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재난 보도의 새로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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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11일 일본 동북부 지역을 덮친 대지진과 해일로 마을 3분의 1이 바닷물에 잠기고 대화재가 났던 미야기현 게센누마.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05년 8월 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시를 쑥대밭으로 만들기 전 루이지애나주에서 발행되는 <타임스-피카윤>(Times-Picayune)은 대홍수 가능성을 예견하는 보도를 5회 시리즈로 내보냈는데 이는 실제 벌어진 일과 거의 흡사했다. 이 신문은 홍수가 나기 2년 전부터 부시 행정부의 홍수방지 예산 삭감의 문제점을 물고 늘어져온 터여서, 10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이 참사는 충분히 예견됐고, 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안타까움을 주었다. 이 신문의 기자들은 흙탕물이 시내 곳곳으로 밀려들어오는 시각에도 사무실을 지키며 ‘nola.com’이란 인터넷 사이트에 홍수 상황을 실시간으로 전했고, 많은 사람들이 홍수 소식과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이곳에 올리면서 재난 정보를 공유하는 시민 저널리즘을 꽃피웠다. 

 

최근 세계적으로 지진, 해일, 화산 폭발,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기상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태풍이나 집중호우, 가뭄 같은 재해의 위력도 한층 세지고 있어, 인류는 앞으로 겪어보지 못한 재난에 맞닥뜨려야 할 것이란 예상이 늘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정부의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는 이런 변화 속에서 재난을 어떻게 바라보고 보도해야 할까? 앞에서 예를 든 <타임스-피카윤> 같은 경우가 모범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엔은 6월 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재난’(Disaster through a different lens)이란 보고서를 통해 ‘재난위험 감축’(Disaster Risk Reduction·DRR)이란 패러다임에 입각한 보도를 권고했다. 재난위험 감축에 입각한 보도란 한마디로 재해가 난 뒤 그 참상을 충실히 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예방 조처가 충분한지 살피고, 자연재해의 사회·경제적 측면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보도를 말한다.

 

카트리나 홍수 예견했던 지역언론

 

유엔이 언론에 이런 권고를 하기까지는 자연재해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있었다. 즉, 자연재해를 불가항력의 천재가 아니라 자연의 위협에 인간이 어리석게 대응해서 생기는 인재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자연재해는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심술이지만, 여기에 인간의 욕심과 무지, 안일함이 겹쳐 재앙으로 번진다. 산림 남벌이나 지구온난화, 도시로의 인구밀집, 개발 만능주의, 가난 같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재난을 불러오고 그 피해 규모를 키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지진이나 해일, 홍수 등에 대한 조기경보시스템을 갖추고 사람들이 경각심을 갖도록 교육을 시키는 일, 건물의 내진설계 기준을 마련하는 일, 도시의 빈민가가 미끄러운 산비탈에 밀집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등이 예방에 도움이 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이 거칠어지지 않도록 친환경적 개발을 하는 것도 중요해 ‘재난위험 감축’은 재해 측면에서 바라본 ‘지속가능 개발’ 의제라 할 수 있다.


실제 같은 자연재해라 해도 사람들이 어떻게 준비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피해 규모는 하늘과 땅 차이가 된다. 지난해 1월 아이티 대지진(규모 7.0)은 22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런데 한달 뒤 칠레를 강타한 지진(규모 8.8)은 아이티보다 500배나 위력이 셌지만 사망자는 800명에 그쳤다. 아이티는 이재민 15명당 1명, 칠레는 595명당 1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차이는 건물을 지을 때 얼마나 내진설계를 했느냐가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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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R 보도 팁

 

인간의 안일함이 위협을 재앙으로

 

지난 3월의 일본 도호쿠 대지진과 이어진 지진해일로 수만명이 죽고 엄청난 재산피해가 났지만 일본이었기에 피해가 그만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는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15년 동안 건물의 내진 기준을 강화하고 재해 위험을 줄이는 데 정부 예산의 5%를 사용해 왔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1달러가 예방에 투자되면 7달러의 복구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재해구호 예산의 1% 미만이 예방에 쓰이고 있다. 일본 정부처럼 당국이 책임 있게 일을 하도록 공론을 만들어가고, 행정을 감시하는 것도 ‘재난위험 감축’ 정신에 입각한 언론의 책무이다.

재난 대처에는 교육이나 문화도 중요한데, 언론은 사람들이 재난의 위험을 깨닫고 대응능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2004년 12월 인도양 지진해일 때 타이 푸껫에 여행 와 있던 10살 영국 소녀 틸리 스미스는 갑자기 바닷물이 빨려 나가고 파도에 거품이 일자 학교 지리시간에 배운 지진해일임을 직감하고, 부모와 함께 해변의 피서객을 대피시켜 100여명의 목숨을 구했다.

 

재난이 말하는 ‘인권과 평등’ 현실

 

유엔은 먼저 언론인들이 ‘자연재해’(natural disaster)란 말 대신 ‘자연의 위협’(natural hazard)과 ‘재해’(disaster)를 구분해서 쓰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쓰이는 ‘재해’에는 인간의 책임이란 의미가 들어 있고, 예방에 대한 경각심과 투자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해가 인권의 문제이며 양성평등의 문제임을 언론인들이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유엔은 권고한다. 재해 사망자의 85% 이상은 아시아, 아프리카의 개도국 또는 저개발국가에서 나오며, 여성과 어린이는 같은 재난을 당해도 남성보다 죽을 확률이 14배나 높다.

그럼 구체적으로 재해를 어떻게 보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일까? 우선 ‘왜 이런 재난이 일어났는가?’ ‘이런 재난을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나?’ 그리고 ‘누구에게 책임이 있나?’를 묻는 데서 출발한다. 이렇게 재난의 근원을 파고들고, 사회적 의미에 천착함으로써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정치적 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유엔 “예방이 상식이 되도록 해야”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의 취재부문 부편집장을 지냈고 지금은 <비비시> 저널리즘스쿨 학장인 조너선 베이커는 “기자들은 얼마나 크고 비참하냐에 집중하는, 즉 전형적인 사건 기사의 관점으로 재해를 봐왔다”고 말한다. 사람이 많이 죽지 않았거나, 자국민이 죽지 않았거나, 그림(영상)이 좋지 않거나, 기자를 보내기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거나 하면 뉴스 가치는 뚝 떨어진다. 아프리카의 기근같이 새로운 것(news)이 아닐 때도 결코 신문과 방송에 비중있게 실리지 못한다.

이와 달리 재난위험 감축 정신에 입각한 보도는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재난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정부가 조기경보체제를 갖추라는 요구를 외면했는지, 방재체제를 갖추는 데 인색하게 굴었는지, 기업이 이윤을 올리려고 안전규정을 무시했는지 등에도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이다. 아울러 재난 수습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구호품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지도 감시해야 한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미디어는 지난 30년간 음주, 흡연, 식습관, 에이즈 예방, 환경 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크게 개선했다”며 “재해는 대비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자동차 사고를 겪지 않았어도 안전벨트를 매듯이예방이 상식이 되도록 미디어가 구실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경제적 지표로 본 재난

 

10년간 1조달러 손실…희생자 대부분 약자들

 

인류는 앞으로 더 강하고 더 잦은 자연재해와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유엔에 따르면 2000~2010년 매년 400건의 (보고된) 재해가 발생해 평균 9만8000명이 죽고 2억26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아이티 지진으로만 22만명이 숨진 지난해에는 사망자 수로 보면 요 몇년 사이 최악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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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별 재난에 의한 사망자 비율/보고된 재난 증감 추이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재해로는 지진과 가뭄이 으뜸이다. 이 기간에 68만명 이상이 지진으로 사망했다. 건물 붕괴와 이어지는 화재로 인한 지진피해는 도시화는 진행됐으나, 내진설계는 미흡한 중위 소득 국가에서 매우 크다. 가뭄은 아프리카에서 맹위를 떨치며 많은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1980년 이래, 가뭄과 이어지는 식량부족으로 55만8000명이 사망했고 16억명이 타격을 받았다.

 

홍수와 태풍, 이어지는 산사태 등은 가장 광범위한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경제적 피해의 72%가 여기서 발생한다. 해수면 상승으로 앞으로 홍수피해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800만명 이상이 사는 전세계 33개 도시 중 21개가 해안가에 있다. 해안가에 사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6억명이 넘고 남아시아에만 2억명이 산다.

 

경제적 타격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재난으로 입은 경제적 손실은 1조달러에 이르렀다. 지난해 재난은 1090억달러의 경제적 타격을 입혔다. 2월에 칠레를 강타한 지진은 300억달러, 오스트레일리아 대홍수 역시 300억달러의 타격을 입혔다. 올해 3월의 일본 대지진은 무려 3000억달러의 경제적 타격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아시아는 면적이 넓은 만큼 재해의 최대 피해 지역이다. 전세계 재해 사망자의 84.6%가 아시아 사람이다.

 

재해는 소득 차별적 얼굴을 갖고 있다. 지난 40년간 재난으로 숨진 330만명 대부분이 가난한 국가의 국민들이다. 유엔의 통계는 재해 사망자의 95%가 중간 또는 저소득 국가에 사는 사람이라고 밝힌다. 그들은 보험이나 복구비용이 없어 재난의 타격을 가장 오래 입기도 한다. 현재 30억명의 인구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13억은 1달러 미만으로 산다.

 

재해는 성차별의 얼굴도 갖고 있다. 신체적 어려움뿐 아니라 사회적 차별 때문에 여성과 어린이, 장애인이 재해에 가장 취약하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여성과 어린이는 같은 재난에서 죽을 확률이 남성보다 14배나 높다.

 

이렇게 발생하면 큰 타격을 입히는 재해지만 예방보다는 대응 위주로 예산이 쓰이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인도주의적 원조 가운데 2008년에는 0.7%만 예방에 지출됐다. 2009년 열린 재해위험 경감 글로벌 플랫폼에서는 인도주의적 원조 가운데 10%를 쓰는 목표를 세웠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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