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리뷰] 한국의 마을 디자이너 
강원 횡성 공근공동체의 50대 삼총사
 

8000497157_20100629.JPG
» 공근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왼쪽부터 정흥환 현 대표, 변병구 2대 대표, 정현모 초대 대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공근리. 마을 언저리로 돌아드니, 가장 먼저 시퍼런 논두렁이 눈길을 잡아끌었다. 잡초가 제법 빽빽해 보이는 곳도 있었다. 전설적인 유기농 생산공동체 마을에 들어선 것이다.
 

“어디 가서 이렇게 시퍼런 논두렁 볼 수 있나요? 우리는 약(제초제) 안 치고, 예초기로 일일이 깎아주거든요. 일이 너무 고되고 힘들지만,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잘 따라줍니다.”

 

 

25년 전 농민회원 6명으로 시작

 

이곳 공근공동체의 대표를 맡은 정흥환(54)씨의 말이다. 공근공동체는 1985년 한살림 창립의 한 축을 맡았던, 한살림의 살아 있는 역사이다. 당시 지학순 주교가 이끌던 원주한살림에 유기농을 공급한 최초의 생산공동체로, 처음에는 가톨릭농민회원 6명이 주축이었다.

 

공근공동체를 찾은 6월 중순. 때마침 마을의 청곡다리 밑에서 천렵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23가구의 회원 가족 50여명이 삼계탕·보신탕·돼지고기를 놓고 이야기꽃을 피웠고, 정 대표의 집으로 2차 여흥이 이어졌다.

 

“마을 모임은 하루 전에 연락해도 100% 전원 참석합니다. 도시로 홍보활동 나가자고 하면 모두 앞장섭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돌아가지요”라고 정 대표가 말했다. 공근공동체는 매달 월례모임을 연다. 그 자리에서 각자 생산 품목을 보고하고, 정보를 교류한다. 품목 변경이 있을 때는 즉시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의무를 어길 때는 그 품목을 팔아주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칙도 유지하고 있다. 여성들은 별도로 달마다 여성생산자모임을 열고 친목을 다진다.

 

공근리에서 유기농 재배를 처음 시작한 사람은 정현모(57)씨다. 공근공동체의 초대 대표를 맡아 공동체 운영의 초석을 다졌다. “처음에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다가, 90년대 들어 환경 의식이 높아지고 소득이 생기니까 사람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더군요.”

 


 

8000497158_20100629.JPG
» 공근공동체 회원들이 마을의 체험학교에서 밤 시간을 이용해 천연비누 만들기를 배우고 있는 모습.

 

생산물량 모두 한살림에 납품

 

그는 “공근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은 안정적인 고소득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실제로 23가구가 63만㎡의 유기농 농사에서만 가구당 연평균 5천만~6천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4천만원 이하의 소득을 올리는 일부 고령 회원들도 있지만, 1억원 이상 고소득을 올리는 농가도 있다. 이들은 한살림 유기농 감자의 70%를 공급하고, 찰벼와 찰옥수수, 고추 등도 생산한다. 한살림 계약재배여서 전량 판로가 확보될 뿐 아니라, 출하 3주 뒤면 통장으로 꼬박꼬박 현금이 들어오는 재미가 더없이 쏠쏠하다. 게다가 집집마다 유기 볏짚으로 사육하는 횡성 한우 수입은 농사 소득보다 더 많다고 한다.

 

이밖에 마을의 가공공장에서 친환경 누룽지를 생산해 연 4천만원대의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깨끗한 시설을 갖춘 농촌체험학교는 평상시에도 한달 이상 예약이 밀려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공근공동체를 이끌어온 두 정씨는 “우리 마을의 주축은 젊은 50대이고 돌아가면서 공동체 일을 맡고 있다”며 “공동체가 화목하게 단합하고 안정적인 소득이 유지되니까 다들 도시로 떠나지 않고 어른을 모시면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근공동체는 전체 23가구 중 절반이 넘는 14가구가 50대로 구성돼 있다. 두 정씨 중간에 2대 대표를 맡았던 변병구(59)씨도 역시 50대이다.

 

 

“안정적 소득이 공동체 유지 힘”

 

공근공동체의 전·현 대표 3총사는 올 해 들어 유기농의 확대 전파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4월에 이웃 상동리의 14농가를 회원으로 신규 가입시켰으며, 2년 안에 회원 수를 200명까지 늘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공근공동체가 한살림에서 쌓은 최고의 신용과 안정적인 판매능력이 이웃 마을을 유기농으로 전환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웃 마을에도 유기농 전환 설득

 

정흥환 대표는 “유기농은 너무나 힘든 풀과의 전쟁이자 땅과 물, 환경을 살리는 운동”이라며 “힘들어서 빨리 늙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가다가 말면 아니 감만 못하니 계속 가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현모 전 대표는 “시이오(CEO)보다 높은 게 농사‘꾼’인데, 우리는 아직도 농사짓는 사람이지 농사꾼이 되지 못했다”고 유기농 농사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우리처럼 수입이 보장되면 농사는 또 해볼 만한 직업”이라며 “하나 아쉬운 것은 아직까지 농사를 이어가겠다는 아래 세대가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횡성/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헤리리뷰 13호] “이렇게 시퍼런 논두렁 봤나요” 유기농 작물로 고소득 실현

[헤리리뷰] 한국의 마을 디자이너 강원 횡성 공근공동체의 50대 삼총사 » 공근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들. 왼쪽부터 정흥환 현 대표, 변병구 2대 대표, 정현모 초대 대표.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공근리. 마을 언저리로 ...

  • HERI
  • 2011.06.24
  • 조회수 8561

[헤리리뷰 13호] 산골 체험학교 운영하며 ‘제2 인생’

[헤리리뷰] 농촌에서 다시 희망찾기 영월 주천면 김은선씨…꿈꿔왔던 귀농 마흔에 결행 » 김은선씨가 강원 영월군 주천면 산골의 비산체험학교를 찾은 아이들에게 꽃누르미를 가르치고 있다. 산골로 다시 돌아와 일곱번의 봄이...

  • HERI
  • 2011.06.24
  • 조회수 9715

[헤리리뷰 13호] 마을 되살려낸 농촌유학 프로그램

[헤리리뷰] 농촌에서 다시 희망찾기 울산 소호마을 과감한 교육실험…사람 늘자 경제도 활기 » 울산 소호마을에 산촌유학 온 아이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 김수환(49)씨는 5년 전 도시생활을 접고 고향인 울산시 울주군 ...

  • HERI
  • 2011.06.24
  • 조회수 8328

[헤리리뷰 13호] 정부지원 정체 속 시설 급증…경영기법 도입 불가피

[헤리리뷰] 지역 사회복지시설 ‘경영 배우기’ 바람 » 평택복지재단이 지난 5월27일 팽성보건복지센터에서 ‘2010 사회복지 경영아카데미’를 열었다. 평택복지재단 제공 지역아동센터 4년 새 3배 늘어 지역 사회복지시설에...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045

[헤리리뷰 13호] 특성 반영한 맞춤형 지표 개발 한창

[헤리리뷰] 사회복지시설 평가는 어떻게 » 보건복지부 사회복지 평가대상 시설 연도별 현황 보건복지부서 3년마다 평가 국내 사회복지시설 평가는 보건복지부가 1999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 평가가 대표적이다. 시설에...

  • HERI
  • 2011.06.24
  • 조회수 8628

[헤리리뷰 13호] “지속가능경영이 모든 의사결정의 최상위 가치 돼야죠”

[헤리리뷰] HERI가 만난 사람 배동현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부사장 » 배동현 아모레퍼시픽 대표이사 부사장이 기업의 핵심 경영전략과 지속가능경영이 함께 가도록 힘을 쏟고 있다고 말한다.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 HERI
  • 2011.06.24
  • 조회수 8796

[헤리리뷰 13호] “사회적기업 덕에 새 세상 눈떴어요”

[헤리리뷰] 노동부·한겨레경제연구소 ‘찾아가는 캠퍼스 특강’ » 노동부·한겨레경제연구소 ‘찾아가는 캠퍼스 특강’ “사회적기업에 대해 들어본 분, 손 들어 보세요.” 80여명의 대학생 가운데 고작 예닐곱만이 머뭇거리며...

  • HERI
  • 2011.06.24
  • 조회수 10785

[헤리리뷰 13호] 인큐베이팅센터 입주하면 다양한 도움 받을 수 있어

[헤리리뷰] 사회적기업 출범때 정부 지원받고 싶은데 » HERI의 지상컨설팅 Q 저는 청년실업자나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구상이 끝났고 함께...

  • HERI
  • 2011.06.24
  • 조회수 10311

[헤리리뷰 13호] “가까우면서도 멀리” 정당 연계성·독립성 동시에 갖춰야

[헤리리뷰] 6·2 지방선거 통해 본 정당 싱크탱크 실태와 과제 » 정당 정책연구소가 적극적으로 지혜를 모으면 지금보다 더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사진은 여의도연구소(왼쪽)와 민주정책연구원의 토론회 모습. 각 연구소 제공...

  • HERI
  • 2011.06.24
  • 조회수 8848

[헤리리뷰 13호] 시민사회와 정당 연결통로 역할 주목

[헤리리뷰] 정당 외곽지원 싱크탱크 » 시민사회와 정당 연결통로 역할 주목 정당의 공식 연구소는 아니지만, 각 정당의 이념 및 정책 개발을 지원하고,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는 연구소들도 적지 않다. 주로 과거 정부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078

[헤리리뷰 13호] 중도우파 새 정치 지평 기대…재정적자 감축 ‘뜨거운 감자’

[헤리리뷰] 넓은 세상 다른 시각 영국 연립정부의 미래 » 지난 5월 영국 총선을 앞두고 기성 정당 정치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런던의 의사당 앞에서 상징적으로 빅벤을 처형하는 시위를 벌였다. AP 연합뉴스 민주주의의...

  • HERI
  • 2011.06.24
  • 조회수 8947

[헤리리뷰 13호] 영국 정권교체기 속 아이디어 경쟁 활발

[헤리리뷰] 세계 두뇌집단 톺아보기 » 캐머런 영국 총리. 〈한겨레〉 자료사진 5월 총선 결과 영국에 보수당과 자유민주당의 연립정부가 구성됐다. 총리에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가 선출됐다. 총리와 부총리, 내각의 핵...

  • HERI
  • 2011.06.24
  • 조회수 8944

[헤리리뷰 12호] 기업과 주민의 상생 지역산업 싹이 움튼다

[헤리리뷰]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한겨레경제연구소·지역재단 지역기업실태 공동연구보고 » 기업과 주민의 상생 지역산업 싹이 움튼다 농촌지역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역발전 과제는 뭘까? 2008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0671

[헤리리뷰 12호] ‘지역밀착형 기업’ 선순환 효과 높아…대기업은 미흡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지역기업 현황과 지역기여도 지역주민 고용률 80% 대 25% 대기업 75% “외지서 원료조달” 실패로 드러난 농공단지 정책 지역, 특히 농촌지역의 공동화가 가속화하고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495

[헤리리뷰 12호] 정부·대기업 의존 벗고 ‘순환·공생’하는 지역기업 발굴을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지역 리더들이 본 지역산업 활성화 방안 지자체 스스로 육성계획 수립을 지역내 원료조달·고용 이뤄져야 기존산업과 유기적 연계도 필요 그동안 많은 지방자치단체의...

  • HERI
  • 2011.06.24
  • 조회수 10284

[헤리리뷰 12호] 농가-가공업체-관광산업 잇는 ‘3각 연계 네트워크’ 탄탄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경북 문경 오미자산업 » 수확한 오미자를 다듬고 있는 문경 농민들. 기술지원 대가로 ‘문경산 사용’ 고령농가 소득증대에 큰 기여 공무원 팀워크도 성장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875

[헤리리뷰 12호] 일자리 창출이 지역 살리기 첫걸음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지역 악순환 구조 어떻게 끊을까 » 일자리 창출이 지역 살리기 첫걸음 에너지, 교통 혼잡, 범죄,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질환 등 참으로 많은 도시 문제를 해결...

  • HERI
  • 2011.06.24
  • 조회수 9225

[헤리리뷰 12호] 사회적 기업의 새모델 ‘농어촌 공동체회사’

[헤리리뷰] Special Report » 사회적 기업의 새모델 ‘농어촌 공동체회사’ 농림수산식품부가 사회적 기업의 농어촌형 모델인 ‘농어촌 공동체회사’를 육성한다. 농어촌 주민이나 귀농귀촌 인력이 다양한 사회적 기업이나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136

[헤리리뷰 12호] 대기업 주도로 브랜드 정착…농가소득 연계 약해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지역산업 희망프로젝트 전북 순창 고추장산업 » 전통고추장 민속마을 전통업체 72곳에 공장형 13곳 수입·외지 원료 조달 비중 높아 전북 순창에서 된장·고추장의 산업화를 처음 인식하게 된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336

[헤리리뷰 12호] 또 하나의 희망 ‘사회적 기업가’ 양성

[헤리리뷰] Special Report 삼박자 잘 맞아떨어진 평택시 사례 진안군은 ‘1도시 1특성화’ 프로그램 » 전북 진안군에서는 ‘1도시 1특성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기업 이장 제공 최근 일부 지자체가 시행하고 ...

  • HERI
  • 2011.06.24
  • 조회수 9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