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울산 북구 현대차 명촌정문 앞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최병승씨(오른쪽)와 천의봉씨가 지난 1월26일 2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을 향해 농성 100일을 맞는 심경을 담은 편지를 읽고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이들은 140일째 농성을 풀지 못하고 있다. 울산/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노사관계 현주소 진단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사회적 대화와 대타협을 강조했다. 하지만 곳곳에서 장기파업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사정의 대화와 타협의 모습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다. 상생의 노사관계는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절실하지만, 새 정부가 중요시하는 일자리 창출과 성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한겨레일과사람연구소(이사장 윤진호 인하대 교수)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우리 사회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그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노동계와 경영계, 전문가의 기고를 기사와 함께 싣는다.

무시당하는 노동자들의 비명

현대차 철탑농성 140일째
쌍용차 해고자 투쟁 4년째
재능교육 해고자 거리농성 1900일…

박 대통령, 민주노총 배제 모습
법과 원칙 얘기하지만
법 어기는 현대차 등엔 침묵

2012년 10월17일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 2명은 울산공장 23m 높이의 송전 철탑에 올랐다. 요구는 간단했다. 2004년 노동부에 이어 2010년 7월과 2012년 2월 대법원에서 현대차 생산공정을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다. 현대차가 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맺었지만 실제로는 하청노동자들을 지휘·감독하는 등 파견처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견법에 따라 현대차가 사내하청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차는 아직까지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현대차와 정규직·비정규직노조의 대화는 2개월 넘게 중단됐고, 고공농성은 벌써 140일째다. 연간 순이익이 9조원에 이르는 현대차가 대법원 판결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에 사내하청노동자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현대차 하청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처럼 됐다.

서울 혜화동 15m 높이의 성당 종탑 위에서 28일째 농성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노동자 2명도 비정규직 문제 탓에 하늘로 올랐다. 학습지 교사들은 ‘노동자’ 성격을 띠는데 계약 방식 등 형식적으로 ‘사업자’로 취급돼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특수고용형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노조 인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려면 재능교육이 일방적으로 해지한 단체협약을 다시 체결하고, 노조 인정 투쟁 과정에서 해고된 12명(1명은 암으로 사망)을 복직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능교육 해고자들은 거리농성만 1900일을 넘겼다.

경기도 평택 쌍용자동차 인근 송전 철탑에서도 부당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106일째 쌍용차 해고자 3명이 농성을 하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도 4년째 투쟁을 하고 있다. 이처럼 서울·울산·평택·전주·아산 등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극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고공농성은 짧게는 28일, 가장 긴 경우는 140일째다. 이들 노동자들은 도저히 문제가 풀리지 않자 ‘벼랑 끝 전술’로 고공농성을 선택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노동현안을 풀기 위한 움직임은 전혀 없는 상태다.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반노동, 친기업’적 노사관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먼저 민주노총을 배제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우려가 크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경총과 한국노총을 잇따라 방문했지만 우리나라 대표적인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은 가지 않았다. 고공농성 등 노동현안 사업장은 모두 민주노총 소속이다. 사회적 대타협을 말할 때도 민주노총은 제외시켰다. 또 정부는 최근 해직교사를 문제삼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나서 민주노총과 ‘정면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노사관계의 원칙에 있어서도 이중적인 잣대를 대고 있다. 박 대통령은 ‘노사 자율’을 강조하며 고공농성 등 노동현안 문제에 나서지 않는 반면, ‘법과 원칙’을 얘기하지만 법을 어기고 있는 현대차나 유성기업 등 사업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과정에서 내건 노동 공약이나 국정 과제를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노동현안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투쟁 사업장의 쟁점들을 살펴보면, 비정규직·정리해고·노조 탄압 등 노동 문제의 핵심적인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한 기업 안에서 벌어지는 노사 갈등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우리 사회 노동문제를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박 대통령은 임기 안에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 고용률도 7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현대차와 재능교육은 우리 사회 비정규직을 대표하고 있고, 쌍용차는 일자리의 핵심인 정리해고 문제다. 새 정부가 공약을 지킬 의지가 있다면 현안 사업장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박 대통령의 인식은 이명박 정권과 다를 바 없다

2011년 노동조합 조직률은 고작 10.1%다. 노조를 통해 스스로를 보호하거나 권리를 요구할 수조차 없는 노동자가 90%라는 점은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 위에선 ‘노사상생’이란 늘 ‘노동의 종속성’을 미화하는 허구였다. 또한 ‘법과 질서’란 공익이 아닌 ‘노동의 희생’을 강제하는 지배이념에 불과하다. 노사관계가 균형을 이루고 공정한 타협에 이르려면 노동기본권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사회적 노력과 노동운동의 대중성 실현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와 자본은 노조에 가입된 노동자와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의 분열을 부추겨 지배하려 한다. 이러한 분리지배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 특징적인 노무관리로 자리잡았다. 이마트 등 많은 회사가 무수한 불법을 일삼으면서까지 노조 조직화를 불온시하고 있다. 정부 또한 틈만 나면 노조를 불법집단의 온상처럼 선전해왔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 또한 분리지배의 노림수다. 현대차 사내하청 투쟁에서처럼 자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틈을 벌리며 법적 책임조차 외면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대중적 고립을 노린 이러한 양상은 결국 불가피한 극한투쟁을 초래할 뿐이다.

현대차, 지엠(GM)대우 등 비정규직 투쟁은 2013년 노사관계에서도 뜨거운 분출구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을 새로 만들어, 그동안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있던 사내하청노동자들에게 적용할 계획이다. 사내하도급은 근로계약이 아닌 민법상 도급계약인데, 사내하도급법이 새로 만들어지면 ‘사내하청’이 하나의 고용형태로 인정받게 된다. 부작용이 더 크다. 장기화될 경제적 저성장은 일방적 정리해고에 따른 노동자들의 저항과 사회적 안전망 논란도 지속시킬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고용불안을 무기삼아 노동을 통제하고 고이윤을 뽑아내는 ‘협박성장형 노사관계’가 유지되고 있다.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임금인상은 하향세였으며 2013년에도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러한 저임금 차별과 고용안정성 파괴는 자본이 집요하게 추구하는 이윤축적 구조다. 이에 따라 걸림돌이 되는 민주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정부는 자본의 반노조 공세를 ‘노사자치’란 이름으로 방조하고, 노동의 반발에는 어김없이 ‘법과 질서’라는 편향된 잣대를 들이댈 것이다.

이상진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노사관계는 우리 사회 갈등의 최전선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회통합을 하겠다지만, 이대로라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인식은 이명박 정권과 다를 바 없다. 사용자단체를 만나 노골적으로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취임 전부터 전교조를 향해 탄압의 칼을 뽑아드는 모습은 오히려 이전 정권을 능가한다. 반면, 이에 대응할 진보정치를 비롯한 야권은 사분오열된 상태이며 내부 추스르기도 버거운 상태다. 따라서 보수정권은 거침없이 노동을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복수노조법 등 노조파괴에 악용된 노조법이 개정되지 않고, 정권과 자본의 민주노조 배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노사정 대화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상진 / 민주노총 비상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전 화학섬유연맹 위원장)



노동조합 과감한 ‘일자리나누기’ 호응할 수 있나

얼마 되지 않았지만 박근혜 정부의 노동에 대한 태도는 차가울 정도로 차분하다. 노동계는 벌써 이명박 정부의 노동 무시 풍조가 새 정부에서도 계속될 것이라며 걱정이다.

지난 5년간 정부와의 파트너십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대화 창구조차 갖지 못했던 노동계는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양대 노총의 정치적 위상은 땅에 떨어졌고, 개별 사업장은 노조 파괴 컨설팅과 경비 업체와 싸워야 했으니 노동계의 이런 반응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아직 속단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돌이켜 보면 처음에 좋았다고 나중까지 좋았던 경험이 별로 없었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역대 정권들은 노동에 대한 태도에서 꾸준하게 포용정책을 펴지 못하고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실수를 거듭했다. 집권 초기에는 적극적인 포용 정책을 펴다가 얼마 견디지 못하고 불신과 갈등으로 치닫는 패턴이 계속돼 왔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해고자 복직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여 노동부 장관이 노조원들의 열렬한 환영까지 받으며 사업장을 돌아다녔지만, 집권 마지막 해에는 총파업으로 정권이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갔다. 노동에 가장 우호적이었던 노무현 정부도 집권 6개월 만에 철도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하며 노정관계는 불신과 갈등으로 치달았다. 이런 혼선은 새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노사관계 질서를 바꿔보려는 의욕과잉에서 비롯된 면도 있고, 비타협적인 노동계의 투쟁전략에 기인한 면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계에 특별히 우호적으로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인수위원회가 농성 사업장을 모른 척하고 노동계와 대화하지 않은 것을 탓할 수는 없다.

새 정부 초기의 대화합 조처를 기대하며 몇 달째 농성을 벌여왔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안타까운 일지만, 이들 현안문제 해결 여부로 새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가 결정된 것처럼 해석할 수도 없다. 오히려 더 중요한 기준은 정부가 가장 앞세우는 고용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을 파트너로 삼아 정책을 협의하고 조정할지 여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고용률 70% 달성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과 비정규직 고용개선을 위해서 정부는 노사와 긴밀히 협의하며 협력을 이끌어내야 할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파행을 치닫던 노사관계가 정상화되고 사회적 대화 체제도 정비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노동 없음을 경계해야 하듯이 노동운동의 고용 없음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정부와 기업에 대해서만 고용대책을 요구했지 자신들의 고용전략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다. 만약 새 정부가 종합고용전략을 갖고 대화와 타협을 요구했을 때 노동계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비정규직 고용개선이나 청년과 여성의 고용창출을 위하여 과감한 워크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이 필요할 때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호응할 수 있다면 노동과 고용은 함께 갈 수 있을 것이다.

최영기 / 경기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전 한국노동연구원장)



노사자율 준수하고 산업현장 법치주의 확립해야

최근 우리는 ‘고용률’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고 있다. 고용률이란 우리 국민 중 실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을 나타내는 것으로 과거에는 주로 실업률의 보조 지표로 활용되던 개념이다. 하지만 최근 새 정부가 ‘고용률 70% 달성’을 국정 핵심목표로 제시하는 등 고용률이 점점 더 중요한 개념으로 강조되고 있다. 고용률이 이렇게 중시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이는 비단 우리뿐 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라 할 수 있다. 고용 없는 성장과 경제적 불확실성 확대로 일자리 부족이 보편적 현상이 되고, 이로 인한 문제는 선진 각국의 정책 패러다임까지 바꿔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실업률 개념은 일자리 창출 관리 지표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일자리 관련 정책 패러다임은 단순히 실업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일자리 정책은 취업 취약계층, 청년층 등 노동시장에 채 진입하지도 못하고 있는 계층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까지 포괄해야 한다. 고용률 지표로의 중심이동은 단순한 지표 변경이 아니라 이러한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패러다임 변화에 맞춘 고용률 제고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사간 협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노사 협력이 없는 고용률 제고는 결국 사상누각이 될 뿐이다.

특히 노동계 일각에서는 노사관계를 대립적 문제로 여기며 노사 협력이나 상생 등과 같은 용어 사용을 기피한다. 그러나 노사 상생이나 협력 없이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노사 협력은 노사 모두가 윈윈하는 길이며 일자리 창출과 경제발전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우리 노사관계를 대립적 노사관계에서 상호 협력적 노사관계로 전환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노사자율 원칙의 준수다. 노사문제는 당사자인 노사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다. 정치권이나 외부의 개입으로 노사자율 원칙이 훼손될 경우에는 일시적으로는 노사 가운데 일방이 이득을 볼 수도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노사 모두에 피해만 줄 뿐이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둘째로 산업현장의 법치주의 확립이다. 최근 들어 불법 과격 투쟁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일부에서는 불법 과격 투쟁의 구태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체적인 노사분규가 줄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개별 노사분규가 장기화·극단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국제기관의 평가에서도 우리 노사관계 경쟁력은 매년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노사관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과 원칙의 테두리 내에서의 노사자율’이라는 원칙이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노사관계 원칙이 준수되고 노사정이 한마음으로 노사화합을 위해 노력할 때 고용률 70% 달성도 가능해질 수 있다.

이동응 /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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