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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형식 연구원
최근 한국의 사회적 기업 논의는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와 기존 영리기업의 논리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반면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의 중요한 토대이자 실체인 시민사회의 역동성은 정책 중심의 논의로 흡수되는 것처럼 보인다. 유럽에서의 사회적 기업을 둘러싼 마스터프레임 갈등은 한국 시민사회 주체들이 좀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전략을 준비해야 함을 시사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사회적 경제 담당부서를 둘 정도로 사회적 경제에 대한 관심과 협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후 신자유주의 성향의 집행위원회가 지속되면서 사회적 경제 담당부서가 없어지고, 중소기업을 담당하는 부서와 사회통합 및 고용을 다루는 부서들로 업무가 분산되는 과정을 거쳤다. 90년대 중반 이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사회적 기업이나 사회적 경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이런 관계에 불만스러워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 3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기업산업국 중소기업경쟁력과의 주관으로 ‘사회적 기업에 관한 유러피언 콘퍼런스’가 열린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 경제위기로 촉발된 유럽연합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정책적 의제로 진전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사회적 기업을 주제로 한 콘퍼런스를 먼저 제안하고 조직한 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로 평가될 수 있다. 또한 유럽연합이 아직까지 추상적인 개념이고 실질적인 대상도 모호한 사회적 기업이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의제를 제안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사회적 기업 이슈에 대한 실질적인 카운터파트너인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정책적 관심을 환영하면서도, 그 내용에 대해 현실과 떨어진 일방적인 ‘마스터프레이밍’이 될 수 있음을 깊이 우려하고 있다.

 

이런 우려는 콘퍼런스 당일 현실로 드러났다. 3월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콘퍼런스는 유럽연합의 재정지원으로 시작해 2007년 완료된 ‘유럽 사회적 기업 부문에서의 실천과 정책들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기업 현장 사례와 지원 사례를 청취함으로써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사회적 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지원정책을 적극 고려하겠다는 기조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기존 논의와의 연속성 부재, 부실한 자료, 연구과정에서 현장과의 소통 부재 등이 토론을 통해 심각하게 지적되면서, 연구 주체와 연구를 지원한 집행위원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졌다.

 

콘퍼런스의 결론을 맡은 유럽노동자협동조합연맹 펠리체 스칼비니 의장은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교한 개념 정립이 필요함을 제안했다. 공익적 목적과 기업가적 역동성, 민주적 거버넌스를 주요 고려사항으로 제시했다. 이는 사회적 기업이 갖는 혁신적 성격과 공익적 결과를 중시하면서도, 거버넌스 문제는 가볍게 다루는 일련의 흐름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이미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사회적 경제 진영의 주도적 구실을 밝히는 것이었다. 결국 콘퍼런스를 계기로 사회적 기업 개념을 부각시키려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드라이브는 한동안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엄형식 벨기에 리에주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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