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지난달 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눈높이 정책검증 시리즈 전문가 좌담회를 하기에 앞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이건범, 하승창, 한귀영, 이상호, 오건호.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눈높이 정책검증 ⑦ 정책실종 선거 전문가들 좌담
좋은 정책이슈 많았는데도 정당들 내부정치만 매달려
야권도 심판론에만 매몰 소수정당 의제 배려돼야 
이번 총선은 여느 때와 달리 정책선거를 치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적어도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그렇다. 2008년 촛불집회로 인한 생활정치 이슈, 용산참사에 따른 서민 생존권 이슈를 거쳐 지난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날려버린 무상급식 이슈까지 각종 정책 이슈가 잇따랐던 까닭이다. 새누리당마저 깃발을 꽂으면서 ‘모든 정당의 복지정당화’가 이뤄질 듯한 분위기도 이런 기대에 풀무질을 했다.

그러나 결과는 허무했다. 정당체제 개편으로 시작된 선거국면이 공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런 이슈들은 뒷자리로 밀려났다. <한겨레>가 정책선거를 유도하기 위해 여섯 차례 보도한 ‘눈높이 정책검증’ 시리즈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정책선거 실종’의 범인으로 거의 비슷한 몽타주를 그려냈다. 정책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집권여당, 독자적인 비전 없이 심판이라는 구도에 매몰된 야당, 정당과의 이벤트식 정책협약에 매달린 시민단체 모두를 공범으로 지목했다.

오건호 글로벌경제연구소 연구실장, 이상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국장, 이건범 교육희망네트워크 정책팀 활동가, 하승창 싱크탱크 대표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하니티브이 스튜디오에 모여 선거국면 정책 실종 상황을 되짚으며 격정적으로 토론했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이 사회를 맡았다.

선거기간 돌아보니

좋은 정책이슈 많았는데도
정당들 내부정치만 매달려
야권도 심판론에만 매몰
소수정당 의제 배려돼야

사회자 유권자들이 직접 각 당의 정책을 검증하는 눈높이 정책토론에 전문가로 참여한 분들이다. 총평을 해달라.

이건범 교육문제에서 새누리당은 교육 바깥의 이야기가 중심이 돼 사람들이 실제 고통받는 문제는 얘기하지 않았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정책은 사실상 똑같은데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게 돼 있다. 야당이 교육을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이슈가 터지게 된 배경에 대한 접근 없이 반값 등록금만 얘기하면 무책임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야당이 교육구조 개혁의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다가가는 정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건호 선거 공약이라는 게 “이 정치 세력이 집권했을 때 곧바로 내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느껴져야 하는데 탁상공론으로 받아들여진다. 실행 프로그램으로 여겨져야 한다.

이상호 유권자들이 정책의 세밀한 내용보다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될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소수당의 정책은 실현 가능하지 않다는 회의론도 갖고 있다. 노동시장 전체의 구조를 보고 종합적인 대책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하승창 청년 일자리, 주거문제 좌담 때는 참석자들이 깊이 연구한 게 아님에도 정당 정책의 문제점을 상식의 수준에서 지적했다. 정당 정책의 눈높이가 구체적 적용 가능성이나 실효성에서 정책 대상자들의 실태나 조건에 대한 구체적 파악 없이는 안 되는데 실제로 그렇게 드러났다. 정당이 정책 대상자들과 공감해야 한다.

오건호 좌담 참석자들은 미리 정당의 정책을 읽고 왔으니 토론이 가능했다. 일반 유권자들은 정책에 대한 토론 자체를 하고 있지 않다.

사회자 이번은 왜 정책선거로 가지 못했을까?

오건호 야권의 책임이 크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이번 총선이 최초의 정책선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무상의료, 보육 등은 정당이 만든 이슈가 아니다. 바깥에서 3년 동안 농사지은 것을 정당들이 저버렸다. 지난해 말부터 정당개편하고 올해 들어서는 1차, 2차, 3차 공천 등 100일 동안 공천 장사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 내부 정치로 흘려보냈다. 국민들이 정책으로 폭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정치권이 스스로 무너뜨려버렸다. 2012년은 그나마 정책선거가 가능했던 시기인데, 야당들이 과거 얘기인 정권심판론에 과도하게 매몰되면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정책공약 제시에 소홀했다.

이건범 야당이 그 생각을 어떤 정책과 새로운 사회의 희망으로 제시할지 생각했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오건호 정치 구도는 국면이 지나면 소실되지만, 정책 의제는 계속 꼬리를 물게 된다. 무상급식은 2년 뒤 오세훈을 아웃시키고 끝나지 않았나.

이상호 다르게 볼 수도 있다. 무상급식의 경우 구도에 말려들 정치 일정이 없었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의 큰 계기로서 대중을 설득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시민사회 운동진영 안에서도 자기 단체의 의제를 정당 정책의 1순위로 올리기 위해 줄대고 로비하는 과정에서 정치 국면을 활용한 측면이 강했다.

오건호 시민사회와 노동 진영 인사들이 정치권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자양분을 그대로 갖고 온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오면서 조직적 자산이 공천 과정이라는 블랙홀에 다 빠져버렸다. 그분들이 이후에 19대 국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다.

하승창 이 정부의 실정에 대한 심판이라는 구도가 워낙 압도하다 보니 시민사회도 하나가 돼야 한다는 통합이 이슈였고 의제는 혁신으로 표현됐다. 그런데 어느 순간 혁신은 사라지고 통합만 남았다. 정책 선거의 실종은 이명박 정부 심판이라는 구도에서 핵심 의제가 없어서 생긴 문제다. 심판이라는 구도에 정책 방향과 사회 혁신의 비전을 넣어 보여줬어야 한다.

오건호 민주당의 경우 경제민주화와 보편적복지 두 특위가 있다. 의제 설정은 좋았으나 공천 블랙홀에 파묻혔다.

하승창 공천 과정 자체가 유권자들과 함께 검증하는 과정이었으면 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의제와 사람이 분리되고 이 과정에서 정책이 실종됐다.

오건호 정책과 정치의 결합에서 첫번째 주체는 정당인데, 야권이 정권심판론에 지나치게 안주해서 정책 의제를 공론화하지 않았다. 두번째는 평가 혹은 검증을 하는 시민사회다. 시민사회가 유권자로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정당의 파트너로 들어가다 보니까 평가와 검증 활동이 취약하지 않았나 싶다.

하승창 총선넷 등 여러 군데서 하고 있다.

오건호 왜 알려지지 않았나?

이상호 하나로 모이지 않았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배려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이해집단에 머무르는 측면이 있다. 정치와 정책 전문가가 조절해줘야 하는데, 이게 지금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자 하나의 힘으로 집적하는 기능을 시민사회가 하기는 어렵다. 그야말로 정치의 영역 아닌가?

이상호 그게 정당의 정체성 회복이자 정당정치의 복원이다. 지금 소수정당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데, 녹색당이나 청년당 같은 소수정당이 나름의 핵심의제를 갖고 집중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배려됐다면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하승창 녹색당의 원전 문제처럼 마이너 집단을 대표하는 의제라도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할 수 있는데 정당구조가 이를 받지 못한다. 녹색당이 한 석이라도 얻으면 원전 문제가 사회 의제가 될 텐데,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정책분야별 점검

복지단체 빠진 복지공약
허술함 드러나 공격 빌미
노동도 대중공감 못 얻어
정치적 이슈화에 실패

사회자 정책분야별로 짚어보자. 가장 핵심쟁점이 될 것 같던 복지 문제가 막상 총선에서는 뒷전이다.

오건호 새누리당이 정강정책 1조에 행복한 복지국가를 담았다. 탁월한 선택이다. 여기에 야당의 안이함이 겹쳐 복지는 보편복지 세력인 야권의 공세적 의제가 아니라, 공격받는 이슈가 됐다. 민주당의 보편복지가 허술하니 공격의 빌미를 준다. 결국 보편복지 세력의 아킬레스건이 증세다. 민주당은 정면 대결을 회피하고 있다. 그리고 당사자 문제가 있다. 보편복지에 어울리는 대중조직이 구축돼 있지 않다. 복지 분야 현업인인 사회복지사, 보육교사, 요양사들이 나서 검증 들어가면 위력적일 것이다.

이상호 노동분야도 비슷하다. 노동 문제는 대중의 관심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국노총과 민주당, 민주노총과 진보당의 굴절된 관계가 노동 문제의 제도적 이슈화에 결정적 약점이다. 민주당은 스스로 노동 정책을 내놓는 게 아니라 한국노총이 낸 것을 다 받았다. 진보당과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노동 정책을 만들면서 조직화하지 않은 다른 쪽의 의견도 수렴해야 하는데, 그런 경로가 없었다.

하승창 정책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주체가 되기도 하는 이들이 정책 작성에 어떻게 결합하느냐가 중요하다. 정책에 접근하는 방향도 달라져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를 계급문제로 삼아 투쟁을 외치는 방식은 아니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100일 동안 크레인에 있을 때 계급투쟁의 문제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저 위에 사람이 있다”는 김여진씨의 말에 울림이 있었다. 어떤 시각에서 공감을 끌어낼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상호 이번에 비정규직 토론회를 10군데는 했다. 그럼에도 공감을 얻어 정치적 이슈가 되지 않는 까닭은 당위론으로 접근하는 대중조직의 한계가 작동한 듯하다. 남들에게 설득이 잘 되지 않는다. 비정규직,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등 3가지 문제를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경제민주화나 보편적 복지와 같이 가야 한다는 걸 설득해야 한다.

하승창 정치권이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해법이 아니라는 말을 해야 한다.

이건범 교육 문제도 일자리 양극화나 대학 서열화, 입시문제와 줄줄이 연결돼 있다. 해법은 지역 교육감이 할 수 있는 일들은 그대로 가되 국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변화의 힘을 하나 잡아내야 한다.

정책협약

시민단체도 노동단체도
정당 도장찍기에만 관심
진짜 실행여부는 신경안써
차라리 전략협약이라 하라

사회자 선거정책협약, 매니페스토가 어딘가 떠 있는 느낌이다.

이상호 민주노총의 경험으로 보면, 협약식이 형식적이다. 독자적인 프레임을 만들기보다는 정당에 의존하는 것은 문제다.

하승창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박원순 캠프에 있으면서) 이런 경험이 있다. 각 단체에서 협약식 맺자고 많이들 왔는데 안 하고 싶은 경우가 많았다. 단체들은 (자신들이 제시한 정책) 전체를 선택할지 말지의 문제로만 본다.

이상호 시민사회, 노동단체가 요구안을 갖고 정당에 가서 도장 찍으라는 거다. 진짜 정책협약이라면, 요구안을 갖고 만나서 정책을 조율하고 올해와 내년 계획을 짜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오건호 정책협약은 내용이 구체적이고 실행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포괄적이고 중장기적인 게 많더라. 그러니 집행력이 떨어진다. 이건 정책협약이 아니라 전략협약이다.

하승창 오늘 좌담을 계기로 그런 식의 정책협약은 하지 말자고 하자.

이건범 매니페스토가 정치인과 단체가 유권자들에게 “앞으로 실현할 거다”라고 공표하는 것이라면, 지금의 형식은 시간과 노력의 낭비다.

이상호 그 자체가 부정돼서는 안 되고, 내용을 두고 정당과 대중 단체가 논의할 문제다.

오건호 매니페스토가 해당 단체의 조직 구성원의 투표 행위에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단체가 구성원의 정치적 선택에 대표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당도 상층부에서 하자니까 하는 것이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 같다.

이건범 정당으로서는 “10만표 먹었다”는 느낌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단체에 소속된 구성인이라 할지라도 누굴 찍을지 고민할 때는 정치구도가 가져오는 압박이 크지 않을까 싶다. 현 정권이 안 해본 삽질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전방위적인 스트레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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