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배식을 받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무상복지 논란,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하위 70~90% 지원 ‘준보편주의’
스웨덴·호주 등 선진국서 일반화
“차등지원, 보편복지 뜻 훼손안해”
일각선 “백기투항 비칠수도” 우려

‘부자증세’가 올바른 방향이지만
부가세 포함 증세 물꼬트기 중요
“공정한 조세제도 논의를” 지적도 
‘100% 동등지원’이 보편복지 국가의 핵심인가? 최근 무상복지를 둘러싼 갈등의 뒤편에는 수혜 대상의 범위와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란이 잠복해 있다. 무상급식에 교육복지 예산이 집중돼 취약계층 지원 예산이 줄어든다거나 급식의 질이 낮아졌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다. 한정된 재원 아래 ‘재벌집 손녀에게도 공짜로 급식을 주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한 질문이 반복되고, 이는 무상복지에 대한 부정적 여론으로 이어진다.

지난 11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와 참여연대,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의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무상복지 논란,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는, 보편복지를 지지하는 진보진영 학자들 사이에서도 ‘보편복지=무상복지’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재원이 한정돼 있다면 소득에 따라 차등지원하는 ‘유연성’을 발휘하더라도,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의미가 퇴색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 ‘무상’은 보편복지의 핵심인가?

발제자로 나선 이태수 꽃동네대 교수는 “소득에 따라 급여 수준을 박탈하느냐, 아니면 관계없이 폭넓게 자격을 주는가의 여부가 보편-선별 복지 정책을 나누는 주요 기준”이라며 “따라서 무상이냐 아니냐, 균등이냐 차등이냐 등은 보편복지의 핵심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회서비스의 보편성을 보장하는 핵심은 시민 누구나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양질의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 소득에 관계없이 같은 혜택을 주는 ‘무상복지’만이 보편복지라는 인식은 오해라는 설명이다. 그는 “복지 수준이 낮은 한국 사회에서 복지에 대한 체감도와 설득력을 높이는 데 있어 ‘무상복지’가 부분적으로 긍정적 역할을 했지만, ‘보편=무상=공짜’라는 등식이 계속되면 대중들의 동의를 얻어내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며 “무상에 대한 집착이나 활용은 자제하고, 대신 사회적 연대와 평등이라는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철학과 가치이념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별 프로그램에서 소득에 따라 차등지원하는 것이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영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스웨덴의 아동수당도 소득 하위 90% 지원부터 시작했고, 소득재분배 기능이 강한 오스트레일리아 역시 소득 하위 70~80%를 포괄하는 준보편주의가 일반화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의 무상급식이 급식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다른 저소득층 교육 프로그램 예산이 줄어든다면 (무상급식) 대상을 80% 정도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형 보편복지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무상급식의 핵심 쟁점이 비용 문제인 만큼, 이를 포기하는 순간 보편복지 운동의 틀이 무너진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무상보육은 이견이 없는데 새누리당이 무상급식만 비용부담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무상급식으로 대표되는 보편복지의 틀을 흔들려는 의도”라며 “차등부담을 수용하는 식으로 논의를 끌어갈 경우 백기투항으로 비춰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무상=공짜’라는 부정적 인식을 넘어서기 위한 대안적 용어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참석자들 모두 공감을 표시했다. 이태수 교수는 “의무, 국가책임, 보편이라는 용어를 활용해 대중들의 오해를 덜 수 있는 전략적 용어 선택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참여연대,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함께 연 ‘무상복지 논란, 이대로 좋은가?’란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이 객석에 앉은 참석자와 토론을 하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 복지재원 확충, 증세만이 정답인가?

참가자들은 보편복지 프로그램 지속을 위한 재원 확충의 ‘절실함’에는 모두 공감했지만, 그 방법과 대상 등을 두고는 조금씩 의견이 달랐다. 윤홍식 인하대 교수(행정학과)는 “이번 논란의 핵심은 보편적 복지를 약속해놓고, 이에 수반되는 재원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이라며 “보수정권 아래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어떻게 해서든 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의 물꼬를 트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라면 보수정권이 선호하는 부가가치세 증세도 복지 확대를 위해 필요하다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영순 교수는 현재 복지증세에 대한 여론은 호의적이지만, 계층별로 ‘온도차’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가 이날 공개한 ‘한국인의 복지 인식’(2013년) 결과를 보면, ‘사회복지 확대를 위한 증세’에 동의한다는 의견이 44.5%로 2007년(37.8%)보다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중산층의 경우 복지증세에 동의하는 비율은 42.7%로 저소득층(48.3%)과 고소득층(46.8%)에 견줘 상대적으로 낮았다. 김 교수는 “중산층은 증세에 대한 공포감이 있다. 이에 근거해 보면 보편적 누진증세보다는 부자증세가 더 적절한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증세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반론도 나왔다. 현재 심각한 양극화 상황에서 조세부담능력이 있는 경제활동 인구는 매우 적고, 세금을 부담하는 집단 역시 광범위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최근 김낙년 동국대 교수(경제학)가 발표한 ‘한국의 개인소득 분포’ 논문을 보면, 우리나라 전체 개인소득자 3120여만명 가운데 한 해 소득이 1000만원도 채 안 되는 사람이 48.4%로 절반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찬진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은 “증세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취약점이 많다”고 지적했고, 김용익 의원 역시 “지금 복지의 위기는 조세 문제 및 지방자치의 문제”라며 “공정하고 투명한 조세제도에 대해 각 정당들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장기적으로 보편적 복지를 지지하고 지켜낼 수 있는 강력한 지원 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홍식 교수는 2012년 대선 당시 보수진영조차 ‘무상복지’라는 개념을 사용한 바 있다며, “문제의 본질은 그 개념을 지지하고 사용하는 집단의 규모와 성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상복지를 지지하는 정치집단이 노동자와 중간계급으로 대표되는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면, 보수의 공격은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권력체계를 다수제·소선거구제에서 비례대표성을 강화하는 체계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최혜정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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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복지=무상복지’라는 틀을 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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