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우리나라 경제 전망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올해보다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과 함께 더 부진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만만치 않다. ‘불확실성이 커질 것’이라는 미래만큼이나 미래에 대한 전망 또한 불확실하다. 경제 주체들은 헷갈리기만 한다. 누가, 어디서부터 잘못한 것인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386조4000억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은, 정부가 제시한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바탕에 깔고 있다. 정부 전망치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기준 3.3%, 명목(경상)으로는 4.2%이다. 이 전망치를 두고서 당장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민간 연구소나 외국계 금융기관은 대체로 정부보다 낮은 성장세를 점치고 있다. 민간 연구소의 내년도 한국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평균 2.8% 수준이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2%대 성장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이다.
2014년 한국은행이 국가 경제의 가장 대표적 통계인 국민계정의 산출 기준을 바꾸면서 여러 경제 수치들이 예년보다 좋게 바뀌었다. 단순한 통계상의 수치 조정이다. 한은은 새로운 국민계정 기준을 적용해 2014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애초 3.8%에서 4%로 0.2%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정영택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이 지난해 3월26일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국은행 기자실에서 2013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등을 포함한 2013년 국민계정(잠정)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에 비해 정부만 3%대 전망치를 고수하는 근거는 의외로 간단하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주요 연구기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성장 모멘텀을 올해 4분기에 이어 내년까지 이어간다면 내년에는 3%대 성장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사실상 동어반복이다. 고상하게 말하면, 결론(전망) 자체를 전제의 일부로 사용하는 ‘순환논증의 오류’이다. ‘성장 모멘텀을 이어간다면 성장할 수 있다’라는 것과 ’잘 하면 잘 될 수 있다’는 게 무엇이 다른가? 최 부총리의 이런 논법은 상습적이다. 지난달 23일에는 기획재정부 확대간부회의에서 “금년에는 많은 어려운 대내외 여건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의 불씨를 되살리는 등 악조건하에서 선방했다”고 자평하면서 “수출만 받쳐줬다면 올해 후반 3%의 경제성장률 달성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10월 24일에는 러시아 우스리스크의 현대중공업 영농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3분기 경제성장률이 1.2%(전기 대비)로 나오자 증권시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를 빌려 “서프라이즈하다”고 말했다. “추경과 정부의 소비 진작책 등의 정책적 효과가 상당히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도 덧붙였다. 하지만 “하방(내려가는) 리스크로 인해 올해 정부 목표치인 3.1%를 달성하는 데는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12월 2015년 실질성장률 전망치를 3.8%로 제시했다가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한 자리에서는 3.1%로 수정했다. 이제는 3% 달성도 어렵다고 자인한 셈이다.
정부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의 수장인 경제부총리가 어느 자리에서든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하거나 달성 가능성을 언급하면 즉각 시장에 ‘속보’로 타전된다. 이 때마다 메르스 여파, 미국 기준금리 인상 움직임 등 대내외 충격이 수정의 이유로 제시된다. 애초의 전망치가 어떤 목적에서 ‘의도된’ 과도한 수치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착오였는지에 대한 성찰이나 분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6월2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5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틀려도 너무 틀린 정부의 경제전망우리나라 정부는 매년 두 번 경제전망 결과를 공식 발표한다. 이 전망에 입각해, 6월말에는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12월 말에는 다음 년도 경제정책의 윤곽을 온국민에게 알린다. 정부의 경제전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경제성장률이다. 이는 보통 실질 국내총생산(GDP) 상승률로 측정된다. 경제성장에 소비, 투자, 수출입 등 경제를 이루는 각 부문의 기여도도 함께 예측된다. 경제전망의 질은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확성이다. 특히 정부의 경제전망은 개별 경제주체의 행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부정책 또한 그에 입각해 세워지므로, 여기서 정확성은 생명과도 같은 덕목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의 경제전망은 얼마나 정확할까?
2008년 이후 연간 경제성장률의 전망값과 실현값의 추이(그림1)를 살펴보면 그 답을 쉽게 알 수 있다. 정부는 경제전망을 발표할 때마다 그 해와 다음 해의 전망값을 내놓는다. 따라서 매년의 경제성장률 전망값은 크게 네 번, 즉 전년도 및 당해년도의 6월과 12월에 발표되는 셈이다. 이 외에도 정부가 매년 9~10월에 다음 연도 예산안을 내놓을 때에도 경제성장률 전망값이 간접적으로 노출된다. 예산안을 짜기 위해선 일정한 경제성장률을 전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래 그림은 매년 경제성장률에 대한 이 다섯 번의 예측값의 추이를 보여준다. 각 연도로부터 세로로 솟은 막대의 높이는 그 해의 실제 경제성장률을 의미한다.
<그림1>정부의 경제성장률(실질) 전망값과 실현값, 2008~2015년. *주: 2015년 실제 성장률은 최근 한국은행(10월)과 OECD가 내놓은 전망치(2.7%)를 적용.
여기서 한 눈에 볼 수 있듯이, 우리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은 그 정확도가 매우 떨어진다. 2010년을 제외하면 정부는 경제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망치가 실제 성장률에 수렴하는 경향이 나타나지만(이것은 당연한 것이다), 최초 전망치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크다. 위 그림에서 가로축 위의 숫자는 각 연도의 최초전망치가 실제 경제성장률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2012년의 경제성장률은 실제론 2.0%에 불과했지만, 2011년 6월에 발표된 최초 전망치는 4.7%였다. 무려 135% 높게 예측된 것이다. 아무리 미래는 누구도 모르는 것이라고 해도 이것은 너무한 것이 아닌가?
경제전망의 오류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그러나 우리 정부를 이끄는 이들은 이러한 격차를 그다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눈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지난. 2012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그는 ‘연간 7% 경제성장’을 포함하는 이명박 정부의 이른바 ‘747 정책’의 ‘기만성’을 질타하는 야당 의원에게 “그것은 공약이라기보다는 비전이었다”라고 답해 좌중을 아연실색케 한 바 있다(참조: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299394).
경제전망을 ‘현실’이 아닌 ‘이상’으로 보는 것은 관료들 사이에서 꽤 일반화된 시각으로 보인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정부 입장에서는 객관적 전망치보다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정책의지를 담아 경제전망을 하려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출처: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697908.html). 하지만 정부의 정확하지 않은 경제전망은 민간 경제주체에게 잘못된 신호를 줘 잘못된 경제적 판단을 하게 만들어 경제질서를 어지럽히고 자원배분을 왜곡시키기 쉽다. 어떤 시민이 소비가 살아날 것이라는 정부의 기대 어린 전망을 그대로 믿고 개인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했다면, 정부는 책임질 수 있는가?
그런데 정부의 낙관적 경제전망이 (어느 정도는) ‘의도된’ 것이라면, 정부가 진실된 전망값을 알고 있다는 뜻인가? 적어도 강만수 전 장관의 발언 등으로 미뤄봤을 때, 정부가 자신의 전망값이 실제보다 낙관적인 수치라는 것 정도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을 것 같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정부가 실제보다 낙관적인 경제전망 결과를 내놓은 이상 정부의 정책도 그것을 전제로 세워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제가 실제로는 곤두박질치는데도 회복되고 있다는 전망을 정부가 ‘의지’를 담아 내놓았다면, 정부는 스스로 공표한 전망에 맞게 회복기에 맞는 정책을 취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는 하강기에 있고, 경제가 하강기에 있을 때의 정책과 반등기에 있을 때의 정책이 같을 수가 없으므로, 이 경우 정부의 정책은 경기회복을 오히려 더디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부의 정책은 경기대응적(counter-cyclical)으로 짜여야 하는데, 잘못된 또는 의도적으로 낙관적으로 짜인 경제전망은 오히려 경기의 과열이나 침체를 가중시킬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잘못된 경제전망의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는 예산안을 짤 때 나타난다. 우리나라 정부는 매년 예산안을 전연도 9~10월에 내놓는다. 보통의 가계와 마찬가지로 정부도 예상되는 수입(세입)에 맞춰 지출(세출)계획을 짜는데, 내년도 경제에 대한 전망은 세입예산을 짜는 데 매우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이때 과장된 전망은 세입을 실제보다 크게 잡게 해 막상 예산을 집행할 시점이 닥쳤을 때 돈이 부족해 애초 계획을 이행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전망값과 실제값 간의 괴리가 일정한 한도에 머문다면 세계잉여금 등을 써서 어떻게든 감당이 가능하겠지만, 그 선을 넘으면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이 세입 및 세출 계산을 다시 할 수밖에 없다.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8년 가운데 무려 4번에 걸쳐 추경이 실행(그림2 참조)되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은 본래 극심한 경제침체나 전쟁 등이 발생할 때나 시행하는 ‘극약처방’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시행된 두 번(2013년과 2015년)의 추경은 잘못된 경제전망에 기인한 바가 매우 크다. 올해의 경우에도 총 11조6000억원에 이르는 추경액 중에서 절반가량(5조4000억원)이 세입경정, 즉 지나치게 낙관적인 경제성장률 예측 때문에 과다 추계된 세입액을 바로잡은 것이었다. 좀 더 장기적으로 보면, 1998년 이후 있었던 17번의 추경 중 기존 정부들에서 행해진 추경에서는 세입경정의 비중이 30%에도 못 미쳤던 데 반해 이번 정부가 시행한 두 번의 추경에서 세입경정 비중은 60.2%로 종전의 두 배를 넘고 있다. 올해 추경이 경제활성화를 위한 ‘메르스 추경’이라는 별칭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그림2>1998년 이후 추가경정예산안 시행내역
추경은 가급적 시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그것은 엄청난 행정력의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기에 매달려들어야 하고, 국회 심의도 통과해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국회의원들이 추경 심의과정을 자신의 지역구 예산을 추가적으로 따내는 제2의 기회쯤으로 여기기도 해 불필요한 경쟁을 야기한다. 중앙정부의 추경은 또한 각급 지방정부들에게 제2, 제3의 추경을 요구할 것이기에, 잘못된 경제전망이 낳을 행정력 낭비는 추경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정치적’ 목적에서 나오는 ‘창조적 전망’은 이제 거둬야정부의 과장된 경제전망이 그저 잘 해보겠다는 정책의지만 담고 있는 것이라면 그나마 좋게 봐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림1>에서 보듯이 각각의 전망값이 발표되었을 당시의 상황들을 돌이켜 보면, 우리 정부의 경제전망은 당시 귄력을 쥔 세력을 위한 ‘정치적 경제전망’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인 2008년, 당시 강만수 장관이 이끌던 새 정부의 경제팀은 안팎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른바 ‘747공약’)이던 ‘7%성장’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만으로 종전 전망치(4.8%) 발표 뒤 두 달가량 지난 다음에 다시 확 끌어올려 2008년 3월에 전년대비 6.0%의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일성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불과 4개월도 못 가 이를 4.7%로 낮춰야 했고, 이마저도 실제로 달성된 성장률(2.3%)보다 배 이상 높은 수치였다. 물론 리만브러더스 사태로 금융위기가 본격화된 게 2008년 하반기였으니 당시 정부로서도 할 말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징후는 이미 2007년 하반기부터 확실했다. 2008년 1월에 뒤늦게 나온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경제전망은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경각심이 부분적으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첫 해이자 세계경제위기가 시작된 2008년과 이 위기가 경제지표에 본격 반영된 2009년을 빼면, 경제성장률 전망값과 실제값 간의 격차가 가장 큰 해가 2012년(그림3 참조)이다. 제18대 대통령선거가 있던 이 해의 경제성장률은 2011년 6월 말에 4.7%로 처음 예측되었다. 당시 선진국발 금융위기 및 재정위기의 여파가 잦아들지 않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치솟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폭락의 상시적 가능성 등이 경제의 기반을 위협하고 있었음을 생각하면 굉장히 높은 성장전망치였다.
<그림3> 2012년 한국경제에 대한 성장률 전망값들과 실제 성장률
앞서의 예상치는 1년 뒤인 2012년 6월 3.3%로 떨어졌고, 이 수치는 10월에 다음 해 예산안이 제출될 때에도 정부의 ‘공식입장’으로 유지되었다. 한국은행이 10월 11일 기준금리를 내림(3%→2.75%)과 동시에 경제성장률 전망치도 종전(7월)의 3.0%에서 2.4%로 내렸는데도 정부는 12월19일의 대통령선거가 있을 때까지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나 위 그림에서 보듯이 2012년의 실제 성장률은 2%에 그쳐, 바로 2개월 전의 전망치보다 무려 40% 낮게 실현된다. 이러한 낙관적인 태도는 당연히 다음 해의 예산안 편성에도 영향을 미쳤고(참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53403.html), 결국 2013년 4월에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는 추경 편성에 나서야 했지만, 여기에 실질적인 책임을 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한편, 2014년의 경우엔 최초 성장률 전망값과 실현값 간의 차이가 비교적 적은 것이 눈에 띈다. 박근혜 정부가 좀 더 정직해졌거나 유능해진 것일까? 당시 사정을 조금만 돌이켜 보자. 2014년 3월, 우리나라 국민계정 통계를 내는 한국은행이 그 산출기준을 ‘2008 국민계정체계(SNA)’로 이행한다. 이에 따라 그간 비용으로 처리되었던 연구개발(R&D) 투자, 문화콘텐츠 축적과 무기 구매 등을 자산항목에 넣게 되는데, 그 결과 아래 (그림4)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제성장률이 대체로 얼마간 상승하는 효과가 난다.
<그림4> 국민계정체계 변경 등에 따른 실질GDP성장률값의 변화
기획재정부도 2014년 7월 경제전망에서부터 새로운 국민계정체계 기준을 적용해 발표한다. 2014년 정부 경제성장률 전망치 3.3%도 이 새로운 기준에 따라 산정된 것이다. 하지만 2013년에 나온 2014년 경제성장률의 최초 전망값들은 모두 과거의 기준에 입각해 산출된 것이었으므로, 이런 전망치들과 실현값(3.3%)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오히려 구 기준에 따른다면 2014년 경제성장률은 3.3%보다 낮았으리라고 우리는 짐작할 수 있고, 이 경우 최초의 전망치들과의 격차도 21.2%보다는 컸을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새로운 기준 하에서도 정부의 낙관적인 태도는 유지되었고, 이는 2015년 예산안을 낼 때까지 이어져 결과적으로 올해 이번 정부 들어 두 번째 추경을 시행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전망 주체의 공정성과 투명성이 전망의 정확도를 담보요컨대 현재 정부가 내놓는 경제전망은 관료적 낙관주의와 정권의 이해관계가 깊게 밴, 즉 경제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를 담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수치들로 채워졌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적어도 2000년대 초반부터 줄곧 국회와 언론에서 경제전망의 정확성을 문제삼아 왔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한 보고서에서 “경제에 대한 취약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들은 재정적 조정경로를 매우 쉽게 악화시키고 정부가 건전한 재정정책에 헌신하고 있다는 데 대한 시장의 믿음을 좀 먹는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링크:
http://www.oecd-ilibrary.org/governance/budgeting-practices-and-procedures-in-oecd-countries_9789264059696-en).
하지만 최근 추경편성 등에서 드러나듯 정부는 이러한 ‘쓴소리’를 좀처럼 수용하지 않는 듯하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누가’ 경제전망을 하느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 경제의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담고, 대내적으로는 각종 정부정책의 기초가 되는 정부의 공식 경제전망을 누가 하는 것이 적절할까? 현재 우리는 기획재정부가 이를 맡고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산업·금융·노동·복지 등에 이르는 모든 경제 관련 정책들을 총괄하고 조율하는 역할뿐 아니라 예산과 조세·재정까지 도맡은 명실상부한 ‘공룡 부처’다. 그래서 기획재정부의 장관은 부총리도 겸하면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경제 수장’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이러하기에 그는 정책총괄뿐 아니라 때때로 국민들에게 ‘희망’과 ‘비전’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기획재정부가 정확성과 책임성, 투명성을 핵심 덕목으로 하는 예산·결산 기능,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밑바탕을 이루는 경제전망 기능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적절치가 않다. 아무리 작은 친목모임에도 모임의 장과 별도로 금전출납을 담당하는 총무가 있지 않은가. 또한 경제전망이란 것은 어떤 면에선 정부의 경제정책의 성과를 평가한다는 성격도 있어서 그 정책의 주체가 이런 평가까지 한다는 것은 뭔가 맞지 않는 일이다. 실제로 OECD 회원국 가운데 5개국(독일, 덴마크, 일본, 스페인, 터키)에서 경제전망을 비재무부·비예산담당 부처에서 수행중이고, 다른 6개국(미국, 스위스, 벨기에, 칠레, 프랑스, 슬로베니아)에서는 행정부와 독립된 정부위원회에서 수행하며, 룩셈부르크·네덜란드·영국에서는 행정부·입법부 바깥의 별도 독립기구에서 수행한다. 캐나다의 경우에는 20개 주요은행들과 민간전망기관의 수치들을 평균해서 예산편성 등 경제정책 수립의 근간으로 삼고 있다. 여전히 OECD 회원국의 과반수(18개국)에서 경제전망을 예산당국이나 재무부가 수행하고 있지만, 대안적 방식을 채택하는 나라들이 2007년 이후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그림5 참조)
<그림5> OECD 나라들의 경제전망 산출주체 (출처: OECD (2014), Budgeting Practices and Procedures in OECD Countries, OECD Publishing, p. 104.)
물론 현재 법적으로는 독립기관인 한국은행조차 정부와 청와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는 데서 보듯이, 단순히 경제전망 산출주체만 바꾼다고 현재의 과장된 경제전망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꽤 명확히 드러나 있는 만큼 그 해결을 위해 필요한 노력은 최선을 다 해서 기울여야 한다.
최근 엘지(LG)경제연구원이 ‘낙관적 경제 전망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라는 보고서에서 지적하듯이, 정부를 포함해 경제전망을 수행하는 여러 기관들이 최근 세계경제에 닥치고 있는 구조변화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문제다. “국내외 경제의 구조적인 충격으로 성장 활력 자체가 떨어졌는데 이를 경기순환상의 문제 또는 일시적인 외부 충격에 따른 영향으로 생각”한 결과 경제전망이 낙관적으로 된다는 것이다(관련기사:
경제 전망은 왜 실제보다 낙관적일까). 우리의 경우엔 특히 이젠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어렵다는 걸 인정하고, 떨어진 잠재성장률을 반영해 경제전망 모형을 가다듬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현재 우리 경제가 처해 있는 상황을 ‘솔직하게’ 들여다보겠다는 정책의지를 갖는 것이다. 경제전망은 정부의 경제정책의 성과를 보여주는 성적표가 아닐 뿐더러 ‘앞으로 경제를 이렇게 만들겠다’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계획표도 아니다. 그것은 올바른 경제정책 시행을 위한 기초자료다. 따라서 경제전망의 첫 번째 덕목은 정확함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정부의 솔직한 자세가 필수적이다.
나아가 우리 정부는 이러한 솔직함을 다른 분야에서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정부는 가계부채, 비정규직, 고용, 주거상태, 소득 및 자산의 불평등, 과세현황 등 우리 경제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통계들을 수집하고 공개하는 데 매우 경직된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영어에서 ‘통계(statistics)’와 ‘국가(state)’의 어원이 같은 데서도 볼 수 있듯이, 통계(학)의 발달은 근대국가의 성장과 궤를 같이했고, 사실상 통계란 국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살펴봤듯이 통계에 대한 국가의 완고함과 경직성이 종종 해당 분야에서의 부적절한 정책으로, 심지어 정책 부재로 연결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고 보완하고자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자료요구를 해도 정부는 온갖 핑계를 대며 거부하기가 일쑤였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최근 한 칼럼에서 “통계란 결코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정치는 통계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이 글에서 강조한 것처럼 정치는 좋은 자료를 내는 데 커다란 위협요소이기도 하지만, 국민의 삶의 실상을 정직하게 바라보려는 좋은 정치만이 좋은 자료를 내놓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가 경제 실상을 정확하게 보여줄 때, 정치권도 국민을 위한 진정한 정책경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