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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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레스 문타네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
특별기고
캐나다 토론토대 문타네 교수
흔히 건강은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건강은 소득과 작업환경, 비정규직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저임금노동자 등 사회적 취약계층의 건강은 정치경제체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는 연구도 적잖다. 한마디로 정치 또는 정치경제체제가 노동자 등 시민의 건강을 결정한다는 담론이다. 국내에서도 이런 관점의 연구가 서서히 대두되는 가운데,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는 이와 관련해 세계적인 보건정책학자인 카를레스 문타네 교수의 특별기고 ‘건강, 정치가 결정한다’를 싣는다. 문타네 교수는 지난 4일 서울대에서 열린 2012년도 비판과 대안을 위한 건강정책학회(회장 김창엽 서울대 교수) 춘계학술대회에서 온라인을 통한 기조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날 행사의 메인 세션인 ‘건강정책과 정치’란 주제의 종합토론 내용도 함께 게재한다.

문타네 교수는 누구?

카를레스 문타네 교수는 일반인에겐 아직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보건학을 전공한 이라면 그의 명성에 익숙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 의대에서 의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존스홉킨스보건대학에서 정신역학을 전공했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 웨스트버지니아주립대, 메릴랜드주립대 등에서 주로 고용관계가 건강에 끼치는 영향 등을 연구했으며, 2000년대 초에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건강의 사회적결정요인위원회(SDOH)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은 바 있다. 현재 캐나다 토론토대학과 미국 존스홉킨스보건대학원의 교수로 재직중이다.

1990년에서 2011년까지 22년 동안 빈곤으로 인한 사망자는 3억8000만명에 이른다. 놀랍게도 이는 20세기 들어 일어난 큰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20세기 들어 불평등은 지리적으로 더욱 고착화하고 있는 추세다. 1870년엔 경제적 불평등의 원인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서 사는가’보다 ‘어느 계급에 속해 있는가’로 결정됐다. 반면 2000년 현재는 어느 나라에서 태어났는가가 소득불평등의 80%가량을 결정한다. 나라가 불평등을 결정하는 이런 구조에서 이주는 자신의 소득을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고, 따라서 불법이민이 늘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득불평등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연구는 미흡했다. 단순히 부자를 부러워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 등 심리적 원인을 분석한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사실 불평등에 관한 연구는 심리적 원인이 아니라, 왜 경제적 불평등이 건강수준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결국 ‘정치가 왜 중요한가’로 귀결되는 문제이다. 빈곤과 소득불평등 원인의 마지막 종착점은 정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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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선 실업률 증가하면
자살률도 함께 증가하지만
스웨덴선 거의 관련 없어

빈곤의 가장 큰 악영향 중 하나이자, 건강에 직접 영향을 주는 식량과 영양부족의 문제를 살펴보자. 유엔 식량농업기구 자료를 보면 2009년 들어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인구의 수가 역사상 처음으로 10억명을 넘어섰다. 1990년대부터 2006년까지 정체 상태를 보인 8만명의 규모를 고려하면 20%가 증가한 셈이다.

세계가 전보다 훨씬 부유해진 21세기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는 식량 가격이 두배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원인은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연료의 수요 증가로 옥수수를 식량으로 공급하지 않고 연료로 가공했기 때문이다. 또 식량과 원자재 부문으로 국제투기자본이 몰려들면서 식량 공급에 차질이 빚어진 이유도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와 이에 따른 작황의 변화도 한몫을 했다. 이 모든 것은 정치의 결과인 정책이 그 원인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업은 자살을 포함한 정신질환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업률이 자살률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효과가 발생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하나는 보건의료정책을 포함하는 사회정책이다. 국가가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얼마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실업이 자살률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스페인에서 노동시장 보호를 위해 정부는 1인당 88달러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 스웨덴은 4배가 넘는 382달러를 쓰고 있다. 그 효과는 어떨까? 스페인에서는 실업률이 증가하면 자살률도 함께 증가하지만 스웨덴의 자살률 증가는 실업률과 거의 관련이 없다. 1990년대 초반 실업률의 큰 증가에도 자살률은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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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동구권 몰락 상황서도
나라 따라 다른 정책 선택
그것이 건강을 크게 변화시켰다

사회보장은 이처럼 자살을 포함하는 건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지출 100달러를 어디에 쓰는가에 따라 자살률의 감소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업수당 조건을 구직활동 및 직업훈련과 연계하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0.35%, 가족수당은 0.23%, 보건의료비는 0.07%, 실업수당은 0.09%의 자살률을 감소시킨다. 차이는 있지만 이런 사회지출은 모두 자살률을 줄이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보건의료비보다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가족수당 등이 자살률 감소에 미친 영향이 훨씬 크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1인당 사회보장비 지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실업률이 높아질 때마다 자살률 증가세가 줄어든다. 자살뿐 아니라 총 사망률도 사회보장 지출이 클수록 감소한다. 결국 사회보장 지출이 큰 나라에서 국민 건강 수준이 더 좋은 것이다. 이런 사회보장의 크기는 결국 그 나라의 주도적인 정당과 이들이 시행하는 정책의 결과를 반영한다.

정책과 정치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극단적인 예는 동유럽 국가다. 1990년에서 200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옛 공산권 25개 국가에선 소득이 30% 줄고, 총 사망률이 20% 늘었으며, 자살률이 40% 증가했다. 평균수명의 10년 감소라는 인류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러시아에서는 일어났다. 이런 정치적 변화 과정의 결과로 생겨난 초과사망자는 무려 3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흥미로운 일은 그 사망률의 증가 정도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경제적 변화가 더 급격하게 일어나고 사회보장이 약하며 사회적 자본이 적은 나라일수록 건강에 대한 악영향이 컸다. 반면 미국의 경제 제재로 곤란을 겪은 쿠바나 최근 경제위기를 겪은 핀란드 같은 나라에선 소득이 줄어도 건강수준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가장 큰 차이는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목격됐다. 국가가 가진 자산을 민간에게 넘겨주는 대규모 민영화가 일어난 러시아에 비해 10% 안팎의 자산만을 민영화하고, 이내 국유화로 돌아간 벨라루스에서 나타난 사망률 변화의 양상은 크게 달랐다. 사망률 증가는 민영화 정도와 매우 큰 연관성을 보이는 것이다.

전체 옛 동구권을 놓고 봤을 때도 대규모 민영화가 일어난 국가에 비해 그렇지 않은 국가의 사망률 증가가 훨씬 적었다. 이는 기업이 생산뿐만 아니라 복지까지 책임지고 있었던 동구권의 상황에서 대규모 민영화에 따르는 대량 실업으로 사회적 보장마저도 잃어버리는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반적으로 보건의료정책으로 생각되지 않는 민영화와 같은 거시경제적 변화도 국민 건강수준에 큰 영향을 미친다.

국민 건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결정권을 쥔 정치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사례들이다. “건강이 타고난 축복이 아니라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인권으로 이해되는 것이 나의 열망”이라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정치와 그 결과로서의 정책이 건강을 변화시킨다. 심지어는 동구권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상황과 외부적 압력에서도 나라에 따라 다른 정책적 선택이 가능하였고, 그것이 국민의 건강을 크게 변화시켰다. 결국, 세상을 바꾸려는 당신의 행동이 당신의 건강을 결정하는 것이다.

정리 정혜주 고려대 교수


“건강, 비정치적 아니다”

‘건강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

건강은 오랫동안 비정치적인 영역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신영전 한양대 교수(의대 예방의학교실)는 지난 4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2012년도 건강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를 통해 “건강 정책 역시 정치적 투쟁이 내재돼 있고, 나름대로의 담론 투쟁이 벌어져 왔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건강은 비정치적이다’라는 말이 오히려 정치적인 담론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 건강은 비정치적인가? 건강이 비정치적 영역이라는 주장은 질병이 발생하는 이유를 세포, 유전자, 인체 조직의 이상에서 여기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건강이나 질병 문제를 바이러스, 유전자 이상, 개인의 생활습관으로 돌린다. 대신 빈곤과 소득불평등, 열악한 노동조건, 권력 등의 사회적 요인을 제외해 버린다. 신 교수는 “산업 혁명기에 열악한 도시 위생이나 작업 환경으로 창궐했던 결핵 같은 감염병도 결핵균이나 개인 위생 수준으로 한정해 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신 교수의 주장처럼 ‘건강은 정치적’이라는 주장은 서구사회에서도 여러 차례 나온 바 있다. 존스홉킨스대학의 비센테 나바로 교수는 보건의료 부분만큼 한 나라의 정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는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지배정당이 평등주의적 관점을 가진 나라에서 영아사망률이 낮고 평균수명이 더 길다”며 “정치와 건강수준이 긴밀한 관계가 있다”고도 말한 바 있다.

건강문제가 비정치적이라는 생각은 의사 등 특히 의료 공급자에게 널리 퍼져 있다. 한발짝 더 나가, 건강은 시장이나 의료서비스에 의해 생산되거나 조달되는 ‘상품’으로 간주하려는 경향까지 생겨난다. 신 교수는 “결국 의료서비스는 구매력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나타난다”며 “바꿔 말하면 ‘무상의료’를 공짜 혹은 도덕적 해이로 보는 생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건강이 비정치적’이라는 말은 ‘건강이 중요한 시민의 권리’라는 사실 자체를 망각하게 만드는 구실도 한다고 신 교수는 지적한다.

“건강이나 질병 문제를
유전자 이상·개인습관으로 돌려…
대신 빈곤·소득불평등·노동조건 등
사회적 요인을 제외해버린다
건강하게 살수있는 사회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아”

■ 건강은 국력인가? ‘건강은 국력’이라는 말이 있다. 서구에서는 17세기 근대적 민족국가의 형성 이후에 나온 말이며, 우리나라에선 1960년대 초반의 개발독재 시기에 이 말이 광범위하게 퍼진다. 이 담론에 따라 ‘국민체조’, ‘우량아 선발대회’, ‘체력장’과 같은 보건정책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담론은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불완전’하거나 ‘가치가 적은’ 존재라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최근에 나온 말들인 ‘한국의 의료체계는 사회주의 의료체계’라는 말이나 ‘의료산업은 성장 동력’이라는 말도 되짚어봐야 할 정치 담론이다. 신 교수는 “2000년 의약분업 이후 ‘한국의 의료체계는 사회주의 의료체계’라는 말이 의료 공급자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졌다”며 “하지만 윌리엄 샤오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의료체계가 가장 우파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건강은 기본적인 권리’라는 담론도 나타났다. 이는 1999년 건강보험 통합이나 2001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탄생하는 과정에서의 논의가 주요한 구실을 했다. 신 교수는 “2008년 5월 광우병 논란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에서 전국 수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며 “많은 국민들이 ‘건강’ 문제를 자신의 중요한 권리로 여기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라고 말했다.

■ 건강, 정치가 문제 ‘누구나 병이 생기면 경제적 수준에 관계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나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사회’는 저절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국민 건강권을 옹호할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들이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는 게 중요하다. 신 교수는 “건강권 담론을 현재의 환경·여성 담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필요하다”며 “건강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그동안 정치에 대해 일정한 선을 그어 왔으나 앞으로는 정치 운동과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날 토론자로 나선 허윤정 아주대 교수(사회의학교실)는 “건강이 정치적인 문제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한다”면서도 무엇보다 “‘정치는 무조건 나쁜 것’이나 ‘정치인의 한계는 뻔한 것’과 같은 신화가 깨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양중 의료전문기자 himtr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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