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리뷰

[노동시간과 행복] 더 긴 출퇴근에 더 긴 노동 준비로 평균 노동시간 줄어도 ‘여가시간’은 빈곤


얼마나 일해야 할까? 적게 일할수록 행복할까? 행복을 둘러싸고 한국인에게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는 아마 ‘노동시간’일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노동시간 반대편의 적절한 ‘여가시간’은 행복을 위해 필요한 기초 조건이다. 노동시간과 여가시간의 명확한 분리가 존재하지 않았던 고대에서조차 대부분의 문화권에서는 휴일 혹은 안식일이 존재했다. 무릇 인간에게는 노동에서 벗어난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적절한 여가시간 확보는 행복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높은 임금, 충분한 복지도 필요하지만 나인투파이브(오전 9시~오후 5시)가 지켜지는 근로시간은 여가 확보에 필수적이다. 2014년 한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멕시코에 이어 2위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에세이 ‘우리 후손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경제 발전에 따라 시간당 생산성이 점차 증가하면서 평균 노동시간도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의 예상은 맞지 않았다. 기술 발전으로 시간당 생산성이 높아졌음에도 동시에 개인이 맡은 업무량의 절대치 역시 증가했다. 20세기 내내 근로시간은 혁신적인 수준으로 줄어들지 못했다. 21세기 들어서는 그 감소세마저 정체되고 있다. 근로시간이 정말로 현격히 감소했는지도 미심쩍다. 왜 그럴까?


흔히 우리는 저임금 노동자일수록 상대적으로 길게 일하고, 고소득 화이트칼라는 퇴근 뒤 여가를 즐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저임금 노동자는 일하기 원하는 시간보다 더 적게 일하는 반면, 고소득 노동자는 더 많이 일한다. 단기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는 근무주기가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평균 근로시간 총량은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고소득자는 경쟁사회 아래 끊임없는 경쟁에 직면하므로 노동시간을 줄이기 어렵다. 내려가지 않기 위한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평균 노동시간 감소는 노동자 집단 내부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게다가 주요 도시 거점에 직장 및 문화·편의 시설이 몰려 있어 통근 시간은 갈수록 늘었다. 교통수단 발달에 따른 이동편의성은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긴 통근의 물리적 경계를 사라지게 한다. 예컨대, 세종시 공무원들이 수도권 집까지 오가는 기차 시간 2시간30분가량이 대표적이다. 늘어난 출퇴근 시간 부담은 평균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지옥철의 스트레스는 덤이다).


직접적 노동은 아니지만 노동에 필요한 준비 시간도 더욱 늘었다. 직업을 갖기 위한 자격 수준이 과거보다 더 높아졌고, 자격을 획득하기 위한 교육·학습 등 준비 시간 역시 이에 비례해 증가하고 있다. 직장을 가진 뒤에도 직업 능력 유지 혹은 이직을 위한 자기계발 시간이 늘어났다. 이런 각종 준비 시간(기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엄연히 개인의 노동과 연관된 시간임에 틀림없다. 자연히 24시간, 365일 중 노동 관련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여가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혼 남성노동자의 가사 부담도 추가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대폭 증가하면서 부부가 함께 가사노동 부담을 나눠 진 것이다. 이는 남녀 간 공평한 가사노동 분담이라는 점과 별개로, 맞벌이 구성원의 가사노동 부담 증가에 따른 휴식및 여가시간의 빈곤을 초래한다. 이 역시 여가시간의 손실로 측정되지 않는다.


더 많은 노동시간이 주는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행복감을 늘려줄 수도 있다. 여가를 희생하며 더 오래 노동하는 건 행복을 얻기 위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이런 ‘기회비용 추구자’는 조직 내의 불필요한 경쟁과 노동시간 증가를 유발한다. 이는 특히 집단주의적이며 권위적 기풍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기회비용을 사랑하는’ 관리자들은 부하 직원에게 더 열심히 일할 것을 강조하고, 소모적이며 타율적인 노동을 유도한다. 본인이 원해 일에 매진하는 건 워커홀릭 개인의 문제이지만 조직 전체가 여가시간을 희생하도록 만드는 건 생산적이지도 않고 행복 총량도 훼손한다.


윤석준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교육연수생 labyrinth99@naver.com




등록 : 2016-05-20 17:40
한겨레21에서 보기: http://h21.hani.co.kr/arti/HERI/H_special/417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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