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청와대 본관 충무실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정책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28일 국회를 통과한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법안의 후폭풍이 거세다. 일정 수준을 넘는 상여금과 수당(식대, 교통비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할 수 있게 하는 이 법안에 대해 노동계를 중심으로 격렬한 반대 움직임이 일고 있는 가운데, 여기에 찬성하는 이들(이하 ‘찬성파’)이 내놓는 주장이 흥미를 끈다.
찬성파에 따르면 이번 산입범위 확대 법안은 크게 두 가지 ‘미덕’을 지닌다. 첫째, 이 개정 법안은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비정상적인 임금체계(최소 수준의 기본급에 상당액의 상여금과 수당이 얹혀 있는 형태)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자가 되어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가하는 것을 방지한다. 이법 법안이 사실상 ‘임금삭감’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은 바로 이런 ‘미덕’을 겨냥한 것이다. 그것은 노동자를 희생한 ‘기업 봐주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찬성파들 사이에서도 이번 법안에 의해 차상위 노동자들의 임금이 다소 희생되리라는 점은 인정되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희생을 통해 가장 처지가 어려운 기층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에 더 속도를 낼 수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감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찬성파의 두 번째 ‘미덕’
이것이 바로 찬성파가 꼽는 이번 법안의 두 번째 ‘미덕’이다. 즉 이 법안 덕분에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줄어 최저임금을 올리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해질 것이며, 상여금이나 기타 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저임금 노동자는 이번 산입범위 확대조치로 인해 어떠한 손해도 입지 않고 그러한 인상 효과를 100퍼센트 누릴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면, 산입범위 확대조치로 최저임금 인상이 수월해지리라는 주장은 논리적으로나 정황적으로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 왜 그런가? 편의상 우리나라 경제를 대기업·중기업·영세기업 등 세 부문으로 나누어보자. 대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는 안정된 고용조건과 높은 임금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최저임금과는 거의 무관하다. 중기업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조금 넘는 기본급과 평균 수준의 상여금 및 수당을 받는다고 하자. 이번 법안을 통해 피해를 보는 노동자들은 대체로 이 집단에 속할 것이다. 끝으로, 대부분의 자영업을 포함하는 영세기업 부문에는 노동자들이 최저 수준의 임금만을 받고 고용되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임금은 매년 최저임금과 같은 비율로 오를 것이며, 이들 중 일부는 경우에 따라 소액의 교통비나 식대를 받기도 할 것이다.
이제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된 지난 30년을 돌이켜보자. 그리고 매년 최저임금 결정에서 가장 극렬한 반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떠올려보자. 어디인가? 바로 최저임금 수준의 노동자를 주로 고용한 영세기업들로부터 나왔다. 그러므로 최저임금 인상이 수월해진다는 것은 다름 아닌 이들의 저항이 약해진다는 것일 수밖에 없는데, 이번 산입범위 확대조치 때문에 영세기업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덜 저항해야 할 까닭을 나는 찾지 못하겠다. 더구나 이 법안으로써 이득을 본 것은 중기업들인데 말이다.
혹시 찬성파, 특히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장본인 중 몇몇 사람이 말하는 ‘수월한 인상’이라는 게, 중기업 노동자의 희생이 우리의 ‘국민 정서’를 최저임금 인상에 호의적인 쪽으로 이끌리라는 뜻인가? 그러나 이거야말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생각이다. 정작 자신들은 온갖 무리수를 둬가며 상대적으로 여건이 나은 중기업의 사정까지 봐줬으면서, 국민에게는 그 중기업보다 사정이 한참 안 좋은 영세기업에 모질게 대하리라고 기대하는 셈이니 말이다. 오히려 ‘산입범위 확대’를 통해 중기업에 ‘특혜’를 베푼 셈이니, 이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을 통해 영세기업에도 혜택을 나눠주자는 게 논리적 일관성이 있는 주장 아닌가? 지난달 27일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속도 조절론’ 발언을 단순한 ‘돌출성’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게 그래서다.
‘소득주도성장’을 포기한 게 아니라면...
올해 들어 실현되고 있는 저조한 고용실적과 소득 격차의 유례없는 확대가 보여주듯, 최저임금을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속도로 인상해 나가는 게 녹록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하지만 애초 그것은 쉬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최저임금을 올려 헬조선을 바꿔보자는 생각을 가진 정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우리는 한겨울 내내 촛불을 들어야 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이란 단순히 임금을 올리자는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경제의 체질 자체를 바꿔야만 경제의 성장도 안정적이고 건전해진다는 시각이다. 따라서 지금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체질 전환에 따른 불가피한 ‘진통’을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경로를 수정할 게 아니라, 오히려 예정대로 최저임금이 인상될 수 있도록 여러 보조장치를 마련해 나가는 게 올바른 길이다.
이 보조장치에는 크게 두 가지가 들어간다. 첫째,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시장에서 밀려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기업이나 노동자에 대한 보호책이다. 1분기의 소득 격차 확대의 배후엔 노인들이 노동시장과 자영업에서 밀려났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것은 ‘부작용’이기보다는, 그간 우리 사회가 노인들에게 강요한 삶이 어떤 종류였는가 하는 ‘불편한 진실’이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드러난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즉 노년층에 대한 복지확충을 더 미룰 수 없다는 뜻이다.
둘째, 영세기업들이 자기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에서 누구보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주는 게 중요한데, 문제는 이들을 직접 고용한 업체들 또한 영세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위계화된 경제에서는 영세기업들의 임금지급 여력을 압박하는 주요인이 높은 임대료, 원청의 납품가 ‘후려치기’, 프랜차이즈 본사의 다양한 ‘갑질’ 등임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바로 이런 불공정한 거래 관행만 없애도 최저임금 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수월해질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