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집안일에 지불할 준비됐습니까

세계 최고 수준 긴 노동시간이 가사 분담 막아 
가사노동 가치 인정해도 임금화는 거부감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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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행복 그리고 여성

인류 생존의 틀을 마련했던 돌봄과 재생산 등 여성이 지닌 장점은 자본과 힘의 논리에 밀려 거의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했다. 가정은 노동력 재충전의 장소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육아나 살림은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일보다 훨씬 싼 노동의 대가를 받을 뿐이다. 예전엔 여성 가사노동의 화폐적 가치를 논하는 것조차 금기였다. ‘어머니의 숭고한 노동을 어떻게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느냐’는 논리다. 세상은 바뀌고 있다. 가사노동의 경제적 가치를 따져야 할 필요는 이미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사고 등에 따른 손해배상이나 이혼시 재산 분할, 사회보험 등의 영역에선 이미 적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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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남녀 가사노동 시간 격차가 가장 큰 나라에 속한다. 명절에도 가족을 만나는 즐거움에 앞서 차례상을 위한 음식 장만이 여성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준다. 한겨레

“왜 해도 해도 집안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대부분의 주부가 품는 의문 중 하나일 것이다. 한 가지 일을 끝낸 뒤 허리를 펴고 쉴라치면 또 다른 일이 기다리고 있다. 끊임없는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날을 헛되이 꿈꾸게 된다.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2008년 속보 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받기도 한 <워싱턴포스트> 기자 브리짓 슐트는 항상 시간에 쫓기면서 허둥지둥하기 일쑤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 그는 해답을 찾아 길을 나섰다. 사회학자와 상담을 벌이고, 국제 세미나에 참가하기도 하고, 전문가들과 인터뷰를 했다. 이렇게 만난 사람들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일·가사·휴식의 균형을 찾기 위한 나름의 다양한 해결책을 찾았다. 그는 이런 내용을 담아 <타임 푸어>(더퀘스트 펴냄, 2015)라는 책으로 펴냈다.


통계청이 5년 주기로 조사하는 ‘2015 생활시간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4년 현재 20살 이상 한국 여성이 집안일에 쓰는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28분이고 남성은 47분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집안일을 4.4배나 많이 하는 셈이다. 10년 전인 2004년과 비교해보면, 여성은 11분 감소했고 남성은 11분 늘었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동안 남녀 가사노동 시간의 격차가 22분 줄었을 뿐이다.


‘집안일은 여성 몫’ 인식 여전

나이별로 보면 육아를 해야 할 시기인 30대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4시간55분으로 가장 길었다. 전업주부는 하루 6시간을 가사에 매달리고 있다. 미취학 자녀가 있는 여성의 가사노동은 6시간37분에 달했다. 남자는 일, 여자는 가정이라는 ‘전통적인 남녀의 성 역할’에 남녀 응답자의 64.3%가 반대했으며, 35.7%만이 찬성이라고 응답했다. 여성, 10~30대, 대졸 이상, 미혼이 상대적으로 이런 의식에 강하게 반대 의사를 표했다.

‘가사노동 분담 필요성’에는 남성들도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남자들의 머리와 달리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성의 비율은 47.5%지만, 실제로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6.4%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가사분담 만족도에서 남녀의 응답이 엇갈린다. 남성은 35.4%가 만족, 8.2%가 불만족이라고 답해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비율이 압도적이었다. 여성은 29.9%가 만족, 23.5%가 불만족으로 서로 비슷하게 나타났다. 남자에 비하면 불만족 비율이 3배에 이른다. 하루가 24시간으로 일정한데 가사노동 비율이 높다는 것은 여가와 휴식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뜻이다. 여성들이 더 피곤하고 생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가사노동 시간, 세계 평균 밑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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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또 하나 눈여겨볼 만한 사항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사노동 시간이 현저히 적다는 점이다. 가사노동을 할 시간이 없거나 다른 사람이 대신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 가족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에 아직도 깊이 물들어 있는 점에 비춰 우리나라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다른 나라 여성보다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사실은 반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여성의 하루 평균 무급 노동시간은 3시간47분으로 OECD 평균 4시간31분보다 44분 짧다. 스웨덴 3시간26분, 노르웨이 3시간31분에 이어 세 번째다. OECD의 무급 노동 통계에는 자원봉사가 들어 있어서 한국 통계청의 가사노동 시간보다 수치가 높게 나타난다. 우리나라 가족 구성원은 다른 나라에 비해 어머니 또는 아내로부터 서비스를 덜 받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림 참조)


가사노동이 이렇게 짧은 데는 세계 최장에 속하는 유급 노동시간 때문으로 분석된다. 남성의 유급 노동시간은 하루 7시간2분으로 7시간51분인 일본에 이어 2위다. 여자는 4시간33분으로 OECD 회원국 가운데 6시간13분인 멕시코에 이어 역시 2위이다. 유급노동 시간이 늘어나면 가사노동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파김치가 된 상태로 일터에서 돌아와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가사노동은 유급 노동시간을 제외한 자유시간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의 부담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급 노동시간이 긴 나라들에서는 남성의 무급 노동시간이 적은 경향이 있고, 유급 노동시간이 적은 나라에서는 무급 노동시간이 길게 나타난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연간 근로시간이 긴 나라일수록 하루 무급 노동시간이 점차 증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유급 노동시간이 길수록 무급 노동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가진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제한되면서 무급 노동시간이 길어지고, 남성의 무급 노동 참여도 제한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또 맞벌이 가정에서 여성의 유급 고용시간이 증가할 경우 가정에서 가사노동 시간은 줄어들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실증적 연구를 보면, 남성들의 가사노동은 거의 변함없는 것으로 나온다. 여성에게 전통적인 성 역할이 강요되고 남자들은 여전히 가족관계의 일과 무관한 것이다.


보상 없는 ‘그림자 노동’

여성이 무보수로 봉사하는 가사노동은 연봉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될까? 200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태홍·문유경 연구팀은 전업주부 가사노동 가치를 월평균 85만6천원~102만6천원으로 평가했다. 통계청의 생활시간 조사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회비용법을 이용해 전업주부의 노동가치를 연간 70조9천억원으로 산정했다. 이러한 평가액은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14.9% 수준이며, 임금총액의 30∼35%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2008년 ‘전업주부, 연봉을 찾아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다. 전업주부의 가사노동 가치를 현실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음식 준비, 세탁 등 의류 관리, 청소, 시장 보기, 자녀나 부모 돌보기 등 37개 항목에 사용된 시간을 산정해 월급으로 환산해주는 것이다. 12시간을 꼬박 살림에 매달리며 초등학교 1학년 딸과 3살 아들을 키우는 37살 전업주부의 월급은 약 371만원으로 추산됐다. 연봉으로 따지면 약 4452만원. 연구원은 당시 노동부가 발표한 ‘2006년도 전체 직종 임금’ 자료에 근거해 전체 직종 평균 시간당 임금 1만172원을 적용했다.


이에 앞서 2001년 여성부(현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은 우리나라 주부의 무보수 가사노동의 가치를 산정한 적이 있었다. 정식으로 GDP에는 포함되지 않는 가사노동 가치를 체계화해 ‘위성계정’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계산해보니 1999년 가사노동 가치는 143조~169조원으로 GDP 477조원의 30~35%에 이르는 것으로 계산됐다. 당시 가사노동 위성계정 개발 국가는 호주,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캐나다, 미국 등 선진 6개국에 불과했고 아시아에서는 처음이었다. 여성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나 이후 이 통계는 집계된 적이 없다. 통계청 조사를 재가공해야 하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다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구직 전문 사이트 ‘샐러리닷컴’ 조사를 보면, 미국 전업주부의 연봉은 14만3천달러(약 1억5760만원)를 넘는다. 주당 평균 92시간을 일하는 것으로 계산했다. 59시간 일하는 워킹맘의 평균 연봉 9만200여달러(약 9940만원)를 훨씬 웃돈다. 주부 1만5천여 명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계산했다.



“주부에게 월급을 줘라”

가사노동 논쟁은 1970년대 국제적인 여성운동의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1972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는 미국 여성운동가 셀머 제임스 등이 주도한 ‘가사노동에 대한 임금’ 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가사노동이 노동력 생산에 기여하고 자본을 생산하는 노동”이라며 금전적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미국과 유럽 등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후 45년이 흘렀지만 애초 목적에 근접하는 눈에 띄는 성과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최근 사례로는 2012년 인도의 여성·어린이 개발부 장관이 남편의 월급 가운데 일정 비율을 아내에게 주도록 하는 방안을 정부 차원에서 검토했으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다.

한국에서는 2005년 한나라당이 연말소득공제에서 부녀자 공제를 연간소득 100만원에서 1200만원으로 늘리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가사노동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편협한 인식을 더욱 강화한다”는 등의 이유로 여성단체로부터 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토론의 장을 제공하는 국제토론교육협회(IDEA)가 홈페이지에서 ‘주부에게 월급을 주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주부들에게 정부가 급여를 제공하는 것으로 세금 감면 또는 리베이트 형태로 주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을 법한 청소년들인데도 반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주부가 하는 일의 가치 평가에는 반대 주장이 거의 없다. 그렇지만 그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할 것이냐 하는 방법론에는 논의가 갈린다. 그 가치를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로 가면 논의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토론 참가자들에 대한 분석이 없어서 구체적인 이유는 알 길이 없지만 남녀평등을 가로막는 장벽이 두텁다는 것은 실감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OECD 국가 가운데 바닥 수준이다. 여성의 경우 결혼 뒤에 행복도가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온다. 앞에서 예를 든 <타임푸어> 저자 슐트는 가사노동에 지친 여성들에게 “무작정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한다. ‘슈퍼맘’ ‘이상적인 주부’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는 뜻이다. 또 사회와 기업, 특히 남성의 변화가 필요함을 아울러 지적했다. 가족의 행복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의 행복을 위해 사회와 남성들이 나설 차례다.



김학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kimhj@hani.co.kr


등록 : 2016-11-15 23:50 수정 : 2016-11-16 17:42

한겨레21에서 보기: http://h21.hani.co.kr/arti/HERI/H_special/426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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