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시민경제 • 민생 이슈 현장 전문가 칼럼

생협 공제의 안전성과 사회적 가치

HERI 2021. 10. 18
조회수 1298
<생협 공제, 전문가 연속기고>
②김형미 상지대 교수(사회적경제)

일본 생협이 운영중인 코프(CO·OP)공제 누리집(https://coopkyosai.coop)
일본 생협이 운영중인 코프(CO·OP)공제 누리집(https://coopkyosai.coop)

2010년 9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이 전부 개정돼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조합원이 이용하는 공제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난 10월 현재 생협공제 시행에 필요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도적 조처가 이뤄지지 않아 생협공제는 시작도 못 하고 있다.

강산이 변하는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2010년에서 2020년 사이 지역 기반 4대 생협연합회(두레생협, 아이쿱, 한살림, 행복중심생협)는 조합원 43만명, 출자금 406억원, 공급액 5416억원에서 조합원 130만명, 출자금 2100억원, 공급액 1조3100억원으로 성장했다. 생협은 양적 성장 외에도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 사회적경제의 든든한 소비자로서, 지역사회 자원봉사 및 시민 활동 촉진자로서, 없어서는 안될 사회적 자산으로 기여하고 있다. 생협의 식품 안전 관리능력 및 사업 운영실력은 그 어느 유기농 전문판매업체보다 신뢰를 받고 있다.

생협 조합원, 10년 만에 43만명에서 130만명으로 증가

한국 생협은 생협공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 안전한 식품 공급에서 시작된 조합원의 요구는 더 나아가 생활 속 작은 위험 대비, 건강 활동 및 질병예방, 다양한 활동 지원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조합원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호부조 시스템을 그물망처럼 만들자는 바람이 눈뭉치처럼 커지고 있다. 협동조합의 모태가 공제임을 조합원들은 학습과 경험을 통해 느끼고 있다. 공제는 상호부조를 위해 회원들이 출자금을 내고 자치 원리에 기반해서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생협의 운영 원리와 다르지 않다. 조합원 맞춤형 공제를 스스로 운영해 보겠다는 욕구가 그동안 생협의 사업운영 역량과 경험에서 생겨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기존 보험과 경쟁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현재 없는 보장상품을 생협공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생협이 1980년대에 코프(CO·OP)공제를 시작할 때 조합원들이 원했던 것은 어린이와 주부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공제였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다쳤을 때, 어쩌다 이웃집 유리창을 깨뜨렸을 때, 가사 일이나 생협 활동 중에 다쳤을 때 치료비나 입원비를 보장해주는 보험은 없었다. 이에 코프공제는 매월 900엔씩 납부하면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통원치료 및 입원보장, 사망 위로, 배상책임을 커버하는 어린이공제를 설계했고, 매년 운용 결과에 따라 잉여가 생기면 조합원의 공제납부금을 대의원총회의 승인을 받아 조합원에게 환원했다. 필자가 일본 체류 중 2010년에 환급받았던 공제 환원율은 약 19% 정도였다. 공제금 신청 절차나 지급방법도 간단해 생협 매장이나 공급 직원에게 신청서를 받아 작성해 영수증을 제출하면 일주일 이내에 본인 계좌로 입금되는 식이다.

조합원을 찾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본의 생협공제

바로 이러한 점이 생협공제와 보험의 큰 차이일 것이다. 보험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만일에 일어날 위험에 대비하는 보장 시스템이라면 생협공제는 조합원들이 생활상의 위험에 대비하는 상부상조를 생협 안에서 운영하는 것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운영되는 보험은 일반적으로 위험차익(사망률을 과대 설정하여 보험계약금은 높이고 보험 지불금을 낮추는 방식)을 높여 운영한다. 또한, 보험계약자가 보험회사의 주인도 아니고, 보험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어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기 쉽다. 생협공제는 다르다. 조합원이 주인인 협동조합에서 조합원들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대표들이 공제사업의 중요한 사안을 결정한다. 위험차익을 남기는 것보다 조합원에게 더 많은 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이러한 소유 구조, 거버넌스의 특징으로 생협공제에는 공제 계약자와 생협 사이에서 정보의 비대칭성, 역선택, 도덕적 해이가 작용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필자가 일본에 체류할 때 경험했던 생협공제 임직원의 자세는 생협공제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재해 발생 시, 조합원의 청구를 기다리지 않고, 조합원 가정을 일일이 방문하여 피해를 조사하고 신속하게 보상금을 지불하였다. 생협 매장에서는 물론 생협 물품을 가정에 공급하는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잊어버린 공제 청구 건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지난해 일어난 건이라도 올해 청구할 수 있다고 알렸다. 조합원 중심의 적극적인 청구·지불 활동은 보험회사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어린이공제 계약 넘버원. 공제 조합원 910만명. 2021년 일본 생협공제의 모습이다.

더 나은 규제환경 설계 위해서라도 생협 공제 필요

이러한 규모를 바라지 않더라도 한국의 생협공제가 조합원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공제사업을 제대로 운영 못 할 이유가 없다. 스페인에서 7만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연간 120억유로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창립자 호세 마리아 신부는 “협동조합보다 협동조합인들이 더 결정적이고, 민주주의보다 민주주의자들이 더 결정적”이라는 말을 남겼다. 한국 생협은 친환경 유기농산물 사업을 궤도에 올리며 우리사회에 윤리적 소비 시장을 형성하고 조합 민주주의의 역량을 축적해왔다. 이들 ‘조합원 대표들’의 운영 역량을 공정거래위원회는 무시하지 말길 바란다. 생협공제가 실행되어야 제도적인 보완을 하면서 더 나은 규제환경도 설계할 수 있다. 1999년 생협법이 시행될 때 당시 한국 생협의 모습은 얼마나 보잘 것 없었나? 그렇다고 당시 생협법을 시행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한국 생협의 현재도 없었다.

김형미 상지대 교수(사회적경제)
김형미 상지대 교수(사회적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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