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시민경제 • 민생 이슈 현장 전문가 칼럼
HERI 기고
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협동조합·사회적기업·비영리 조직·유한회사 등
‘연대’, ‘박애' 정신으로 진보·보수 망라하는 ‘제3섹터’”

“복잡한 주거문제 해소 위해 다양한 풀뿌리 조직 참여
다양한 사회변화와 주거수요에 대처하는 유리한 지형”

2017년 제1회 세계사회주택축제(International social housing festival)에 전세계의 사회주택 공급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출처: https://www.hetschip.nl/socialhousingfestival
2017년 제1회 세계사회주택축제(International social housing festival)에 전세계의 사회주택 공급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출처: https://www.hetschip.nl/socialhousingfestival

공유주택, 청년주택, 셰어하우스, 사회주택…. 최근 자주 등장하는 다양한 주택의 이름들이다. 실생활에서 혼용하는 경우도 많다. ‘공유주택’과 ‘셰어하우스’는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공동 소유 보다는 공동 사용에 방점이 찍혀있다. 외부 복도나 계단실 정도만 같이 쓰는 기존의 ‘공동주택’과는 달리, 거실이나 주방 등 실내 공간을 같이 공유하고 개별 침실만 따로 쓴다. 이것이 건축 유형에 따른 명명이라면, ‘청년주택’은 대상집단에 따른 분류다.

공기업과 민간기업 뿐만 아니라 ‘제3섹터’가 공급하는 주택을 해외 복지국가들에서는 대개 소셜하우징, 즉 사회주택이라고 부른다. 이는 공급주체의 성격과 사회적 역할에 따른 분류라고 할 수 있다. 공기업 외에도 다양한 비영리 조직이나 유한회사, 협동조합 등이 생태계를 구성한다.

네덜란드는 사회주택 비중이 30% 정도로, 세계 1위이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과 유사한 ‘보닝코포라시’라는 조직들 약 250개가 240만여호의 주택을 관리한다. 암스테르담은 ‘암스테르담주택협회연맹’을 구성하는 9개 조직들이 전체 주택의 42%를 담당하는데, 조직별로 특색이 있다. ‘로쉬데일’은 동명의 영국의 협동조합 운동의 영향을 받은 한 세기가 넘는 전통을 자랑한다. ‘하비온’은 고령자 주택에, ‘뒤보’는 대학과의 협의를 통한 학생주택 공급에 전문성을 보인다. 19세기 이후 산업화, 도시화의 과정에서 도심의 주거환경이 열악해지자, 풀뿌리의 진보적 흐름과 보수적 흐름이 각각 ‘연대’와 ‘박애’의 정신에 따라 주택문제 해결에 나선 전통에 따른 것이다. 최근에는 전문성 보완과 규모의 경제 달성을 위해 통합된 경우들도 있는데, ‘스타흐노트’같은 경우는 카톨릭 계열의 보수와 사민주의 계열의 진보가 합쳐진 경우다.

오스트리아는 이런 조직들이 185개다. 기업형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와는 달리, 협동조합 형태도 53%를 차지하며 대도시의 경우는 공기업도 있다. ‘살기 좋은 도시’에서 세계1위로 자주 꼽히는 수도 비엔나는 암스테르담보다 사회주택의 비중이 더 크다. 뒤이어 사회주택이 3번째로 많은 덴마크도 공급조직은 다양하다. 약 530개의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유한이익회사 등이 활동한다. 여기도 KAB라는 조직은 종교기반의 보수와 이념기반의 진보가 통합된 경우다.

다양한 조직별로 장단점도 다양하다. 협동조합의 거버넌스 체계는 1주1표가 아니라 1인1표다. 내부 민주주의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투자를 유치하거나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기엔 어려울 수 있다. 또한 풀뿌리 밀착성과의 동전의 양면으로, 조합 외부에 대한 배타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 협동조합형 중심의 스웨덴의 경우 최근 탄력적인 공급이 어려웠고, 앞서 세 나라와는 달리 외곽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난 것도 어쩌면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네덜란드는 1901년 주택법 제정 당시, ‘협동조합형’ 보다는 ‘임대사업형’ 기업 중심 모델을 채택했다. 공공재정 투입의 정당성을 ‘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들도 혜택을 보는 것’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공급조직들이 거대화되며 여러 가지 부작용이 발생하자, 입주자들의 활동을 의무적으로 지원하도록 하고, 이들이 원할 경우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건물 소유권을 입주자협동조합에게 넘길 수 있게 하는 개혁조치를 도입했다. 그런 네덜란드도 20년만의 주택가격 급등에 최근 직면했다. 전문가들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수요이동 및 코로나 대응으로 유동성이 풀린 외부충격과, 이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공급부족이 복합된 결과로 풀이하고 있다.

공급조직별로 다른 색으로 표시된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현황. 제공: 암스테르담주택협회연맹
공급조직별로 다른 색으로 표시된 암스테르담 사회주택 현황. 제공: 암스테르담주택협회연맹

한국이 유럽식 복지국가의 모델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의 공기업 중심 모델 중 하나만을 굳이 추종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엔 공급생태계 역시 다양한 것이 유리할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 사회주택 사업이 추진되자 고시원을 리모델링하여 셰어하우스로 공급하거나, 장애인도 어울려 살 수 있도록 유니버설디자인을 주택에 도입하거나, 창업공간과 전시공간을 주택과 연계하는 등 다양한 취지에서 여러 시도를 하는 조직들이 생겨나거나 성장하고 있다. 입주자 전용 앱을 통한 물품 공유나 인근 주민과 함께하는 공유차량 서비스 등 다양한 아이디어도 쏟아졌다. 복합용도 건물을 넘어 주거서비스와 같은 소프트웨어를 하드웨어와 결합하는 실험들은 프롭테크(proptech·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 등 혁신의 토대가 되기도 한다. 수요맞춤형 기획과 운영으로 공실률이 낮은 것은 공공재정의 효율적 집행에도 큰 몫을 한다. 입주민들의 지역사회 봉사나 커뮤니티 공간의 나눔은 사회통합의 관점에도 도시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씨앗이자 열매들이다. 모두 공기업 혼자서는 이루기 힘들었을 성취들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 본격 도입된 공공주택은 개인의 브랜드가 아니었고,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려던 노력은 그가 감옥을 갔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았다. 사회주택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이나 시장이 누구든, 사회가 발전할수록 제3섹터가 성장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 덜했다면 향약이나 두레와 같은 전통적인 제3섹터가 한국식 사회주택을 공급해왔을지도 모른다. 더구나 우린 최근 ‘LH사태’를 목격했다. 공기업이 토지주택분야에서 큰 사회적 물의를 빚은 이 사건은 직후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당선된 시장이 갑자기 ‘공기업 만능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사회의 발전방향에 대한 논의 이전부터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작년의 서울시 사회주택 입주자 만족도 조사에서 지속거주의향과 타인추천의향의 비율은 각각 68.1%, 75.4%로 나타났다. 외국 사례나 지난 6년간 서울시가 선도한 실험에서 드러난 일부 시행착오는 바로잡되, 공공정책에 풀뿌리의 자발성과 민간의 창의성을 결합하는 것은 시대적 과제다. 더 많은 표정이 더 나은 세상이다.

20210917501755.jpg최경호 주거중립성연구소 수처작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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