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헤리리뷰] HERI가 만난 사람|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


00383467301_20110308.JPG
»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자원기업의 책임자는 긴 안목의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수 기자jsk@hani.co.kr
“영어 단어 ‘exploitation’(엑스플로이테이션)은 ‘개발’과 ‘착취’의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 이유 속에 한국가스공사의 존재 의미와 지속가능경영 필요성이 들어 있습니다.”

주강수(66)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최근 대영박물관에서 발간한 <100가지 유물 속의 세계 역사>라는 책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 책의 저자인 닐 맥그레거 대영박물관장은 ‘유물과 역사의 차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의 100가지 유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역사는 승리자가 쓴 것이지만, 유물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유물은 늘 두 개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정복자의 것이고, 또 하나는 피정복자의 것이다.

실은 한국가스공사가 늘 하고 있는 ‘개발’도 마찬가지다.


선진국과 자원보유국 사이의 갈등

“개발은 한편으로는 착취이기도 합니다. 개발자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자원을 확보하는 일이지만, 그곳에 사는 원주민 입장에서는 늘 착취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선진국과 자원보유국 사이에 늘 일어나는 갈등이 바로 이것이지요. 우리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은 피개발자 입장을 고려한 개발과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가스공사는 운명적으로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특히 사업을 공격적으로 키우고 있는 지금, 그 책임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공급망 확충으로 천연가스 사용 가구 수를 2010년 말 1300만에서 2015년에는 1500만으로 늘릴 계획이다. 외국 자원 확보도 적극 추진해,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등까지 진출하며 현재의 자주개발률 2.3%를 2017년 25%까지 늘리려 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는 외국에서 자원을 개발해서 한국으로 들여오는 데만 초점이 있었던 것과 달리, 이제 수출까지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게 주 사장의 생각이다. 매우 확장적인 경영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일찍부터 관련된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했고, 2009~2010년 다우존스 지속가능성 한국지수에도 편입됐다. 최근에는 ‘온누리사업’이라는 이름의 사회공헌활동을 통해 사회복지시설 등에 대한 가스요금 할인과 난방시설 개선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동아시아 30’에 이름 올려

2010년 말, 가스공사는 한겨레경제연구소가 한·중·일 전문가들과 함께 708개 동아시아 기업을 평가해 사회책임경영 우수기업 30곳을 추린 ‘동아시아 30’에 이름을 올렸다. 아시아 맥락을 반영한 사회책임경영 평가에서,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한국 기업 5곳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사실 사회책임경영에서 이야기하는 상생의 정신은 이미 공생, 홍익인간, 이화세계 등의 이름으로 옛 생각 속에 있었습니다. 그 정신을 지금 실천하는 것이지요.”

또 한 가지, 자원사업이 지속가능성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대부분의 계약이 장기라는 점 때문이다.

“20년짜리 계약을 추진하다 보면, 20년 뒤를 생각하면서 경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기 성과를 생각해서는 안 되며, 환경, 사회, 경제 성과가 함께 가는 지속가능경영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이유

주 사장이 취임했을 때, 가스공사에는 ‘비전 2017’이라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다.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새 사장이 전임자의 계획을 폐기하는 것과 달리, 그는 새로운 비전을 세우지 않았다. 역시 ‘장기적 관점’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자원과 관련된 기업의 책임자는, 그 긴 시간 중 잠깐 동안을 경영하는 것입니다. 긴 안목의 경영을 해야 합니다. 3년 동안의 성과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에너지 기업을 생각하면, 역시 기후변화 이슈가 떠오른다. 지나친 탄소배출로 기후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가스공사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실제 측정해 보면, 놀랍게도 공장이 많은 수도권보다 그렇지 않은 지방의 탄소배출량이 더 높습니다. 수도권에서는 천연가스가 잘 공급되고 있는 반면, 지방에서는 아직도 엘피지와 연탄을 사용하기 때문이지요. 천연가스는 화석연료이기는 하지만, 그중 탄소배출이 상대적으로 낮은 에너지원입니다. 신재생에너지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봅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화석연료 기반 기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탄소 저감 노력을 진행중입니다. 기업 자체로 탄소배출 목표를 정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개인별 탄소포인트 프로그램을 시행하면서 개인들도 변화하도록 노력중입니다. 또 기후변화를 기회로 활용하도록 녹색산업 기회를 개발하고 있는데, 상반기 중 구체적 방안이 나와 추진될 것입니다.”

주 사장은 ‘현대맨’이면서 동시에 ‘자원맨’이다. 서울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뒤 1978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해 1998년 현대종합상사 부사장을 지낼 때까지, 늘 현대와 자원이 함께했다. 그동안 그는 한 차례도 퇴근시간을 넘겨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없다고 한다. 나머지 시간에는 늘 걷고, 책을 읽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장기적인 일을 할 때는, 현재에 매몰되기보다는 아주 멀리 내다보며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당장 방만하게 한다는 비난을 듣더라도, 장기적으로 필요한 일을 반드시 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영박물관장이 꼽은 100대 세계 유물 중에는 통일신라 시대의 토기 기와 한 점이 들어 있다. 당시 신라에는 백제와 고구려로부터 강제로 압송된 호족들이 몰려들어, 때아닌 주택 건설 붐이 일었다. 그래서 도기 기와가 아닌, 대량생산이 가능한 토기 기와가 유물로 남았다. 역시 정복과 피정복의 희비가 엇갈리는 지점이다. 신라의 기와 생산자가 서 있던 바로 그 지점에, 한국가스공사도 서 있는 게 아닐까.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헤리리뷰 18호] ‘불편없는 사이버세상’ 만들어요

[HERI Media] 장애인 웹 이용 돕는 사회적기업 웹와치 » ‘불편없는 사이버세상’ 만들어요 인터넷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에겐 ‘우렁각시’ 같은 도우미다. 이를 통해 은행·관공서 일을 보고, 쇼핑과 공부도 하고 세상 돌아가...

  • HERI
  • 2011.06.24
  • 조회수 18378

[헤리리뷰 18호] 디지털이 연 ‘상징정치’ 시대…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HERI World] 해외칼럼/ 디지털 미디어와 민주주의 » 프랭크 웹스터 영국 런던 시티대 사회학 교수 이집트에서 보여준 인터넷 위력의 이면 이집트를 비롯한 북부 아프리카에서 펼쳐지고 있는 인터넷 혁명에 대해 여러 가지 견...

  • HERI
  • 2011.06.24
  • 조회수 17563

[헤리리뷰 18호] 성별 균형과 인권 보호 요구 거세진다

지속가능경영 표준화의 흐름 » 전민구 CSR 컨설팅기관 투투모로우 아시아 이사 많은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살펴보면 여전히 지속가능경영 보고와 홍보 브로슈어의 차이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근시...

  • HERI
  • 2011.06.24
  • 조회수 16112

[헤리리뷰 18호] 정부보다 발빠른 지원 ‘재해있는 곳에 생협있네’

[HERI World] 세계 톺아보기 / 3·11 일본 동북부 대지진과 생협 » 일본생협연합회 및 회원 생협이 3ㆍ11 대지진 후 신속한 지원 활동에 나서고 있다. 일본생협연합회 제공 지금 일본은 대지진, 해일, 원전 사고란 미증유의 ...

  • HERI
  • 2011.06.24
  • 조회수 27069

[헤리리뷰 18호] “모든 이해관계자에 최고의 가치 줘야 좋은 회사”

[HERI가 만난 사람] 권오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 권오철 하이닉스반도체 사장이 기업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에게 만족을 주는 협업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하이닉스반도체는 시련을 많이 겪은 기업...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752

[헤리리뷰 17호] 디지털 위험사회 해소로 가는 패스워드 사·회·책·임·경·영

[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디지털 위험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 디지털 위험사회 해소로 가는 패스워드 사·회·책·임·경·영 ‘리니지’로 유명한 게임업체 엔씨소프트(NC Soft)가 프로야구단을 창단하기로 한 것은 물론 창업자 김택...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426

[헤리리뷰 17호] 전방위 걸쳐 체감…인터넷서비스업체 책임 첫손 꼽아

[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디지털 위험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 디지털 위험 인식 조사 결과 분석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를 ‘위험사회’(risk society)라 정의했다. 과학기술과 전문가 시스템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

  • HERI
  • 2011.06.24
  • 조회수 17020

[헤리리뷰 17호] IT 활용능력은 키워주고 역기능은 차단한다

[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디지털 위험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 다음커뮤니케이션이 세운 베트남 지구촌 희망학교에서 휴가 중 봉사활동을 온 직원들이 학생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제공 디지털 미디어 기업의...

  • HERI
  • 2011.06.24
  • 조회수 14126

[헤리리뷰 17호] 개인정보 유출 피해 여전…스팸문자·디지털중독도 심각

[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디지털 위험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사그라지지 않는 소비자 불만들 디지털 미디어 기업들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역기능을 관리하는 데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639

[헤리리뷰 17호] 이윤과 책임 충돌 딜레마…사회적 합의점 찾아가야

[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디지털 위험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 왼쪽부터 한세희, 김영주, 구본권, 최희원, 김갑수. 디지털 기술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전 앞뒷면처럼 밀접히 연관된 경우가 많다. 또 정부의 규제만으로 디지털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4505

[헤리리뷰 17호] 디지털 소비자는 프로슈머…활용 넘어 책임도 고민해야

[헤리리뷰] 스페셜 리포트 디지털 위험을 관리하는 것은 정부나 기업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다. 개인도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한겨레경제연구소 디지털 위험 관련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7177

[헤리리뷰 17호] 위기의 농업 이렇게 살리자

[헤리리뷰] 녹색생활|전문가 제언 » 김효석 국회의원(민주당) 개방으로 입은 손실 보전방안 있어야 김효석 국회의원(민주당)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분석 결과를 보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연평균 8700억원, 한-유럽연합(EU) 에프...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452

[헤리리뷰 17호] 민주적 협동 원리로 지속적 혁신…위기 타개 앞장

[헤리리뷰] HERI포커스|영국 협동조합 탐방기 » 영국 최대 협동조합인 코오퍼러티브 그룹의 맨체스터 시내 소매점포 내부. 성공회대 대학원 협동조합경영학과가 2월7~14일 영국 협동조합 탐방 연수를 다녀왔다. 정치·경제적으로 변...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634

[헤리리뷰 17호] 조합 가치 되살리니 떠났던 소비자 돌아왔다

[헤리리뷰] HERI포커스|영국 유통업 5위 올라선 코오퍼러티브 그룹 코오퍼러티브 그룹이 영국 협동조합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시민들의 생활패턴 변화와 유통시스템 개선으로 협동조합은 대형 유통업체에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944

[헤리리뷰 17호] “비난 듣더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책임경영 해야”

[헤리리뷰] HERI가 만난 사람|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 » 주강수 한국가스공사 사장은 자원기업의 책임자는 긴 안목의 경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수 기자jsk@hani.co.kr “영어 단어 ‘exploitation’(엑스플로이테이션)은...

  • HERI
  • 2011.06.24
  • 조회수 11223

[헤리리뷰 17호] 사람은 사회적기업의 전부…분명한 동기 부여를

[헤리리뷰] 헤리 지상컨설팅 Q 성과도 내고 직장 분위기도 즐겁게 하려면 저소득층의 고용 창출을 위해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량 있는 직원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게다가 기존 직원들도 기업의 정체성에 ...

  • HERI
  • 2011.06.24
  • 조회수 16859

[헤리리뷰 17호] ‘싱크탱크 네트워크’가 뜬다…특정주제 넘어 분야별 협력도

[헤리리뷰] HERI싱크탱크|새로운 도약 예고하는 한국 싱크탱크 생태계 » 한국 싱크탱크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에선 한참 훗날의 일처럼 여겨졌던 정치권의 ‘복지논쟁’, ‘세...

  • HERI
  • 2011.06.24
  • 조회수 15659

[헤리리뷰 17호] 정당·사회단체·언론과 연결…영향력 극대화

[헤리리뷰] HERI싱크탱크|미국 싱크탱크들의 연대와 협력 » 미국 싱크탱크들의 역할과 협력 유형 미국 싱크탱크들은 다양한 형태의 연대와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대표적인 협동연구 프로젝트인 브루킹스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

  • HERI
  • 2011.06.24
  • 조회수 13739

[헤리리뷰 17호] 이젠 균형 성장으로…역내 협력·인적자원 개발 집중해야

[헤리리뷰] HERI월드|글로벌 위기 벗어난 아세안의 갈 길 » 비다야크 다스언론인·정치평론가 비다야크 다스언론인·정치평론가 비다야크 다스는 시민사회운동이 정치와 정책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현재 방콕에서...

  • HERI
  • 2011.06.24
  • 조회수 14643

[헤리리뷰 16호] 아시아의 눈으로 ‘동아시아 30’ 찾아내다

[헤리리뷰] ‘2010 한국 CSR’ 한·중·일 공동 사회책임경영 평가모델 첫 결실 » 사회책임경영 한중일 국가별 30대 기업 (가나다순)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10년 8월21일 토요일, 한국·중국·일본 사회책임...

  • HERI
  • 2011.06.24
  • 조회수 393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