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지난해 3월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열린 ‘기초연금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연금법 개악 반대’ 기자회견에서 국민연금바로세우기 국민행동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싱크탱크 광장] 보건복지·노동 전문가 30명, 박근혜 정부 2년 평가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는 박근혜 정부 집권 중반기에 들어서는 2015년을 맞아, 지난 1월8일부터 15일까지 보건복지·노동 분야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박근혜 정부 2년의 사회정책 평가 및 분야별 정책 우선과제’를 이메일로 설문조사했다. 분야별 응답자는 보건복지 16명, 노동 14명이다.

“바닥이라고 생각하면, 항상 그보다 더한 바닥이 나타났던 시간.”(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

보건복지와 노동 분야 전문가들이 박근혜 정부 2년을 평가한 열쇳말은 ‘후퇴’였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가 사회정책 분야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박근혜 정부 2년 평가와 2015년 과제’를 조사한 결과, 이들은 지난 2년 동안 양질의 일자리 부족, 양극화 심화 등으로 국민의 삶이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초연금 도입·4대 질환 부담
기초생활보장제 등 후퇴 논란
“양극화 해소커녕 심화” 비판
일부 “보수정권 최대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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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된 경제민주화·복지 공약

전문가들은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당시 약속했던 복지 공약 파기 또는 축소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나타냈다. 노인 전체에 대한 기초연금 지급과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 부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사각지대 해소 등 대선 공약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국민들의 복지 체감도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조세정책·부동산정책 등을 보면 양극화 해소와는 거리가 먼 시장주의적, 성장주의적 기조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고, 자유주의적 복지개혁 방식으로 조정이 진행되고 있다”(최영준 고려대 교수), “보수정부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지 확대를 이루었다”(양재진 연세대 교수) 등 보수정부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 2년 동안 사회정책 분야에서 잘한 일’(복수응답)로 △고용률 확대 노력(7명) △기초연금 도입(5명) △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5명) 등을 많이 꼽았다. 고용률 확대 노력의 경우 일·학습 병행제(기업이 취업희망자를 채용해 이론·실무 교육을 병행하는 프로그램)를 도입하는 등 다양한 고용지원책을 추진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최대 20만원까지 연금을 지급하는 기초연금 도입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일부 완화하고 최저생계비 미만 가구에 생계비를 일괄 지원했던 방식이 교육·주거·의료 등 개별급여로 전환되는 기초생활보장제 개편도 ‘잘한 일’로 꼽혔다. 다만, 가장 잘한 것 세 가지를 꼽아 달라는 질문에 응답자 30명 가운데 13명은 “잘한 일이 없다”(무응답 포함)고 평가했다.

‘사회정책 분야에서 잘못한 일’(복수응답)에 대해서는 절반 이상의 전문가들이 ‘비정규직 확산 및 부실 대책’(16명)을 들었고, 기초연금 후퇴(11명)와 의료 영리화(6명), 기초생활보장제 ‘개악’(6명) 등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의견이 많았다. ‘잘한 일’로 꼽힌 사안이 동시에 ‘잘못한 일’로 제기되는 등 찬반양론이 대립하는 모양새다.

■ 겉으로 복지 확대, 속으로 질적 악화

특히 박근혜 정부가 주요 성과로 꼽는 기초연금 도입과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편을 두고선, 진보진영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렸다. 기초연금의 경우 “애초 공약과는 차이가 나지만, 노후소득 보장을 위한 단초를 마련했다는 측면에서는 의의가 있다”(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며 도입 자체에 의미를 두는 답변도 여럿이었지만, 국민연금·물가 연동 등을 통한 수령액 축소 등 내용을 두고 “국민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약화시켰다”(유형근 이화여대 연구교수), “미래 연금액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등의 비판이 제기됐다. 기초생활보장법 역시 “당장의 보호 확대 효과는 크지 않겠지만, 다양한 개별급여들이 발전할 가능성이 생겼다”(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평가도 있었으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법적으로 보장했던 최저생계비 기준이 무력화되고 각 부처가 개별급여 책임을 맡게 되면서 ‘법적 권리’가 ‘행정 재량’으로 격하된 점을 비판하는 의견이 많았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는 “재정이 나빠지거나 정부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급여 수준과 수급 범위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고, 문진영 서강대 교수도 최저생계비 무력화를 문제삼았다. 표면상으로는 복지가 확대된 모양새지만, 실제 내용상으로는 수급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두 얼굴’을 지녔다는 얘기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idun@hani.co.kr


“비정규직 기간 연장은 개악” 비판

노동분야 우선 과제
비정규직 축소·최저임금 인상 꼽아
“청년 착취 기업 규제 필요” 강조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올해 해결되어야 할 과제(복수응답)로 ‘비정규직 축소 및 차별 해소’(14명)를 한목소리로 주장했고,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득 주도 성장’(5명) 및 ‘노동시간 단축’(4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저임금 계층이 200만명을 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이 정규직 노동자 임금의 절반에 그치는 현 구조에서 최저임금의 적정 인상을 통한 양극화 해소가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장은 “두자릿수 이상의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계층의 소득을 늘려 내수 진작은 물론 사회 통합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고, 황규성 한신대 연구교수는 “노동시간 단축은 10명이 일하던 것을 12명이 일하는 식으로 고용을 늘리는 방법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답했다.

이와 함께 청년들의 불안정하고 절박한 취업난을 악용한 ‘신노동착취’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취업난이 심화되고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교육·훈련 단계에 이어 노동시장에 최초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는 청년들이 이른바 ‘열정착취’에 혹사당하고 있다”며 “이를 일삼는 기업에 대한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4년으로 늘리고 파견노동 범위를 대폭 확대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대해선 “대책이라고 할 수도 없는 대책”(이주희 이화여대 교수), “비정규직을 영속화하고 확대하는 부작용이 큰 정책”(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비정규직 기간 연장 및 고령자 파견 업종을 확대하는 조처 등은 ‘중간착취’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기간제로 시작해 노년의 파견노동으로 마감하는 ‘평생 비정규직 시대’를 여는 방안”(이남신 센터장) 등의 비판도 나왔다.

노동시장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묻는 질문에는 “불법파견인 사내하청, 탈법적인 연장근로 등 노동현장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불법 근절”(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간접고용이 만연하지 않도록 법·제도 정비”(이호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저임금의 획기적 강화와 노동권 보장”(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비정규직 사용 제한”(조성주 전 서울시 노동전문관) 등의 의견이 나왔다.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쌍용차 문제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정리해고의 심각성이 사회적인 공감대를 얻는 계기가 되었다고 평가하며 경영 실패에 대한 책임이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정리해고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기업에 부담을 강하게 주거나 국가정책적으로 수용하는 방안이 있는데, 우리는 두 가지 모두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복지재정 해결·공무원연금 개혁 시급”

복지분야 우선 과제
8명 “부자증세” 5명 “보편증세”
사회복지세 도입 주장도 제기

보건복지 분야 전문가들은 올해 복지 분야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공무원연금 개혁(7명)과 복지재정 해결(7명), 비정규직 축소 및 보호 강화(4명) 등을 꼽았다. 국가재정에 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공무원연금을 합리적으로 개혁해 “지속가능성을 높이고”(김태일 고려대 교수), 국민연금과의 격차를 줄여 “복지제도 이분화를 극복”(김원섭 고려대 교수)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복지 재원 대책 마련과 함께 지방정부의 재정 파탄을 초래한 중앙정부의 ‘예산 떠넘기기’를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증세 없는 복지를 주장해 저복지-저부담 유형의 복지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이주하 동국대 교수)는 비판과 함께, “복지재정 해결책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정책화가 필요하다”(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주문이 나왔다.

최근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논란이 되는 가운데, 공보육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무상보육을 시행하고 있지만, 민간에 보육 서비스를 일임하고 방치하고 있는 현재의 전달체계를 정비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는 “예산은 예산대로 쓰면서 특기활동비 등 부모들의 부담도 줄지 않는 최악의 결과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고,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도 “재정을 민간사업자에게 ‘살포’하고 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시장 방임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맞벌이 가구 중심으로 보육료를 지원해야 한다”(구인회 서울대 교수)는 의견처럼 소득별, 취업 여부 등에 따른 차등보육을 시행해야 한다는 주장도 함께 나왔다.

복지재정 확충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부자증세 또는 부자감세 폐지’ 등 부유층에 대한 세금 부담을 우선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8명)이 보편증세 주장(5명)보다 다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우리나라 조세체계의 수직적 수평적 공평성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므로 고소득자와 고액자산가, 재벌 대기업에 대한 증세 및 세원 투명성 강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재정적·정치적 지속가능성을 위해 보편증세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동시에 나왔다. 연대의식과 권리의식을 높이기 위해선 국민 모두가 함께 책임을 나눠야 한다는 설명이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부자증세와 보편증세를 결합한 누진적 보편증세를 통해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일부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에만 쓰이는 목적세(사회복지세) 도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용갑 인천발전연구원 지역사회서비스지원단장은 “일반적 증세를 할 경우 사회복지 분야에 재원이 흐른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소득세·재산세의 1%를 사회복지세로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전문가 명단

강병구 인하대 교수, 구인회 서울대 교수,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건강형평성연구센터장, 김영순 서울과기대 교수, 김원섭 고려대 교수, 김태일 고려대 교수, 문진영 서강대 교수, 송경용 나눔과 미래 이사장, 양재진 연세대 교수,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윤홍식 인하대 교수,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용갑 인천발전연구원 인천지역사회서비스지원단 단장, 이주하 동국대 교수,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최영준 고려대 교수(이상 보건·복지 분야) 김성희 고려대 연구교수,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유형근 이화여대 연구교수,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이주희 이화여대 교수, 이호근 전북대 교수, 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조성주 전 서울시 노동전문관,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 황규성 한신대 연구교수, 황덕순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상 노동 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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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상당수 “현 정부 복지·노동정책 잘한 일 꼽을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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