지출의 0.4%에 불과했으나,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엔 2.4%로 급증했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경우 이 기간 동안 실질개인소비지출은, 주택을 담보로 다른 용도로 돈을 빌려 쓴 덕분에 2%나 늘어난 것임을 알 수 있다. 임금소득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가계가 높은 소비증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2002년에서 2007년 사이에 미국 경제는 사실상 ‘잘못된 성장’ 경로를 밟고 있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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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같은 ‘잘못된 성장’의 싹은 탈규제와 사회복지망의 훼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보수혁명’이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몰아쳤던 1980년대부터 이미 조금씩 자라고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가계부채의 가파른 상승세는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뚜렷하게 시작됐다. ‘레이거노믹스’라 불린 경제정책 기조는 1945년 이후 미국 경제성장의 동력이었던 중산층의 몰락을 부채질했는데, 그 결과 나라 경제 전체의 성장 잠재력은 갈수록 떨어뜨리는 대신 ‘신용에 의지한’(credit-backed) 소비지출이라는 마취제로 그 골을 메워나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거품 붕괴는 보다 뿌리 깊은, 근본적인 차원의 사회경제적 무질서를 마침내 전면에 드러낸 하나의 징후일 뿐이다.

‘빚더미 소비’ 체제는 중산층 몰락 숨기는 마취제
문제는 이러한 무질서조차 더 이상 유지되기 힘든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데 있다. 미국 경제의 침체 상황이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심각하고 오래 지속될 수밖에 없는 3가지 이유가 있다. 최소한 침체 상황은 적어도 내년 말까지 이어질 것이며, 아마도 그보다 더 오래 계속될 수도 있다.
  우선, 이제 ‘부의 효과’는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나타날 것이다. 주택 가격은 이미 평균 6.4%나 떨어졌고, 이 때문에 홈에쿼티론은 더 이상 소비지출을 위한 숨겨진 ‘돈줄’이 되기 힘들다. 지난 시기의 경기침체 때, 미국 가계는 저축을 줄여 소득이 줄어드는 것을 벌충했다. 하지만 현재의 저축률 0.4%로는 아무런 완충작용을 기대할 수가 없다. 결국 지금까지의 경기침체 상황과는 달리, 이번에는 저축률이 되레 증가하게 돼 ‘경기순응적’(pro-cyclical)(“경기가 좋을 때는 경기를 더욱 자극하고 경기가 나쁠 때는 오히려 경기를 더욱 위축시키는” 뜻임) 기능을 할 것이다. 저축률이 2002년 수준인 2.4%로 되돌아간다는 것은 곧 개인소비지출이 2% 줄어든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둘째, 고용과 임금소득에서도 기대할 게 없다. 실업이 늘어남에 따라 실질소득을 떨어뜨리는 하향 압력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올해와 내년에 임금소득은 기껏해야 0.5%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다. 올해 여름부터 2010년 여름까지 24개월 동안 실질개인소비지출은 1.5~3.5%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셋째, 일반적으로 공공투자정책은 ‘경기역행적’(contra-cyclical)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지만, 미국의 정부예산은 2009~2010 회계연도에 상당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어, 그나마 대안이 될 수 없다. 특히 앞으로 몇 개월 이내에 미국의 국가재정은 심각한 상황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무척 높다. 이미 27개 주가 주택가격 하락으로 지방 재정에 빨간 불이 들어온 상태다.
  이런 모든 사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서브프라임 위기’가 미국 경제사에서 단기적인 ‘반짝 사태’(blip), 말 그대로 ‘B급 위기’가 아님을 분명히 말해 주고 있다. ‘서브프라임 위기’는 단순히 ‘은행 위기’가 결코 아니며, 짧게는 2002년부터 2007년 사이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도저히 지탱할 수 없는 기반에서 이어졌고, 길게는 1980년대 초에 일어난 ‘보수혁명’이 낳은 사회경제적 정책으로 인해 미국 경제의 성장 기반이 근본적으로 무너진 데서 그 뿌리를 찾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경기침체의 직격탄은 일차적으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 나라들에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의 일부 은행들도 모기지담보부증권(MBS) 거래로 큰 손실을 입기는 했지만, 여전히 아시아태평양 나라들이 심각한 금융위기를 다시 맞을 가능성은 아직 높지 않은 편이다. 중국은 이제 미국을 뺀 다른 나라로의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경기침체로 인해 커다란 피해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심지어 최근 발생한 대규모 지진이 중국 경제엔 되레 플러스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중국 정부가 지진으로 파괴된 지역을 재건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크게 늘릴 경우, 냉정하게 말해 이는 베이징올림픽 특수와 더불어 중국 경제 내부엔 엄청난 활력을 가져올 수도 있다.

‘글로벌 불균형’ 해체 속에 사회경제모델 지각 변동
그럼에도 아시아 나라들 역시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글로벌 경제의 모습을 대대적으로 바꿔놓는 것임을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막연하게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경기순환상의) 위기의 모습은 깨끗하게 잊어야 한다. 현재의 경제위기는 규모나 범위 면에서 지난 1929년의 대공황에 견줄 만한 경제적 사건임에 틀림없다. 글로벌 경제를 지탱하는 패러다임 변화가 뒤따르는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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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위기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붕괴와 금융기관의 신용위기를 넘어, 지난 1980년대 초 이후 뿌리를 내린, 지극히 불평등한 소득분배정책에 기초한 사회경제적 모델이 더 이상 지탱될 수 없음을 말해 주고 있다. 자산소득자보다는 임금소득자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세정책, 공공정책의 무차별한 축소, 그리고 무분별한 시장 개방을 불러온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모델이 심판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특히나 이번 위기는 지난 1997~98년의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자리 잡은 아시아-미국 사이의 일시적인 ‘타협체제’가 흔들리고 있는 시점에 찾아왔으며, 흔히 ‘글로벌 불균형’이라 불리는 그 타협체제의 해체를 동시에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미국 소비자들은 빚을 내 펑펑 소비를 해대고 그 덕에 아시아 나라들은 경제성장의 열매를 따먹던 그 ‘불균형적인’ 타협체제의 기반은, 미국 경제의 위기와 함께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아시아 나라들 역시 겉으로 드러난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경제의 대지각 변동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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