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시민경제 • 민생 이슈 현장 전문가 칼럼
600여년 전 조선시대와 견줘, 오늘날 그 권한과 지위가 눈에 띄게 격상된 행정 부처가 있다. 바로 감사원이다. 조선시대 감사원과 가장 유사한 업무를 담당했던 사헌부의 수장 대사헌의 직급은 종2품(지금의 차관급). 당시에도 직급에 비해서는 폭넓은 권한을 가졌다고 하나, 차관급 감사위원만 7명에 감사원장이 부총리급인 지금의 감사원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갈수록 건강한 국가 시스템 구축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하루가 다르게 변화무쌍한 글로벌 경쟁 환경에 직면해 있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은 어떨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삼성·현대차·엘지(LG)·에스케이(SK)·롯데 등 국내 5대 그룹 64곳의 상장사가 공시한 사업보고서(2014년 말 기준)를 살펴본 결과, 일부 기업에서 이사회 특히 감사위원회 기능에 적잖은 문제가 발견됐다.감사 업무를 맡을 만한 경력이 전혀 없는 사외이사나, 전·현직 계열사 임원 등 최대주주와 현 경영진의 이해관계와 맞닿아 있는 이들이 버젓이 감사위원에 선임됐다. 기업의 재무 성과와 중장기 전략을 감시해야 할 감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하는 문제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 1월, 외부 감사인 선임과 회계 관계인 책임 강화를 골자로 하는 외감법(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이어 2000년 1월엔 자산 2조원 이상 대형 상장법인을 대상으로 감사위원회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상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전·현직 계열사 임직원을 감사로 선임한 기업은, 크레듀(삼성), 유비케어·아이리버(에스케이),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칠성·롯데푸드·롯데손보·현대정보기술(롯데) 등 10여곳이다. 특히 롯데그룹은 전·현직 감사 선임 사례가 가장 많았고, 감사가 사외이사를 겸임하는 경우도 있었다.감사위원회 기능에 문제가 야기돼 향후 책임성이 염려되는 기업도 있다. 삼성그룹 내 에스원과 에스케이그룹의 에스케이케미칼은 감사 가운데 회계 또는 재무 전문가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 기업의 경우, 최근 대우조선해양 분식 회계 사건을 계기로 도마 위에 오른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임무를 게을리 한 경우 회사 및 제3자(주주 등)에 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상법 규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가와 기업의 지배구조를 동일선상에 놓고, 직접 비교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 기업의 경우 경영권과 소액주주 보호 등 입장차가 첨예한 쟁점들이 많아 제도 정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새로운 법 제정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에 앞서, 기존에 제정된 관련법의 취지와 의도에 부합하는 기업들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한 때다.서재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CSR팀장 jkse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