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토호·공무원 유착 단번에 해결하는 방법이죠” | |
[녹색생활] 인터뷰|이재명 성남시장
“나라경제는 성장하는데 서민의 주머니는 비어갑니다. 삼성전자가 세계적 기업으로 컸지만, 얼마나 고용을 늘렸습니까? 주위에 100만원 미만의 일자리가 많고, 그나마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절대다수 국민의 삶의 질이 나빠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식으로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요?” 이재명(47·사진) 성남시장은 “궁극적으로는 협동조합의 가치와 방식에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고민이 낳은 구체적 산물의 하나가 시민주주기업”이라고 말했다. 지난 10월21일 오후 그의 집무실에서 1시간가량 대화를 나눴다. 협동조합 가치·방식 고민이 낳은 산물 왜 시민주주기업인가요? 사회적기업과는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같은 이른바 착한 기업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원래의 공적 가치를 잘 수행하지 못하는 곳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본규제가 없는 게 큰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상 1인 기업으로 변질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성남의 시민주주기업은 직원의 70% 이상이 주주여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시민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시민이 주인이어야 한다는 대원칙을 세운 것입니다. 업그레이드된 사회적기업인 셈이죠.” 이 시장은 “시민주주기업이 유럽에서 활발한 노동자협동조합과 흡사하다”는 지적에 동의했다. 그는 다만 “아직은 노동자협동조합이란 단어가 우리 정서에는 익숙지 않다”고 말했다. 직원인 노동자들이 출자해 세운 유럽의 노동자협동조합 기업들은 건설, 보육, 박물관, 급식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추가예산 한푼 안들이고 처우 개선 가능 (시민주주기업 육성에) 지방정부가 나서기에는 재정이나 법제 면에서 한계가 적지 않을 텐데요? “말만 주민자치이지, 정보와 돈, 사람이 모두 서울로 빠져나가고 있어요. 우리 지역에 돈이 머물게 하려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시에서 지역생산 물품을 우선 구매할 수도, 지역기업을 우대할 수도 없거든요. 공정거래법 위반이죠. 사실, 예산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의 관급공사만 시민주주기업에 맡길 수 있어도 지역경제의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당장 가능한 청소와 경비, 폐기물처리 같은 용역사업에서 먼저 시작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청소업체 하나의 권리금이 10억~20억원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청소부들의 처우와 근로환경은 매우 취약합니다. 지역 토호들과 공무원의 유착이 공공연히 벌어지기 때문이지요. 시민주주기업은 이런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추가 예산 한푼 안 들이고, 청소부들 급여와 처우를 낫게 할 수 있습니다. 불법 유착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건강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거죠.” 이 시장은 “시민주주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 표정부터 달라졌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신생기업인데 월급도 가장 많이 받고…, 무엇보다 자신이 주인이잖아요?” “지난해에 시 도서관의 청소용역을 장애인업체에 주면서, 사전에 정해진 기준대로 급여를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그 뒤 한 청소부의 메일을 받았는데, ‘월급이 50만원이나 올랐다’고 고마워하더군요. 반장은 90만원이나 올랐답니다. 그만큼 누군가가 떼먹고 있었다는 말이잖아요?” 기존 업체의 저항이 크지 않을까요? “그냥 뺏는다면 저항이 엄청날 겁니다. 그래서 올해 폐기물처리사업에서는 판교 쪽에 새로 늘어난 일감만큼만 시민주주기업 쪽에 제한입찰 방식으로 줬습니다. 내년부터는 일반기업과 사회적기업, 시민주주기업 각각에 청소와 쓰레기 용역사업의 3분의 1씩을 할당할 계획입니다.” 시의회 못넘고 사장된 사업 많아 아쉬워 민주당 소속인 이 시장은 한나라당이 다수인 시의회의 벽을 넘지 못해 사장된 사업들이 많다고 아쉬워했다. “사회적기업이나 시민주주기업에서 교복을 생산해 학교로 무상 공급하자는 아이디어도 빛을 보지 못했어요. 유통마진 빼고 홍보비 안 들이면 생산단가를 절반 이하인 15만원대로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어요. 성남시민을 고용하고 성남시민의 자재를 공급받도록 하면 지역 일자리와 총생산을 끌어올릴 수도 있고요. 그런데 포퓰리즘이라고 시의회에서 부결시켜 버렸습니다. 시 청사의 관리용역을 시민주주기업에 맡기자는 제안도 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했지요.” 시민주주기업들이 지역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겨우 사막 한가운데에 씨를 하나 뿌린 셈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런 가치를 추구해본 적도 없어요. 솔직히 말해 아직은 젊은이들에게 ‘협동조합에 네 인생을 걸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세계화가 지역화와 함께 간다는 사실입니다. 가지가 뻗어나가는 만큼 뿌리가 더 자라줘야 해요.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시민주주기업들은 건강한 지역화의 뿌리입니다.” 김현대 선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