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시민경제 • 민생 이슈 현장 전문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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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예전에 대저택에 살며 다른 학문들을 호령했던 사회학이 지금은 월세 단칸방도 구하지 못해 전전하는 신세다.”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가 2012년 어느 자리에서 내뱉은 탄식이다.

대규모 양적완화에 이어 마이너스 금리정책까지 등장했다. 기존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이른바 ‘비전통적’ 수단들이 등장하고 있는 요즘, 사회학이 그랬듯 경제학자들도 망연자실한 채 직업적 상실감에 빠져들고 있는 건 아닐까? 다른 경제학자들로부터 시기와 질투를 한몸에 받았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수십년 전 “경제학은 (단지) 경제학자들을 먹여살리는 수단으로는 무척 유용하다”고 비꼬았다. 대공황 이래 전례없는 위기 속에 경제학자들은 지금 갤브레이스의 말을 심각한 표정으로 곱씹고 있는지 모른다.

경제학자와 경제관료를 위시해 ‘경제전문가’로 불려온 이들은 경제·사회에 대해 발언하고 예측하는 명예로운(?) 특권을 부여받아 왔다. 번영을 구가하고 파멸을 피하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마치 사실처럼 설파하고 충고할 지위를 누려왔다. 우리를 풍요의 문턱으로 데려가는 과업을 넘어, 삶을 지배하는 감독자 지위까지 오른 셈이다.

경제학자들의 자만심은 1970년대에 절정에 달했다. 당시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고안해낸 매끈하고 깔끔한 마법의 수리방정식 모형 덕분에 자본주의를 주기적으로 괴롭혀온 경기순환은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합창했다. 경제학자들끼리의 회합에서 폴 새뮤얼슨은 “공황과 경기순환을 주창하는 이론가들은 이제 직업을 잃게 될 것”이라고 호기를 부렸다. 경제전문가들의 무모한 자만심은 2000년대에도 계속 출몰했다. 빈발하는 경제위기와 공황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태는 돌변했다. 그 자만심이 허세로 판명되고 큰 상처가 그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2008년 금융위기는 그 절정이었다.

오랫동안 ‘사회과학 여왕’의 특권을 자임해온 경제전문가들의 어깨를 잔뜩 위축시키고 있는 지금의 전지구적 경제위기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물론 난공불락의 자유시장 요새를 구축해온 경제학의 실패로 단정할 수도, 경제전문가들의 책임만으로 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온갖 통화·재정정책에도 불구하고 위기에서 좀체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소득불평등을 낳는 사회경제적 구조가 위기의 견고한 뿌리’라는 진단에 점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전문가들이 온통 생산과 성장만을 부르짖는 동안 경제 문제에서 불평등은 의미를 잃어갔다. 성장에 힘입어 평등이 승리한 것이 아니다. ‘가려졌을 뿐 날로 악화하는’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격렬한 대응과 차분한 논쟁의 목소리는 경제전문가들에게 매우 빈곤했다.

무릇 지식인은 기존 통념에 대한 저항과 도전, 거부를 소명으로 삼는다. 제도와 정책, 그리고 시장의 힘이 각 계층과 집단에 차별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고발하는 게 본업이다. 산뜻한 경제분석모형을 앞세운, 공상과학소설에 가까운 예측은 예언가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경제학자들이 (종합 일반의사가 아니라) 치과의사만큼이나 겸손하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kyewan@hani.co.kr



등록: 2016-02-25 19:02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3210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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