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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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와 한국노동연구원이 ‘복지국가와 노동시장의 상호 역동성’을 주제로 마련한 대담이 지난 17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브뤼노 팔리에 파리정치대학 유럽학연구소 연구위원,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직무대행, 비머르 살베르다 암스테르담노동연구소 소장.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복지국가와 노동시장-<하>
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 후원

 노동과 복지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근로빈곤층에 대한 복지국가의 대응’이란 제목의 국제심포지엄(주최 한국노동연구원, 한신대 평화와 공공성센터 SSK사업단)이 지난 16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심포지엄은 (사단법인)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이사장 윤진호 인하대 교수)가 후원했다. (사)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는 우리 사회의 고용·임금·실업 등 노동시장 정책과 관련된 조사연구와 정책 대안 제시를 목표로 설립된 기관으로 옛 (사)한겨레노동교육연구소의 후신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불평등, 저임금 노동의 발생과 대응, 고용과 복지의 조화를 주제로 총 3세션에 걸쳐 이뤄진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탈리아의 티토 보에리 교수(보코니 대학)를 비롯해 영국,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한국 등 노동시장 분야의 권위 있는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했다. (사)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는 심포지엄 다음날(17일) 서울 플라자호텔 22층 오팔홀에서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직무대행, 비머르 살베르다 암스테르담노동연구소 소장, 브뤼노 팔리에 파리정치대학 유럽학연구소 연구위원,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참여한 가운데 좌담회를 따로 열었다. 이를 지상 중계한다.

유럽, 성장 위해 노동 유연화
정규-비정규직 불평등 심화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직무대행(이하 김승택) 오랜 복지국가 전통을 지닌 유럽에서도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가 심화되면서 복지국가가 추구하는 목표와 비전이 위협받고 있다. 고용불안이 커지고 저임금 노동이 증가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비머르 살베르다 암스테르담노동연구소 소장(이하 살베르다) 1980년대 초반부터 자본 이동이 자유화되고 경기침체가 발생하면서 노동시장은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노동시장 상층부의 고용과 소득은 유지된 반면, 취약한 근로계약을 맺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은 더욱 커졌고, 마거릿 대처의 집권 이후 각국 정책담당자마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급속히 도입했다. 이런 급진적 해결책은 노동시장의 최하층 계층에게 주로 큰 타격을 미쳤다.

브뤼노 팔리에 파리정치대학 유럽학연구소 연구위원(이하 팔리에) 80년대에 복지국가의 비용이 너무 크고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과도한 고용보호 때문에 경제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지배하면서 복지국가의 비전이 바뀌었다. 즉 경제성장을 위해 복지를 개혁하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정책으로 표방되었다. 새로운 형태의 복지개혁 모델은 노동시장 이중구조화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최근의 이중노동시장 고착화는 세계화, 탈산업화, 기술변화, 노동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의 결과이고, 곧 정치적 선택의 문제에서 발생하고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더 강한 노동자들은 구조적 압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고, 정부는 노동시장 외부자들에게 비우호적인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 생산성이 높지 못한 노동자를 시장에서 탈락시키고 배제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불평등이 강화되고 있다. 사회경제적인 구조적 요인과 노동시장 및 사회정책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이중구조를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서비스부문의 팽창이 노동시장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는데 서비스산업을 후기산업사회의 새로운 영역이라고 갈채를 보낼 것이 아니라 제조업이 강한 전통적인 경제모델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하 장지연) 한국 사회가 당면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배제적인 국가복지에 기인한다. 1990년대 이후 한국 노동시장은 이중구조화가 공고화되고 있다. 예컨대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정규직이 대폭 감소했으나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비정규직의 감소가 두드러졌다. 정규직의 수는 큰 변동이 없었다. 경제위기의 강도가 이런 차이를 낳았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강화된 결과였다. 즉 고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적정한 임금 및 사회보험 혜택을 제공하는 상층부(1차 노동시장)와, 실업상태는 아니지만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결합된 하층부(2차 노동시장)가 만연하고 있다. 특히 이 두 집단 사이의 이동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이렇듯 둘로 나뉜 노동시장에서 모든 것이 결핍된 2차시장 취약근로자의 상당수는 국가복지로부터도 배제되고 있다. 방대한 2차시장을 가지고 있는 이중구조화된 노동시장, 그리고 방대한 사각지대를 낳는 사회보장체계라는 결합에서 탈출해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 더 많이 창출
청년층 등 인적자원 투자해야


김승택 저임금 노동이 확산되고 사회적 보호를 위한 공공지출도 줄어들고 있다. 유럽에서 사회안전망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팔리에 독일에서 핵심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 사이의 경계선이 더 명확히 그어지고 있다. 노동시장의 정규직 ‘내부자’의 지위와 특권이 비교적 잘 보호되도록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반면, 이런 핵심 노동자층을 안정화하기 위해 주변부 노동자와 노동시장 ‘외부자’에 대한 유연성을 강화하고 있다. 노동시장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을 한 가지 유형의 근로계약, 즉 정규고용과 사회적 보호 아래 통합하고 포괄해 낼 수 있는 사회모델의 역량은 사라지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대규모 제조업 부문에서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 고용안정과 높은 임금보장이라는 협조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2차 주변부 노동시장 참여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안정적인 고임금을 보장해온 제조업이 퇴조하고 그 대안으로 금융자본이 등장한 것도 노동시장 이중구조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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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베르다 서비스산업이 경제의 중심으로 등장하면서 저임금 근로자들이 개인서비스 분야에서 대규모로 형성되고 있다. 적정수준의 임금을 제공하고 노동조합 결성이 보장되고 교육훈련 기회가 부여되는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많이 창출해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가 많아져야 노동자들간의 연대도 이룰 수 있다. 특히 청년층에 대한 인적자원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 인적자원은 비용이 아니다. 서비스·지식기반산업에서 인적자원은 기업과 사회의 핵심자산이자 보물이다. 과거에는 안정적 고용과 고임금을 통해 노동시장이 복지까지 제공했지만 이제 이중구조화된 노동시장에서는 취약계층의 지위를 높여주면서 동시에 노동시장 바깥에서 복지를 함께 제공해야 한다.

임시직·자영업자 배제시키는
한국 사회보험체계 보완 필요

장지연 경제구조적인 요인들도 있지만 정치적 과정을 거쳐 노동시장이 이중화되고 있다. 유럽이 보여주듯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대한 복지국가를 서로 결합해 구축하려는 처방은 현실적으로 2차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더욱 강화하는 형태로 작동한다. 2차 노동시장이 훨씬 더 크고 깊은 한국에서는 주변부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현실에서 고용보호를 완화해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취약근로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강화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고, 사회적 보호는 오히려 후퇴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소득보장 기능을 하는 국민연금과 고용보험은 광범위한 사각지대의 문제를 안고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속에서 사회보험 중심의 사회보장제도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합이다. 실제로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일수록 사회보험제도의 보호영역 바깥에 놓이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한국의 사회보험체계는 빈곤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는 취약한 임금근로자나 영세자영업자를 배제한 채 운영되고 있다. 2차 노동시장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국가복지로부터도 배제되는 역설적인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이다.

김승택 유럽에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 노동시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

팔리에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이 빈곤탈출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근로빈곤층을 양산하고 있다. 독일 기업들의 수익성이 높은 듯하지만 일반 노동자들의 구매력은 정체되고 있다. 독일, 프랑스의 경우 노동과 복지분야의 제도적 변화는 ‘노동시장 이중구조화’라는 개념이 그 변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의 노동시장 개혁은 ‘(주변부) 2차 노동시장의 제도화·공고화’였다. 독일에서 ‘미니잡’이 최근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미니잡은 사회보험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저임금 파트타임 일자리로, 서비스 부문에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노동시장 정책은 핵심 인력에게는 높은 고용보장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반면, 주변부 노동자에게는 높은 이직률과 불안정성을 낳는 이중 노동시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독일에서는 생산성이 높지 않은 노동자는 비정규 근로계약이 당연하고 저임금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확대되고 있다. 상층 노동자와 하층 노동자 집단 간의 이동도 어렵고, 노동권 확보를 위한 연대도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은 사회보호를 위한 재정지출 여력이 아직 충분이 있다. 복지국가는 경제전략과 연계돼 있다. 수출에 매달리는 경제에서 벗어나 적정한 임금과 고용안정을 통해 노동자들의 구매력을 높이는 정책이 중요하다.

한국 재정지출 여력 아직 충분
노동 안정성·사회 보호 강화를

장지연 지난 20~30년 동안 유럽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고용·사회정책의 화두는 단연 유연안정성이었다. 여기에는 급속한 기술변화와 경제의 글로벌화에 대응하려면 일자리의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노동시장 유연화는 2차 주변부 노동시장을 더욱 유연하게 하는 방식, 즉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유럽 국가들에서도 유연안정성의 실현이 어려웠지만, 한국에서는 더욱 비현실적인 처방일 수 있다. 유연안정성은 좋은 의도에서 도입했을지라도 노동시간의 탄력성과 배치전환의 유연성은 사라지고, 오직 해고의 유연성에만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이미 매우 유연하다. 게다가 2차 노동시장의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국가복지의 결합은 취약 노동자들의 처지를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장 규제를 통해 고용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보호를 강화하는 적절한 결합을 한국적 현실에 맞게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과제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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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근로빈곤층에 대한 복지국가의 대응’을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이 지난 16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사진은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뒤쪽 서 있는 사람)이 주제발표를 하는 장면.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청년층에 정년보장 전망 제시 등 점진적 고용보호제도 도입해야”

한국, 저임금 고용 OECD 1위…정책 실패 탓 커

16일 국제심포지엄에 참가한 주제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한목소리로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근로빈곤층에 대한 복지국가의 정책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탈리아의 티토 보에리 교수(보코니 대학)는 ‘청년실업과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를 위한 제안’이라는 주제발표에서 “현재 대부분의 유럽 노동시장에서 임시직과 정규직 사이의 이중구조 심화가 목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규직 고용은 보호하고 비정규 주변부 노동자의 유연성은 더욱 높이는 방식의 2층(two-tier)적 노동시장 개혁이 이뤄지면서 비정규직이 증가하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도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해고 비용을 줄이고 고용유연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 진행된 개혁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이미 직장을 얻은 정규직은 고용안정이 더 이뤄졌지만 신규 채용자는 해고가 더 쉬워졌고, 일자리도 기간제·계약직 형태가 더 많은 상황을 낳았다. 보에리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사회 전체적으로 큰 비용을 초래하고 노동시장에 처음 들어서는 청년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히고 있다”며 “청년 노동자들에게 분명한 정년보장 전망을 제시하는 등 점진적인 고용보호제도를 도입해 장기적으로 이중노동시장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경제정책연구센터 존 슈밋 선임연구위원은 ‘선진국의 저임금 노동: 경험과 교훈’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저임금 일자리가 높은 보수를 제공하는 더 나은 일자리로 이어지는 디딤돌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국가에서 저임금 노동이 상당수 노동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으며, 이것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는 실증분석 자료로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저임금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과 저임금 노동 비중의 관계는 미약하고 오히려 1인당 지디피가 높을수록 저임금 일자리 발생률도 약간씩 높아진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제시했다. 그는 “정책담당자들이 종종 모든 일자리는 빈곤탈출을 돕기 때문에 어떤 일자리든 창출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저임금 고용은 빈곤과 소득불평등 문제들의 직접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 노동시장은 전통적으로 고임금·고숙련의 바람직한 ‘조정된 경제’ 모델로 묘사돼 왔다. 그러나 독일 ‘노동·숙련·직업훈련연구소’의 마티아스 크누트 선임연구위원은 ‘저임금 정책의 모순’이라는 주제발표에서 이런 묘사와는 확연히 다른 독일 노동시장의 현재 모습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독일에도 노동시장 하층부에 상당한 규모의 저임금 부문이 형성돼 있으며, 저임금 노동 규제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고, 사용자들도 저임금 노동을 확대하려고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에서도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복지국가 모델을 점점 침식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임금함정 위험과 정책선택’이라는 주제발표에서 한국 노동시장의 경쟁력을 △비정규직 △사내하도급 △장시간 근로 등 3가지라고 꼽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한국 노동시장의 중요한 특징은 실업률과 장기실업자 비중은 매우 낮은 반면, 저임금 고용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는 점”이라며 “한국처럼 중간소득 국가에서 저임금 고용과 그 영향은 실업보다 더 중요한 노동시장 문제”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한국에서 그동안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을 높이거나 빈곤 상태로의 전락을 막기 위한 다양한 노동시장 제도와 정책 수단들이 도입되어 왔음에도 왜 저임금 고용을 억제하지 못했는가라고 물은 뒤 “정책 ‘메뉴’는 확대되었지만, 낮은 적용 수준과 집행 문제 때문에 그 실효성이 미미했다”고 지적했다. 한국에서 저임금 고용의 증가 추세는 시장 실패뿐만 아니라 정책 실패에 기인한다는 얘기다.

조계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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