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쟁점 진단 청년층 ‘고용 한파’가 좀처럼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지난해 청년(만15~29살) 실업률은 9.2%로 1999년 통계기준 변경 이래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구직 단념자나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는 청년까지 포함한 체감실업률은 정부 추정으로도 20%를 훌쩍 웃돌고 있다. 다만 그 수치를 감추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 정부가 틈만 나면 청년실업 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지금까지 성과가 거의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올해 청년고용 시장의 전망은 개선되기는커녕 더 비관적이다. 경기 침체의 지속에다 올해부터 법적 정년이 연장되면서 청년 취업문은 더 좁아지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도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효과가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정부는 무엇보다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 증대 연동정책(이하 ‘연동정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을 받는 고령층의 임금을 줄여 청년층 고용을 늘리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에 대해서는 노동계 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다. 노동계야 당장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려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전문가들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이 반대하는 논리는 대체로 아래 세 가지로 모이는 것 같다. 첫째, 애초 임금피크제는 정년연장에 대한 보완책으로 도입이 고려되었던 것으로 청년고용과는 상관이 없다. 둘째, 어차피 임금피크제 대상자 자체가 많지 않아 이를 통한 청년고용 증대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셋째, 기업은 임금피크제로 아낀 돈을 청년고용에 쓰지 않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부 연동정책은 고령층 고용 불안만 야기할 뿐 청년고용 증대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실제로 고령층 고용과 청년층 고용 간에는 유의한 상관관계가 없다는 게 국내외 실증연구의 공통된 결론이다. 오히려 두 연령층의 고용은 경기변동에 의해 같은 방향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경기가 좋으면 고령층과 청년층 모두에서 고용이 늘고 나쁘면 두 연령층 모두에서 고용은 줄어든다는 것이다. 반대자들은 이런 근거를 들어 고령층 고용과 청년층 고용을 연결시키는 정부의 정책이 틀렸다고 하지만, 오히려 정부로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연동정책을 주장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그동안 경제성장의 과실을 상대적으로 많이 누린 고령층이 조금 더 희생을 해서 억지로라도 청년고용을 늘려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연동정책은 ‘최선책’이라기보단 ‘차선책’이고, 경제위기의 어려움을 고통분담과 세대 간 상생으로 이겨내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만큼 우리 경제가 어렵다는 얘기다.
임금피크제 통한 청년고용 증대는 부작용 위험 키워그러나 이런 ‘고통분담’과 ‘세대 간 상생’의 측면에서 본다면, 임금피크제야말로 가장 부적절한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진영과 시민사회에서는 정부의 연동정책이 실효성이 없거나 기업의 비협조로 잘 되지 않으리라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정부의 의도대로 잘 시행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령 대기업 생산직에 종사하면서 고액 연봉을 받는 50대 노동자를 생각해 보자. 정부정책에 따라 그는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삭감을 기꺼이 받아들여 젊은이 한 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젊은이의 아버지가 여러 주택과 상가를 보유한 연소득 수억원 대의 임대소득자라면 어떨까?
애초 임금피크제가 일부 잘나가는 대기업 위주로만 실시될 수밖에 없고, 또한 그런 대기업 입사자들의 출신 배경이 점차 특정 계층으로 획일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니, 이것이 전혀 터무니없는 설정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흙수저’ 노동자가 양보한 대가를 ‘금수저’ 청년이 가져간다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정부의 임금피크제-청년고용 증대 연동정책 하에서는 높은 연봉을 받고 있지만 대기업 임직원이 아닌 아버지들, 고액의 임대소득을 거두는 아버지들은 그들의 자식 세대의 고용 증대에 실제로 기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이것은 심각한 사회갈등 요인이 된다. 만약 청년고용 문제가 특정 대기업이나 일부 고소득 노동자의 이기적인 행위 때문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라면 그 해법도 전 사회적으로,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한다.
한편 정부의 연동정책은 그 수혜자인 청년층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부적절하다. 임금피크제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임금 고령 노동자들을 주로 겨냥하고 있으므로 이 연동정책의 혜택을 보기 위해서는 꼼짝없이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에 취직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용이 점차 다변화하고 있는 세상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대기업에서 자신의 미래를 찾을 필요는 없다. 또한 현재 우리 경제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그간 대기업 위주의 성장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려하면, 바로 그 일부 대기업에 인력을 몰아주는 연동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를 위해서라도 청년고용의 구조와 형태는 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결국 정부의 연동정책은 만약 그것이 현재의 반대기류를 뚫고 성공적으로 시행되더라도, 취업희망자들에게 잘못된 유인을 줘 노동시장과 고용구조를 왜곡하고 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취약하게 만들 공산이 큰 것이다.
임금피크제-청년 고용 확대 연계 정책의 흐름도
청년고용이 우리 사회와 거시경제적 구조에 미치는 중장기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현행 정부의 연동정책은 일부 사람들의 기여에 의해 극히 제한된 청년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최악의 방식이다. 정부의 의도대로 성공한다해도 심각한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 청년층 고용에 대한 해법은 좀 더 큰 시야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먼저, 그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인 만큼 그간 우리 경제의 성장과정에서 혜택을 본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폭넓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보다 많은 청년들에게 다양한 고용기회를 보장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아무리 ‘고육지책’이라고 해도 최소한 이 두가지 원칙이 지켜져야만 정당성이 확보될 수 있다.
모든 경제주체가 기여하는 청년고용 증대방안 나와야이런 두 가지 원칙을 충족하면서 청년고용 증대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결국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세금을 조금 더 걷어 청년 일자리 창출에 힘을 쏟는 것이다. 세금은 누구나 다 낸다. 이를 통한다면, 대기업의 중고령 노동자만이 아니라 고소득·전문직 종사자, 직장 구하는 자식을 둔 부동산임대업자 등 우리 사회의 미래에 책임이 있는 모두가 청년고용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방법은 쉽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는 소득세에 ‘청년고용증대세’라는 명목으로 일정한 가산세를 붙이면 된다. 전체 소득세 납부자에게 차등적으로 붙일 수도 있고, 임금피크제 대상자를 정하듯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소득에만 붙일 수도 있다. 이는 정부와 시민사회가 어느 정도의 합의 수준을 일궈내느냐의 문제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임금피크제-청년고용 증대 연동정책은 일부 노동자들의 희생만을 강요해 노동계의 반발을 샀지만, 이런 틀에서는 노동계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청년고용이라는 중차대한 대의에 다른 계층들도 십시일반하자고 제안함으로써 노동계의 사회적 존재 의의를 과시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해 달성될 탄탄한 청년고용은 장기적으로 노동자 세력 강화의 기반이 된다. 그러므로 전략적 판단에 따라서는 노동계가 앞장서서 다른 경제 주체들의 참여를 독려할 필요도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경제 주체들이 골고루 부담하도록 해 재원이 쌓이면 정부는 이를 청년고용 증대를 위해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전통적인 직업훈련이나 임금보조 등에서부터 청년들에게 일정액을 일괄지급하는 것까지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사실 후자는 현재 서울시나 성남시가 도입중인 방식인데, 그 효과는 본질적으로 현재 정부의 연동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연동정책 하에서는 극히 소수의 수혜 청년들이 일부 대기업에만 취업할 수 있었지만, 여기선 모든 청년이 잠재적 수혜자가 되며 그 적성과 취향에 맞게 다양한 활동을 펼 수 있다. 물론 임금보조의 성격도 있어서 기업 입장에서도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다.
사실 임금피크제 대신 세금을 걷어 청년고용의 마중물로 쓰자는 방안이 새로운 건 아니다. 일례로 서울노동권익센터의 김성희 소장도 최근 비슷한 제안을 한 바 있고
(링크), 더불어민주당의 정세균 의원은 지난해 말 ‘청년세’라는 이름으로 법안까지 발의한 상태다. 이 법안은 과세표준 1억원이 넘는 기업 수익에 대해 1%를 청년세 명목으로 일괄부과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법인세 추가 징수는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들을 더 움츠러들게 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반대의 파고를 넘기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지금은 여력이 되는 개인납세자들이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이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청년고용이 늘고 기업활력이 살아나면, 기업은 자연스럽게 그 나름의 기여 방법들을 찾을 것이다. 한편 김성희 소장은 연소득 중에서 1억5000만원을 넘는 소득에 대해 구간별로 0.5~1.5%의 청년세를 부과하는 안을 검토한 결과 연간 4000억원 안팎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기존의 청년고용 예산과 결합하면 정부의 정책 수단을 한층 넓힐 수 있는 재원이며, 그 액수는 사정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줄어들거나 늘어날 수 있다. 어쨌든 정부가 표방하는 대로 청년고용 문제를 세대간·계층간 통합과 화합을 통해 풀고자 한다면 정부가 좀 더 직접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물론 고용시장의 수요·공급에 정부가 직접 끼어드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정부 개입으로 자원배분이 비효율적으로 된다는 걱정이다. 그러나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수급이 안 맞으면 가격이 떨어지거나 그냥 폐기처분되어도 좋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고, 이미 현상황 자체가 ‘시장실패’에 다름 아니다. 또한 현재 우리 정부는 어느 기준으로 보더라도 결코 경제개입의 정도가 큰 게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나라들의 평균 국민부담률(국내총생산에 대한 총조세 및 사회보장기여금의 비율)이 34%에 이르는 반면, 우리는 그보다 10%포인트가량 낮다.
우리는 지금 그 규모와는 상관없이 효율적이고 능력 있는 정부를 필요로 한다. 박근혜 정부가 그 능력을 우선 청년고용을 범사회적으로 관리하는 데서 배양해보면 어떨까? 마침 지난해 2월 감사원은 ‘재정지원 일자리사업 추진실태’란 보고서에서 정부의 일자리 재정사업의 상당수가 기대에 못 미치며, 특히 청년 일자리사업에 대해 ‘부적정’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이것은 정부가 청년고용 촉진사업에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정책과 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어 그 혜택이 정말로 일자리를 필요로하는 청년들에게 가지 않아 정책의 효과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청년고용에 잠 못 이룬다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서운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추진하는 연동정책은 이런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것임이 불 보듯 뻔하다. 청년고용을 위한 ‘세대간 연대’는 임금피크제가 아니라 세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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