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등록 : 2012.07.03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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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리뷰] Special Report
초·중·고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경제교육에 대해서는 보수건 진보건 모두 불만이다. 경제학자 우석훈은 “한국의 경제교육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한다.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업단체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기획재정부 등은 경제교육이 ‘좌편향’되다 보니 반기업·반시장 정서가 만연해 있다며 2003년부터 경제 교과서 개정 운동을 벌여왔다. 이들의 요구는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교과서 개정 작업에 적잖이 반영됐다. 반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비롯한 노동계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애초 시장경제 위주로 기술된 경제 교과서의 보수 편향이 한층 심해지고 있다고 우려한다. 학생들이 흥미를 못 느껴 경제교육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오래됐다. 오늘날의 경제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본다.

친절하지 않아 아이들이 질린다=“조세 감면이 재정지출과 다른 점은 총수요에 영향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총공급에도 효과적이란 점이다.”(고교 경제, 미래엔, 181쪽) “앞의 밀 생산과 마찬가지로 생산요소의 대가와 감가상각비를 들여 60만원어치의 부가가치를 창출한 후”(고교 경제, 두산동아, 168쪽)

경제 교육용이 아니라 경제학 교재 방불

위에서 보듯 교과서의 경제영역은 초·중·고 할 것 없이 이론과 개념으로 뒤덮여 있다. 이론과 개념을 배우면 통찰력이 늘어 복잡한 경제현상이라도 핵심을 빨리 파악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그것도 학생이 필요성과 재미를 느껴야 공부가 되는 것이다. 대학의 경제원론을 축소해 놓은 듯한 현행 교과서는 경제 교육용이 아니라 ‘경제학’ 교재란 비판이 나온다. 최근에 일어난 다채로운 사례를 엮어 흥미를 일으키는 프랑스의 경제·사회 통합 교과서(4면 참조)와 비교할 때 우리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불친절하기 짝이 없다. 교과과정 자체가 이론과 개념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교과서 집필자들도 대학 교재의 문장을 풀고 다듬어 놓는 정도에 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렇다 보니 학습의욕과 성취도가 떨어진다. 2010년 청주교대에서 청주지역 초등학교 6학년생 294명을 대상으로 화폐, 생산성 등 14개 경제 개념의 이해도를 측정해보니 평균 65.8점이라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왔다. 한·미·일 고등학생 비교에서도 한국(55.7점)은 미국(61.2점), 일본(57.3점) 학생보다 경제 이해력이 떨어졌다(KDI). 전교조가 지난해 6월 전국 5~6학년생 98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학생들에겐 ‘사회’가 가장 어렵고, 그다음이 ‘수학’이다. 초등학교 사회 숙제는 ‘부모 숙제’란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학보다 어려운 사회…숙제는 부모 몫

경제 공부가 어렵다고 소문이 나서 이를 배우는 학교와 학생이 점점 줄고 있다. 정부와 재계는 경제 공부를 강조하고 있으나 현실은 반대로 가는 것이다. 일반계 고교 가운데 선택과목으로 경제를 배우는 곳은 10곳에 4곳(38%, 2010년 현재)꼴이고, 자연계를 포함해 경제를 배우는 고교생의 비율은 2010년 24.2%로, 2008년 27.0%보다 줄었다. 수능시험에서 경제를 택한 응시생은 2011년 약 4만1천명(11.3%)으로 2006년의 8만6천명(27.8%)에서 절반으로 줄었다.

아이들에게 ‘판단 정지’를 요구한다=경제교육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합리적 의사결정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합리적 의사결정은 손익계산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무엇이 옳은 일이냐는 윤리적 판단이 함께해야 한다. 우리는 소비자이자 생산자, 개인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복합 인격체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값이 싼 기업형슈퍼(SSM)로 음료수를 사러 갈까, 아니면 요즘 주인아저씨 얼굴이 부쩍 어두워 보이던데 동네슈퍼로 갈까” 하는 고민만 해도 이를 보여준다. 경제교육은 일상에서 부닥치는 이런 갈등과 딜레마를 숙고할 훈련 기회이다.

그래서 경제교육은 경제가 진공상태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정치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의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통합적인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도록 설계해야 한다. 가치판단의 딜레마는 보통 대립과 갈등 상황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때문에 노동과 자본, 시장과 정부 같은 대립하고 협력하는 주체 및 제도들을 공정하게 가르치고, 이론 속의 경제가 현실에서 어그러지고 추해지는 모습도 가감없이 가르쳐야 한다.

경제 현상에 대한 비판적 생각을 불온시

하지만 현행 경제교육은 경제가 정치나 사회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양 다루고, 가치판단과 이에 필수적인 비판적 인식은 학생이 멀리해야 할 ‘불량식품’인 듯 다루고 있다. 한 국책연구소가 2006년에 내놓은 경제교육 목표에는 “세계경제 질서를 충분히 이해시키기 이전에 비판적인 안목부터 배양한다면 배워야 할 대상에 대한 거부감을 조성하기 쉽다”며 “시장경제에 대한 비교체제론적 비판은 대학 수준의 교육으로 미루고 고교 과정에서는 시장경제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기초지식을 가르친다”고 나와 있다.

재계와 관변 연구소들의 편협함은 학생들을 불온한 생각의 주입과 세뇌에 노출된 수동적 존재로 보는 강박증으로 나타난다. 기업단체들이 반기업·반시장 정서가 교과서 때문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이나, 엄연한 현실인 빈부격차, 매점매석(사재기), 고금리 같은 시장경제의 부작용들을 경제 교과서에서 언급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도 강박증의 일종이다. 심지어 기업의 사회적 책임, 기업의 윤리성, 건전한 소비생활 같은 상식적인 언급마저 교과서에서 삭제하라고 할 정도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참고하는 미국만 해도 우리와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경제학회(AEA)는 교과서의 기준으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가치판단의 본질은 설명되어야 하며, 관련이 있을 때마다 명확히 해야 한다. 논쟁적 주제를 피하지 말아야 하며,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을 주고, 사실과 가치판단을 구분하도록 한다.”(시장경제연구원 2011.12)

지적인 ‘편식’을 시킨다=경제 교과서는 주류 경제학의 시각에서 쓰인 시장에 관한 학문이다. 시장은 생산을 조직하고 자원을 배분하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인류가 이만한 생산력과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된 것도 시장 덕분이다. 하지만 경제는 시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원 배분만 해도 시장 외에 정부의 재분배, 호혜적 교환 등이 있고 이들은 시장보다 더 오래 인류와 함께했다. 그러므로 경제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을 편중되지 않게 가르쳐야 학생들이 문제에 대처하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자유시장 찬양 일색, 대안 제시엔 눈감아

하지만 지금의 경제교육과 교과서는 자유시장을 설명하는 데 과도한 지면을 할애한다. 그것도 시장이 가진 효율성과 생산성을 찬양하고, 시장과 거래의 원리를 건강, 교육, 가정생활 등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장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식의 ‘시장지상주의’ 경향마저 띠고 있다.

‘시장의 실패’와 ‘시장의 도덕적 한계’에는 눈을 감는 이런 식의 가르침은 미국 철학자 마이클 샌델이 얘기하듯 진심, 순수한 열정, 품위와 같이 “돈의 논리가 작용하지 말아야 할 영역”이 있고, 시장은 이런 ‘비시장가치’를 탈락시켜 밀어낸다는 점을 감춘다.

2013년부터 바뀌는 교과서의 기준이 되는 ‘2011 경제교육과정 개정안’도 시장과 금융 자산 관리는 더욱 강조하고 시장 실패에 대처하는 정부의 기능이나 노동은 축소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학교 사회 교과서의 경우 경제 관련 중단원 12개 가운데 노동에 대해서는 1개 소주제로 간략히 다루고 있다.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도 종전 1개 단원으로 다루던 ‘시장기능의 한계와 정부의 개입’이 빠지고, 자산관리를 가르치는 ‘경제생활과 금융’이 그 자리를 채웠다. 독과점, 소득분배, 불평등에 대한 언급도 빠졌고 노동은 제대로 다루지 않고 있다.

현재 여러나라가 시장 실패를 치유하려 정부와 사회적 경제(제3섹터)의 역할을 고민하는 중인데 우리 교과서는 이런 것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글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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