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정부, 정당, 정치인들의 일이다.” “민주주의란 몇 년마다 선거에서 대표를 뽑고,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맡기는 것이다.” 이런 고정관념들이 21세기 들어 세계 곳곳에서 깨져가고 있다. 시민들이 더는 투표자로 머물지 않고 있다. 정책을 검증하고 여론을 확산시키고, 정당들을 압박하는 적극적인 주권자로 새로운 정치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러셀 돌턴은 이를 ‘시민정치’라고 이름 붙였다. 국내에서는 2002년 미선·효순 촛불집회, 2004년 탄핵반대 촛불집회, 2008년 ‘촛불소녀’와 ‘유모차부대’가 바로 이런 시민정치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사건들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식과 경험은 얼마나 되는지? 어떤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가장 적극적인지?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중요시하는 시민들은 대의민주주의나 선거정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지? 이번 ‘시민 정치의식 및 참여도 조사’는 그에 대한 최초의 체계적 조사라 할 수 있다.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관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10명 가운데 7~8명이 ‘시민들이 정치적 사안에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치인들이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면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이라도 다수 국민이 반대하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번 조사 결과는 이런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욕구가 대의민주주의나 기존 정당정치에 대한 부정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 투표할 의향이 전에 비해 더 커졌다’는 응답자의 78.0%, ‘최근 들어 선거에 대한 관심도가 이전에 비해 늘어난 편’이라는 응답자의 78.3%가 “시민이 직접 정치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응답했다. 조용히 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정치에 참여하는 것과, 거리로 나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행동 둘 다 모두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민주주의 진전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했다. 한쪽에선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게 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봤고, 다른 쪽에선 정당정치가 중요하다고 여겼다. 이번 조사는 이런 의견 대립이 ‘잘못 놓인 논쟁’임을 보여준다. 시민정치와 정당정치는 한쪽이 융성하면 다른 쪽이 쇠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치에 적극적인 시민들은 선거를 통한 간접적인 정치참여는 물론 직접적인 정치참여에 모두 관심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