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지난해 12월17일 한진현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왼쪽에서 다섯째)이 참여한 가운데 서울 중구 고려대연각타워에서 열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현판식’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사용후핵연료 처리 어떻게 (하)
원자력 발전소마다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공간은 꽉 차 가는데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어디에 저장할지를 결정하는 공론화는 공회전을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발족한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다음달이면 활동 시한이 끝나는데도 아직 공론화 과정에 다룰 사용후핵연료 양, 저장방식, 재활용 여부 등에 대한 의제를 정리조차 못하고 있다. 17일 공론화위 정기회의에서는 위원회 시한 연장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이견이 커 쉽게 결론이 날지 미지수다.

논의과정 공개않고 위원은 불참
시민단체쪽 배제 ‘반쪽 공론화’
참관인사 “100점 만점에 10점”

17일 정기회의 시한 연장 논의
환경단체 “다시 구성하라” 주장

유럽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과정을 참관한 한 인사는 지금까지의 공론화위 활동 성적을 “100점 만점에 10점”으로 매겼다. 다소 가혹한 점수지만 공론화위가 발족 때 내세운 5가지 원칙이 얼마나 지켜졌는지를 돌아보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공론화위는 애초 책임성, 투명성, 숙의성, 통합성, 회귀성을 5대 기본 원칙으로 내세웠다.

원자력 관련 사업의 진행에서 늘 논란을 일으킨 투명한 정보공개 문제는 이번 공론화위 운영에서도 또다시 불거졌다. 공론화위는 정기회의 속기록을 공개하지 않다가 논란이 일자 제20회 정기회의(7월25일) 때부터 공개하고 있다. 공론화위는 속기록 비공개가 지역대표 위원 5명 중 4명이 현역 지방의회 의원이어서 지방선거 등 정치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론화위는 지방선거 이후에도 20회 회의 이전 속기록을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익철 (주)지엔에스이노베이션 대표는 “영국 공론화기구는 공론화 과정에 생산된 1800여개 문건 가운데 국가기밀 및 안보와 관련된 10여건을 제외하고 모두 공개했다. 위원회 회의는 아예 공개적으로 진행해 투명성 논란 여지를 없앴다”고 말했다.

공론화위는 위원 구성 자체가 숙의성과 책임성 측면에서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공론화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숙의성이 발휘되려면 위원이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한다. 상근까지는 아니어도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야 한다. 영국에선 위원을 선발할 때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는지를 중요한 조건으로 삼았다. 필요하면 1박2일의 토론이 이뤄져야 해서다. 하지만 우리 공론화위는 가장 기본적인 정기회의 출석조차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역대표들이 지방선거 기간 정치활동으로 참여하지 못한 점을 고려해도 10월10일까지 열린 25차례의 정기회의 중 13명의 위원 가운데 6명이 불참한 경우가 3번이다. 전원 출석은 딱 2번뿐이다.

통합성은 논의 과정에 기술공학적 측면과 함께 인문사회적, 법제도적 측면 등 다양한 분야의 시각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애초 사용후핵연료공론화 태스크포스(TF)에서 제시하지 않았는데 공론화위가 새로 넣었다. 그럼에도 공론화위는 7월 전문가검토그룹에 맡겨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에 관한 이슈 및 검토의견서’를 기자회견을 통해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시민이나 이해관계자의 의견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오히려 검토의견서에 이견이 있는 기술 진영에서 반발해 한국원자력학회는 10월에 또다른 의견서를 내놓았다.

회귀성은 논의 과정이나 의사 결정 뒤 중대한 문제점이 확인되면 원점에서 다시 논의하는 것을 뜻한다. 공론화 출범 당일 시민·환경단체 쪽 위원 2명이 위원장 선임 등 일방적인 회의 운영에 반발해 사퇴한 것은 이유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중대한 사안이었음에도 재논의 없이 공론화위 운영을 그대로 진행해 지금까지도 ‘반쪽 공론화’라는 오명을 달고 있다.

이런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점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공론화에 대한 관심을 전혀 이끌어내지 못한 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원자력기구(NEA)는 방사성폐기물 관련 정책을 수립할 때 참여적 의사결정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라고 권고하며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과 이해, 가치가 충분히 공유되고, 생산적인 대화를 통해 사회학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지난 4월 공론화위가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위원회 인지도는 26.8%, 사용후핵연료 인지도는 37%로 나타났다. 현 시점에도 공론화위 누리집 누적 방문객수는 7만여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토론 주제별로 의견을 제시한 경우는 몇십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을 공론화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세월호) 유병언 도피 사건 때 반상회를 연 것처럼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국민의 피부에 닿을 수 있는 논의로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다.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전기요금과 연동된 문제로 공론화위가 이런 측면에서 접근했다면 국민의 관심을 좀더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홍두승 공론화위 위원장은 3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주최 ‘사용후핵연료,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 저장할 것인가’ 토론회에 참석해 “출범 당시 8월말까지 1차 초안을 마련한다고 발표했지만 지방선거·세월호사건 등으로 많이 지체돼 무엇을 공론화하는지 제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부지런히 권고안 초안을 마련해 토론에 부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홍 위원장은 “법에 올해 말까지 권고안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한테 제출하도록 돼 있지만 시한을 맞출지 기간을 연장할지 위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자 환경·시민단체 쪽을 중심으로 아예 공론화위를 다시 꾸리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사용후핵연료 포화까지 7년의 여유가 있으니 지금의 공론화위 경험을 바탕으로 두번째 공론화위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제2기 공론화위가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공론화위가 초안에 대해서라도 시민사회단체와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자세가 있다면 기간을 연장해서라도 공론화 과정을 보완하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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