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국 지원 사업에 주민은 소외된 전통 반성
사회적기업 등 주민에게 선택권 주는 방식 등장
‘좋은 일’에 그치지 말고 의미있는 변화 만들어야
지난 2015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 국제개발협력민간시민사회포럼 등 7개 시민·아동구호단체 회원들이 빈곤국가들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지원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인천/ 김봉규기자 bong9@hani.co.kr
지난 2015 열린 세계교육포럼에서 국제개발협력민간시민사회포럼 등 7개 시민·아동구호단체 회원들이 빈곤국가들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지원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인천/ 김봉규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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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개발국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가장 손쉽게 나오는 대답은 “학교를 짓자”다. 아동·청소년을 위한 학교는 물론, 직업학교도 세워진다. 교실 증축, 교사 연수, 학부모 인식개선 지원 등이 대표적인데, 직업학교의 경우 한국산 기자재를 배치하고, 한국인 강사가 파견된다. 후원자와 기관은 이 사업을 ‘성공’으로 기억한다. 교실 당 학생 수가 70명에서 50명으로 줄어들고, 학비 부담이 없어 대부분의 입학생이 졸업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학교를 졸업한 A, B, C라는 잠비아 아동의 그 ‘다음’을 보자. 한국이 세운 직업학교에서 한국 자동차정비를 배운 A는 정비소에 취직하지만 정작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일본차가 대부분이라 A는 쫓겨나고 말았다. B는 제봉을 전공했지만 제봉틀을 살 돈이 없어 실업자 대열에 합류했다. C는 전기기술이 유망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공부했지만 취업에 실패했다. C는 여성인데, 전기 분야는 남성만 고용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단순화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흔한 사례다. 비단 한국 원조만의 문제도 아니다. 프로젝트는 성공했고 지표는 나아졌는데 왜 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못한 것일까?

현장 활동가와 전문가들은 이것이 국제개발사업에 뿌리깊은 ‘돈 주는 사람 마음대로’ 전통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또, 사회문제는 빈곤과 성차별,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맥락 속에서 나타나는 것인데도 수행하고 측정하기 쉬운 프로젝트 단위로 쪼개 접근하기 때문이다. 여자아이가 교육받지 못하고 있으니 학교를 짓는다는 식인데, 이렇게 접근하면 글머리에 언급한 사례처럼 남을 확률이 크다. 여자아이가 교육받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학교가 없어서가 아니라 마을에 만연한 성적 착취나 차별 때문이라 학교에 가도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학교를 졸업한다해도 일할 곳이 없다는 점 등을 살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삶을 바꾸지 못한 ‘성공한 개발 프로젝트’는 이렇게 탄생한다.

현장 활동가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이 개발협력 과정에 참여하고, 사람들의 삶이 정말 나아졌는지를 보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다행히, 개발협력 방식의 혁신이 속속 시작되고 있다. 사업을 기획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 주민 참여를 확대하고, 실제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임팩트’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 흐름이 거세지며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가 주목을 받고 있다. 사회적기업은 주민들이 해당 서비스나 제품을 선택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현지 주민이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통해 효과성을 입증해야 국제기구나 정부, 기업으로부터 투자나 지원을 받는다. 주민이 외면하면? 당연히 사장된다.

최근 성과를 인정받고 국제무대에서 주목받는 몇 개 사회적기업이 있다. 먼저 ‘어스인에이블’(Earth Enable)이다. 아프리카 일반 가정집의 바닥이 흙인 경우가 많은데, 기생충이나 흙가루로 기관지염을 유발하는 등 건강 문제를 일으킨다. 좋은 자재로 집을 만들기도 어렵고, 의료 환경도 낙후된 곳의 경우 주민을 돕기로 한 이들은 흙을 충분히 다지고, 그 위에 특수 코팅을 입히는 방식을 찾았다. 시공 가격을 대폭 낮춰 주민들 반응도 좋을 뿐 아니라, 현지 청년에게 공법을 가르쳐 인부로 고용해 일자리도 만든다.

‘스파우츠’(Spouts)라는 사회적기업은 우간다에서 나는 흙과 톱밥으로 도기정수기를 만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수질검증을 받은 정수기를 23달러에 보급한다. 이 정수기 덕분에 몇 킬로미터 거리의 우물에 물을 뜨러 다니던 아이들은 학교에 갈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생겼다. 물을 끓이느라 매번 사는 땔감이 가계 수입의 20%를 차지할 정도였는데, 여기서도 해방돼 소득이 늘어난 셈이 됐다. 더러운 물로 인한 설사병이 우간다 어린이의 3대 사망원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 아이디어의 가치는 더욱 크다. 필요한 사람에게 보급되도록 하기 위해 장기 할부, 현물교환 방식도 허용한다.

지난 9월, 미국 정부의 해외원조기관인 미국국제개발처(USAID)가 주최하는 글로벌이노베이션위크(Global Innovation Week)에서 가장 주목받은 것도 위 두 사례를 포함한 사회적기업이었다. 단순히 새로워서라거나, 무조건적인 지원이 아니라서가 아니라, 실제 삶의 변화와 주민 참여라는 개발협력의 숙원을 해결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두 굿, 두 잇 웰”(Do good, do it well)이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일을 하되, 잘 하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좋은 일을 한다는 것 자체에만 너무 방점을 둔 것은 아닐까. 내가 좋은 일을 한다는 만족감 안에 머물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어떻게 더 좋아지게 할 수 있는지, 하나의 프로젝트를 넘어 실제적 사회 변화, 즉 ‘임팩트’를 만들 방법을 고민할 때다.

김윤정 아쇼카 글로벌본부 기획팀 디렉터 gkim@ashok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