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사회 안전망에도 사각지대는 존재하고, 민간보험은 제약이 많다. 그 간격을 메울 수 있는 대안으로 공제가 꼽힌다. 지난 2010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생협법) 개정 이후 생협도 공제사업을 할 수 있게 길이 열렸지만, 지난 12년 동안 시행규칙과 감독기준안이 마련되지 않아 실제 사업은 표류해왔다. 공제는 큰 일이 닥쳤을 때 무거운 부담을 혼자 지지 않고 여러 사람과 공동 부담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협동 방식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생협 공제의 현실과 가능성을 짚어보는 전문가 기고를 네 차례에 걸쳐 싣는다.

사진 언스플래쉬 제공
살면서 보험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생애주기를 통해 보자면 태아보험이 일반화된 지 오래다. 출산한 아이가 크면 어린이보험에 가입한다. 혹시나 큰 병에라도 걸릴까 싶어 각종 암보험과 실손보험, 자동차 운행에 따른 의무보험도 들기 마련이다. 소득보장과 목돈마련을 위한 개인연금과 저축보험, 부모님을 위한 치매, 간병보험 등 바야흐로 보험과잉시대다.
실제로 금융소비자연맹이 시행한 ‘가계 보험가입 적정성에 대한 비교조사’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가구는 평균 11.8개의 보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매달 103만4000원을 보험료로 지출한다. 전체 가구당 보험가입률은 2012년(96.1%)부터 꾸준히 증가 추세이다.
민간보험, 가입 10년 지나면 20%만 남아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의 위험을 보험으로 대비하려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현재의 보험 시스템에 대해 사람들이 만족하는 것 같지는 않다. 자발적인 동기(18.2%)보다는 주변인의 권유(61%)로 가입하는 점도 이유가 될 것이다. 보험을 중도해약하는 경우도 많다. 위 설문에서 조사 가구는 연평균 1.6개의 보험을, 또 4가구당 1가구(26.5%)는 최근 5년 이내에 보험을 중도에 해약했다고 한다. 보험료 부담, 더 좋은 상품, 목돈의 필요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4개 생명보험사 보험의 2년 유지율은 평균 61.3%로 10년이 지나는 시점에서는 대략 20% 수준으로 떨어진다고 한다. 필요 때문에 적지 않은 보험료를 지급하며 보험에 가입했지만, 만족하는 보장은 20%에 그치는 것이다. 금융 관련 민원에서 단연 1위가 보험이라는 사실도 소비자의 불만족을 보여준다.
사회적 위험을 보험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다층적으로 이루어진다. 소득안정, 질병, 실업 등을 해결하기 위한 사회보험과 기업의 퇴직연금, 개인의 각종 민간보험이 그것이다. 끊임없이 민간보험 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보장영역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런 필요와 요구를 상호성을 기반으로 한 경제조직에서 ‘공제’의 형식으로 제공한다면 어떨까?
낮은 공제료에 높은 지급률의 이유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공동의 경제, 사회, 문화적 요구를 해결한다. 오래된 상부상조의 방식이 기업의 형태로 제도화된 것이다. 특히 한국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은 30년의 세월 속에 조합원들의 신뢰를 쌓았고 탄탄하게 성장해왔다. 시작은 친환경농산물 직거래를 통한 구매조합 형태였으며, 조합원들은 이제 상조의 전통을 실현할 수 있는 공제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생협공제를 바라는 조합원들의 생각은 명확하다. 생협공제가 소비자(조합원)들에게 훨씬 이익이라는 것이다. 합리적이고 투명한 운영에 대한 신뢰가 그 바탕이다. 생협공제는 통상의 보험상품에 포함된 사업비를 절감하여 공제료는 낮게 설정하고, 높은 공제지급률로 실질적인 위험 보장이 가능하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오랜 기간 상호성을 실현한 특정한 구성원들이 공동의 위험에 대처하므로 역선택 가능성은 낮고, 가입자들의 도덕적 해이도 적다.
운영상의 이점 외에 일반시장에서 다루지 않는 공제상품에 대한 기대도 있다. 이미 큰 병을 앓고 있어 건강한 식재료를 이용하고자 생협을 찾는 사람들, 또 한편에는 오랜 기간 생협을 이용하며 건강관리로 병을 예방하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집단처럼 보이지만, 모두 현재의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에서 이야기하는 치료·건강에 대한 보장과는 다른 요구가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생협 조합원들은 조합비로 출산 선물, 사망 위로금 지급 등 다양한 상조를 한다. 생협공제는 조합원끼리 단순히 경조사를 챙기는 것을 넘어 생활의 필요를 위한 공제상품을 개발하고 누리려는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 대비 위한 안전망
알 수 없는 미래를 공동으로 대비하는 방식을 국가 주도 혹은 개인의 구매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적합한 다양한 공제를 상상하고 실현하는 것이 삶의 안전망 구축을 위해 더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는 이미 많은 공제가 있다. 여러 사회적경제 조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시민활동가 단체에서는 이전에 없던 공제 방식을 고안하고 실행한다. 생협에서도 조합원들과 함께 새로운 공제제도를 시행하려 한다. 2010년 개정된 법을 바탕으로, 이제 행정의 지원을 받아 새로운 상상이 실현될 수 있게 움직일 때다.
김정희 아이쿱생협연합회 회장

김정희 아이쿱생협연합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