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보도
‘사용후핵연료,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 저장할 것인가?’를 주제로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한겨레사회정책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사용후핵연료 처리 어떻게 (상)
가동 중인 우리나라 원자력발전소 23기가 해마다 쏟아내는 사용후핵연료는 700t에 이른다. 이미 발전소에 쌓여있는 양이 1만3500t이다. 지금대로라면 2016년에, 새로운 저장기술을 적용해도 2024년이면 사용후핵연료를 더는 쌓아 놓을 수 없는 포화 상태의 원전이 생겨난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과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고 지난해 10월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관심은 싸늘하다. 사용후핵연료와 관련한 핵심 쟁점과 공론화 현황 및 전망을 두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누적 1만3423t ‘임시저장’…8년 뒤 포화상태

쟁점1: 폐핵연료 양
고리 포화율 79%…2년 뒤 꽉차
폐로에 따른 폐기물은 포함안돼
2035년까지 13기 추가 건설 예정
‘공론화위’ 에너지정책 위주 운영
원전정책 전반에 대한 논의 미흡

지난 3일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주최로 ‘사용후핵연료, 무엇을 어떻게 어디에 저장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가장 뜨거운 논쟁 주제는 ‘사용후핵연료의 양’이었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의 규모와 가동 시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자 원자력발전 확대 여부 등 에너지기본정책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현재 고리, 한빛(옛 영광), 한울(옛 울진), 월성원전에서 모두 23기의 원전을 가동 중이다. 이들 원전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는 올해 3월말 현재 모두 1만3423t에 이른다. 지금은 원전 터 안에 ‘임시저장’하고 있다. 하지만 저장 공간 용량이 거의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고리원전의 포화율은 현재 79%에 이르고 2016년이면 꽉 차게 된다. 다른 원전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2022년이면 모든 원전의 용량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전문가들은 핵다발을 좀더 조밀하게 저장하는 방식을 도입하고, 새로 건설 중인 원전으로 기존 원전의 사용후핵연료를 옮기면 원전에 따라 2024~2038년까지 저장가능 시한을 연장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문제는 조밀저장대 설치와 호기간 이송 방식이 가능한 원전이 가동 중인 23기와 건설 중인 5기 등 28기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올해 1월 결정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2035년까지 28기말고도 13기의 원전을 더 건설한다는 얘기인데 처분해야 할 사용후핵연료 양에 대해 논의를 할 때 이 대목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2020년대면 고리·월성 1호기 외에도 수명을 다하는 원전이 9~10기에 이른다. 사용후핵연료 양을 계산할 때 반드시 반영해야 할 요소다. 원전 가동 중단을 결정하더라도 폐로에 따른 고준위폐기물 역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이전에 원자력정책 전반에 대한 논의가 전제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발제를 맡은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사용후핵연료 양은 공론화를 언제까지 마무리지어야 하느냐는 시한 문제와도 맞물려 있어 중요한 쟁점이다. 그러나 현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는 실행계획에서 에너지기본계획을 기반으로 한다고 규정해 공론화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결정해야 할 사항인 사용후핵연료 양을 특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신규 원전 수명은 60년이고 수명까지 연장하면 운영 시한이 우리 세대를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공론화위는 지난 2월 발표한 실행계획에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서는 논의를 제한하지 않는다”고 전제하면서도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상위 정책인 에너지정책과 관련한 사항은 존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영국의 경우 사용후핵연료는 현재 가동 중인 원전에 국한하고 폐로에 따른 폐기물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 그린피스 등 반원전 진영까지 공론화에 참여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토론회의 또다른 발제자인 황주호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2006~2007년 공론화 준비 과정에도 원자력발전을 계속할지를 결정한 뒤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다루는 것이 순서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에너지정책이라는 거대 담론을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사람들한테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 우선 중간저장에 대해 논의하자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외국 전문가들 “재포장 과정 안전성 문제 우려”

쟁점2: 중간저장 방식
관리주체가 한수원서 국가 이관
발전소 안에 저장시설 건설해야
국내 학자들 방식 놓고 의견 갈려
제한구역 중첩 등 안전문제 우려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둘째 쟁점은 저장 방식이다. 원자로에서 타고 남은 사용후핵연료는 대부분 발전소 수조 안에 보관(습식저장)되고 있다. 관행적으로 ‘임시저장’이라는 말을 쓰지만 법적 용어는 아니다. 원자력 발전소 안에 위치한 방사성폐기물을 저장하는 ‘관계시설’에 불과하다. 경수로만 있는 고리, 한빛, 한울 발전소에는 습식저장소만 있고, 경수로와 중수로가 모두 있는 월성에는 습식과 건식저장소가 모두 있다.

2012년 12월4일 열린 신고리 1호기와 2호기 준공식. 울산/류우종<한겨레21> 기자 wjryu@hani.co.kr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안의 관계시설에 영원히, 무한정 보관할 수는 없다. 다만 사용후핵연료를 아예 영구처분장에 보관할지, 영구처분 때까지 중간저장 단계를 둘지가 쟁점이다. ‘원자력안전법 시행령’은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을 “핵연료물질을 발생자로부터 인수해 처리 또는 영구처분하기 전까지 일정 기간 안전하게 저장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발전소 안 보관은 원전사업자(한수원) 책임이지만 중간저장 단계에서는 관리 주체가 국가(방사성폐기물관리사업자)로 바뀐다는 얘기다.

윤순진 교수는 “공론화위가 초청한 국외 전문가들도 중간저장 방식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고 재포장 과정에 안전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곧바로 최종처분으로 가는 것이 낫다는 조언을 한다”고 말했다.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장은 “공론화위가 중간저장을 전제로 논의를 진행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주용 교통대 행정정보학과 교수는 “스웨덴·핀란드도 수십년 동안의 논의 끝에 영구처분에 이른 것이다. 우리도 장기적인 계획은 세워야 하겠지만 영구처분에 대한 기술적 한계와 법적·제도적 미비 등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이 중간저장 단계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중간저장 방식에 대해서도 의견은 갈린다. 지난 8월 공론화위의 의뢰를 받아 15명의 전문가들이 제출한 ‘사용후핵연료 관리 방안에 대한 이슈 및 검토 의견서’에서는 “기존의 원전 부지 안에 저장시설을 건설할 경우 원전 건설 때 관련 규정과 절차가 이미 적용된 것이므로 실현 가능성이 높은 중간관리 방안”이라고 밝히고 있다. 반면 역시 공론화위로부터 의뢰를 받은 한국원자력학회는 지난달 중순 제출한 의견서에서 “발전소 안에 중간저장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법에 의한 관리 주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지를 분할한다 해도) 발전소와 저장시설의 제한구역 중첩 등 안전상의 문제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헌석 대표는 “발전소 안 중간저장 시설 불가론은 제3의 부지 선정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경주(월성)는 방사성폐기물처분장 건립 조건으로 지역 내 사용후핵연료 시설을 두지 않기로 돼 있고, 다른 원전 지역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황주호 교수는 “학회가 중간저장을 전제로 의견서를 제출한 것은 아니다. 기술적 검토를 하며 (사용후핵연료 발생과 관리 주체를 분리한) 법 체계를 부인할 수는 없지 않으냐. 그러나 운영을 멈춘 발전소 안에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것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재활용’ 연구는 경제성·안전성 담보해야

쟁점3: 재활용과 중간저장
원연, 파이로프로세싱 사업 추진
폐핵연료 저장용량 확보엔 미흡
“중간저장 전제로 한 사업” 의혹도
일본도 재처리기술에 어려움 겪어

한국원자력학회는 공론화위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기술이 당면 문제인 사용후핵연료 저장용량 확보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밝혔다. ‘재활용’은 사용후핵연료를 자원으로 보고 여기에 포함된 미활용 연료물질을 에너지 생산에 활용하려는 기술을 뜻한다. 사용후핵연료를 건식처리해 연료물질을 추출한 뒤 원자로(고속로 등)에서 연소시키는 기술까지를 포함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연구 중인 파이로프로세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용후핵연료를 습식처리해 무기급 핵물질을 추출할 수 있는 ‘재처리’와 구분하려고 사용하는 용어이지만 기술적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에서 재활용이 쟁점이 되는 이유는 곧바로 영구처분하지 않고 중간저장을 하자는 논리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황용석 서울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공론화를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폐기물로 볼지 자원으로 볼지 정리가 돼야 효과적인 중단기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황주호 교수는 “사용후핵연료를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자원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적 개념으로는 원자력법에도 ‘폐기물’로 규정돼 있다. 경제성·안전성을 담보하는 것을 전제로 재활용 연구는 해야겠지만 파이로프로세싱이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혜정 위원장은 “파이로프로세싱은 지금까지 1천여억원을 쏟아부었고 2028년까지 실증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유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등 단순한 연구개발 활동이 아닌 것 같다”며 사용후핵연료 처분 방식이 결정되지 않았음에도 중간저장을 전제로 한 사업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주호 교수는 이에 대해 “1천억원이라는 액수만으로 상용화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일본이 로카쇼무라 재처리시설에 쏟아부은 돈이 애초 계획엔 20조원이었는데 실제로는 100조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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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재앙 사용후핵연료 처리 ‘발등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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