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유범상 인천 (사)마중물 이사(왼쪽부터),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신년 좌담회를 열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경제·노동, 복지·보건 분야 정책과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한겨레사회정책연 신년 좌담 ②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새해를 맞아 경제·노동, 복지·보건분야 주요 싱크탱크 대표자를 초대해 2차례에 걸쳐 신년 좌담회를 열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열린 이번 좌담회는 박근혜 당선인의 경제·노동, 복지·보건 분야의 정책 현안과 대안 제시를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지난 11일 열린 경제·노동 분야에 이어, 18일에는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서울대 교수),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유범상 인천 (사)마중물 이사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좌담회는 한겨레신문사 8층 대회의실에서 이창곤 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박근혜 당선인 ‘복지·보건 정책’

■ 4대 중증질환의 실현 가능성

이창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장(이하 이창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보건 분야 대표 공약으로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의 100% 국가 보장을 약속했다. 효과성과 실현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있나?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이하 김창엽) 암 중에도 가벼운 암이 있고 폐질환에도 중증이 있는데, 이를 병명으로 구별해 차별화하는 것은 좋은 접근 방식이 아니다. 하지만 4대 중증질환을 보장한다고 할 때는 간병비 같은 비급여 항목도 건강보험 영역 안에서 관리하도록 해야 한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이하 이상구) 대선토론에서 문재인(민주통합당) 후보가 “왜 심장은 국가가 책임지고 간은 안 되나”며 반박해 케이오(KO)승 했던 게 이 부분이었다. 박 당선인은 1조5000억원의 예산이면 충분하다고 했지만, 분명 과소 추정한 부분이 있다. 참고로 4대 중증질환 논란에 대해 진보세력이 배워야 할 점이 있다. 국민들은 4대 중증질환만이라도 국가가 보장해 주는 것이 더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런 맥락에서 공약이나 정책을 세밀하게 만들어야 한다.

유범상 인천 (사)마중물 이사(이하 유범상) 4대 중증질환이라는 의제가 제기되면서 건강불평등 문제나 보편적 건강권, 산업재해 등의 문제가 논의가 안 되고 배제되고 있는 게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유범상 (사)마중물 이사
“복지재정 확충하기 위해서는
재벌·경제개혁으로 세수 확보해야
안정적 일자리 늘려도 세수 늘어나”

■ 기초연금 논란의 해결 방안

이창곤 박 당선인의 대표 공약인 기초연금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상구 2005년 국민연금 개혁을 할 때 급여율을 40%로 낮추면서 10%는 기초(노령)연금으로 깔아준다는 사회적 합의를 한 바 있다. 그런데 아직 5%밖에 못 주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5%를 기초연금으로 주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가 재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재원을 연금기금에서 끌어 쓰려는 것이다. 국민에게 ‘꼼수’로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범상 이번 논란으로 보편복지는 누군가의 희생을 필요로 하고 논란을 일으킨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기초연금은 보편복지와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에 야당과 시민단체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김창엽 기초연금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만, 이에 더해 노인 빈곤 문제를 사회적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되짚어 보는 게 필요하다. 이번 논란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노인 빈곤 문제에도 공감대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다.

이창곤 연금문제와 관련해 진전시켜야 할 것은 사회적 합의가 아닌가 싶다.

김창엽 기초연금과 관련된 부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기본적인 틀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보편복지의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현실은 대단히 첨예한 논쟁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사회적 연대나 보편복지를 위해서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어 열린 방식으로 논의를 하는 게 좋겠다.

이상구 기초연금에 대한 반발이 나오는 이유는 보수 진영에서 활용하기 위해 부추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진보가 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정책 사안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분석해 대응하지 않으면 보수 쪽에 매몰되어 끌려갈 수밖에 없다.

김창엽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
“4대 중증질환 보장한다 할 때는
간병비 같은 비급여 항목도
건강보험 영역안 관리하도록 해야”

■ 복지재원 마련 어떻게

이창곤 박 당선인은 공약집에서 복지재원으로 135조원을 제시했다. 이것으로 공약실현이 가능한지 등 복지재원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유범상 이전에 인천에서 아동복지 예산이 늘어 그 이유를 확인해 보니 과학관 건립 비용이 포함돼 있었다. ‘과학관 건립 비용이 어떻게 아동복지 비용이냐’고 했더니, ‘아동이 많이 관람하기 때문에 아동복지 아니냐’고 하더라. 마찬가지로 새 정부의 복지예산에는 보금자리주택 비용 등도 들어가 있다. 제대로 된 복지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이나 경제개혁으로 세수를 확보해야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많이 늘려도 세수는 늘어난다.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나 지역사회가 전방위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김창엽 증세를 통한 재정 부담이 언젠가는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증세와 복지확대는 굉장히 섬세하고 정교하게 연계시켜야 된다. 건강보험료를 많은 사람이 비싸다고 투덜대면서도 비교적 저항 없이 내는 이유는, 감기와 같은 가벼운 증상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복지를 통한 증세가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구 야당이 지금 깨져서 갈피를 못 잡고 있는데, 야당을 수습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복지정책과 재원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박 당선인이 주장하는 재정절감 정책 중에서 야당이 내걸었던 공통 공약에 협조를 해주는 대신, 야당 공약 중에 정책화할 수 있는 것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면 여당도 증세에 동의해 줄 수 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기초노령연금 재원 부족 이유로
연금기금서 끌어쓰려는 게 문제
국민에게 ‘꼼수’로 비치고 있다”

■ 보육·교육 부문의 공약 평가

이창곤 보육, 교육 분야에 대해서도 얘기해보자.

이상구 박 후보는 0~5살 무상보육을 위해 9조5000억원의 예산 확보를 약속하고 있다. 그러나 보육정책에 대한 국민의 체감 만족도는 별로 높지 않다. 양적 확대에 걸맞은 질적인 확대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부모가 교복을 구입하려면 30만~40만원을 내야 하는데, 교복 값을 의무교육에 포함시키면 교복 단가를 낮출 수 있다. 효율적인 복지 혜택을 주면서 질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유범상 소득 수준별 반값등록금이 뜨거운 이슈다. 반값등록금을 받기 위해서는 평균 80점 이상을 받아야 한다. 저소득층 학생한테 지원하는 장학금 역시 중요한 것이 성적 향상 여부다. 장학금을 시혜적인 차원에서 주니까 학생들이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경쟁 지향, 시장 지향주의로 가고 있다. 이에 대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정리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june@hani.co.kr


“복지정책 변덕스럽게 진행 가능성
현실정치 동요따라 우왕좌왕할 것”

새 정부 복지 전망

이날 싱크탱크 대표자들은 ‘박근혜표 복지’의 전망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았다.

유범상 이사는 박근혜표 복지를 ‘젠가복지’라고 규정했다. 젠가는 쌓아진 나무토막을 넘어지지 않도록 아래쪽부터 하나씩 빼서 위로 쌓아가는 보드게임이다. 그는 “선별복지가 철저히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하지만 젠가복지는 필요에 따라 보편복지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젠가복지는 정해진 재원 안에서 돌을 깨서 활용하는 형태가 된다”고 말했다.

김창엽 소장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나 현실 정치의 동요에 따라 복지정책이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며 “결과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복지 및 사회정책이 완전히 침몰하지는 않겠지만, 대단히 변덕스럽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박근혜표 복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은 비판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으로 분화됐다. 유 이사는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이 지역 현장에서는 놀랍게도 보편복지로 인식이 되고 있다”며 “<한겨레>는 박근혜의 복지를 선별복지로 보고 있으나, <조선일보> 등 보수지는 보편복지 100조 시대를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수 쪽이 복지 프레임들을 갖고 대선에서 승리해 복지라는 담론 자체가 보수에 넘어가버려 진보세력은 새로운 복지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당히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상구 대표는 “복지는 진보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며, 독일이나 여러 나라의 사례를 보면 보수 세력이 복지를 더 잘할 수 있다”며 “박 당선인이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처럼 될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처럼 될지는 그의 선택이겠지만, 메르켈 총리처럼 간다면 우리나라 복지는 상당한 진전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박 당선인이 약속한 공약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행될 것이라고 본다면 이에 따른 혜택을 받는 사람이 생길 것”이라며 “따라서 이후 선거에서는 좀더 진전된 복지 정책을 갖고 새로운 논의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유 이사는 “기초연금의 금액을 얼마만큼 올리자는 논의에 몰입하게 되면 보수가 갖고 있는 복지 프레임에 들어가 버리게 된다”며 “그렇게 되면 사회민주주의 등 다른 복지 전략을 쓰는 데 한계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표는 “‘맛을 봐야 맛을 알지’라는 말처럼 복지 경험의 축적이라는 측면을 봐야 한다”며 “복지의 양적인 확대가 진행된다면 복지의 질적인 확대에 대한 논의로도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87·89체제 넘어설 대안 고민”
(사)마중물 “지역 롤모델 될 프로그램 계획”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치인에도 복지국가정책 교육”

복지싱크탱크들 올해 중점사업

진보진영 싱크탱크의 올해 보건복지 분야 중점 사업은 무엇일까?

건강과 보건의료의 대안을 제시하는 싱크탱크인 시민건강증진연구소의 김창엽 소장은 “현재 건강·보건 정책의 기반은 87년(민주화운동)+89년(전국민건강보험) 체제를 의미하는데, 87+89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적 철학과 이론을 어떻게 생산하고 전파할 거냐를 고민하고 있다. 올해는 건강 불평등과 정의, 참여와 민주의 공공성 등의 키워드를 갖고 연구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복지정책을 실천하는 기반으로서 어떤 정치가 필요한가를 놓고서도 이론적인 작업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천에서 시민교육강좌와 정책포럼을 진행하며 지역사회 복지활동을 펼치고 있는 (사)마중물의 유범상 이사는 “올해는 지역 단위에서 시민세력과 사회정책들의 대안을 만들어 나가겠다. 지역에서 롤모델이 될 수 있도록 내부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이를 토대로 책자를 제작하면서 전국적인 연대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조직의 모토가 ‘근거 없는 낙관주의가 근거를 만든다’였다면, 올해 목표는 ‘이상이 일상이 되도록 상상하라’로 정했다”고 강조했다.

복지국가 담론을 선도하고 있는 대표적인 복지분야 싱크탱크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이상구 공동대표는 “올해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자’라는 모토로 정책연구 사업을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치인에게도 복지국가 정책을 교육할 계획이다. 2014년 지방선거를 맞아 좋은 사회정책을 생산하기 위해 정치아카데미를 개설하고, 구체적인 지방복지 정책을 개발해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로 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혁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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