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시민경제 • 민생 이슈 현장 전문가 칼럼

영구임대주민 생활 실태 전수조사 토대로
‘광산형 의료혁신 모형’ 제시돼 눈길 끌어
의료·돌봄·주거·일자리 문제 통합 해법

정부,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 16곳 시행 중
지자체 의지 높고 지역 자원 풍부한 곳 한정
보편적 서비스 시행 위해 법·제도 개편 시급

지난해 12월 23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대회의실에서 ‘광산형 복지혁신 포럼’이 열려 참석자들이 영구임대주택 아파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의료혁신 모형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광산구청 제공
지난해 12월 23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청 대회의실에서 ‘광산형 복지혁신 포럼’이 열려 참석자들이 영구임대주택 아파트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한 의료혁신 모형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광산구청 제공

지난해 12월 23일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광산형 의료혁신 모형’을 담은 영구임대주택 아파트 실태조사 보고대회가 열렸다. 광산형 의료혁신 모형이란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광산구 공무원 146명이 우산동의 2개 영구임대아파트 2263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생활 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토대로 전문가와 함께 마련한 통합돌봄 모형이다. 이날 보고대회에선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지역주민들이 참여해 아파트 의료·돌봄·주거·일자리 문제를 함께 푸는 해법을 제시했다. 광산형 의료혁신 모형은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체계를 연계 통합체계로 전환한다는 ‘커뮤니티케어’(지역통합돌봄)의 취지를 살린 의료혁신을 잘 담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고령화 추세 속에 빈곤한 노인가구가 양산되고 있으며, 안타깝게도 고독사와 노인자살이 일상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다. 노인가구 중 빈곤율 역시 40%를 넘어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세 가지 이상의 질병을 앓고 있는 노인 비율이 44%에 이르고, 장애를 가지고 허약체질(노쇠)인 노인 비율도 17~18% 정도다. 건강 불평등도 악화하고 있다. 질병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건강 나이의 경우 소득 하위 20%와 상위 20%의 격차가 11.3년에 이른다. 빈곤과 노인자살은 이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므로, 소득이 낮은 노인가구일수록 생애 마지막을 자살로 마무리할 가능성이 크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의료, 돌봄, 주거, 복지 등 더욱 다양한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작 자기가 살아온 지역에서 의료와 각종 사회서비스를 받기는 어렵다. 기존의 사회서비스가 대개 분절돼 있고 연계 혹은 통합돼 있지 않은 탓에, 각종 사회서비스를 받아보려 해도 전체 서비스에 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제공해주는 곳이 없다. 결국 가족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필요한 서비스를 일일이 찾아야 하는 형편이다 보니 어려움이 말이 아니다. 대부분 맞벌이 부부인 까닭에 부모가 아프더라도 집에서 병시중을 들기도 쉽지 않다. 특히 빈곤 노인가구일수록 의료 정보 접근성이 더 떨어지는 데다, 평소에 건강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천식이나 당뇨 등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많다. 급속한 고령화와 빈곤이 가져오는 이러한 끔찍한 현실 앞에서 존엄한 삶에 대한 절실한 요구에 답하려는 것이 바로 커뮤니티케어다.


절약된 의료비는 지역화폐 재원으로


고령화가 심화하고 빈곤 노인가구가 늘어가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커뮤니티케어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면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복지급여와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면서 자아실현과 일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사회서비스 체계’라고 정의된다. 커뮤니티케어는 고령화의 사회적 부담을 줄여주고 건강 불평등을 완화해주는 대안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실행 중인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은 노인,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을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여건에 놓인 저소득 지역에 속해 있으며, 상당수가 의료급여 대상자이다. 커뮤니티케어는 본질에서 노인, 장애인, 정신장애인뿐만 아니라 그 어떠한 대상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돌봄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만 건강 취약계층 누구나 이를 활용할 수 있다. 대상자는 노인, 장애인, 정신장애인으로 나누어질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주거, 의료, 복지, 돌봄의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체계를 연계 및 통합체계로 전환한다는 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현재 정부는 커뮤니티케어 선도모델 8곳과 예비형 8곳을 포함해 모두 16곳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16곳의 지방자치단체는 그나마 단체장이 의지를 보이고, 상대적으로 지역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하지만 그 밖의 지역 가운데는 지자체의 의지도 약하고 지역 자원도 매우 빈약해 커뮤니티케어를 실행하기조차 어려운 지역이 많다. 여건이 좋지 않은 지자체에서도 보편적으로 커뮤니티케어를 시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법·제도 개편이 시급히 필요한 이유다.


2018년 기준으로 전국의 의료급여 대상자는 약 148만 명. 의료급여 환자에 지출된 비용은 7조 8000억 원에 이른다. 의료급여 환자 1인당 525만 원꼴로, 건강보험환자 1인당 지출액 137만 원과 비교하면 무려 3.8배다. 그런데도 의료급여 환자는 건강보험 환자보다 사망률이 높을뿐더러 여러 만성 질환이 동반될 확률은 약 2배나 높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도 의료급여에 들어가는 비용이 연간 800억 원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임대주택 지역주민들은 생활상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건강문제를 꼽는다. 주치의로부터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여러 병·의원을 전전하면서 오히려 중복된 약 처방과 동시에 먹어서는 안 될 약을 함께 먹는 오남용 사례도 많다. 만일 한 명의 의사가 전담했다면 충분히 예방 가능한 문제다. 이번에 공개된 광산구 영구임대주택 아파트 실태조사 결과는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의료서비스 체계 속에 지역주민들이 그동안 얼마나 질 낮은 1차 의료서비스와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노출돼 있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광산구 사례처럼 우선 건강 취약계층이 밀집해 거주하는 주택단지에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마을 주치의센터를 두고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면, 1차 의료서비스 질은 높아지고 의료급여, 입원 및 응급실 내원으로 인한 의료비는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의료비를 절약해 1차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절약된 비용은 건강 증진 활동에 참여하는 지역주민들에게 지역화폐로 돌려준다니 놀랍지 않은가? 파편화되고 분절화된 의료서비스를 주거, 의료, 복지, 돌봄 서비스가 연계 통합된 맞춤형 서비스체계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 혁신이 커뮤니티케어의 핵심이다. 광산구의 혁신이 전국으로 퍼지길 기대한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교수·한국커뮤티케어 보건의료협의회 상임대표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924199.html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현장 기고] 새로운 개념 아파트 ‘위스테이’, 왜 짓느냐고요?

페이 사회혁신기업 ‘더함’이 시도한 새 주택사업 협동조합형 임대주택 ‘별내단지’ 입주 시작 장애 당사자 의견 반영한 ‘배리어프리’ 설계 변기 위치 높이고 안전바 설치·방문은 미닫이로 합리적 비용·안정적 거주로 사회적...

  • admin
  • 2020.07.20
  • 조회수 175

미숙한 1세대와 다른 ‘2세대 협동조합’ 부흥에 주목을

[HERI의 눈] ‘택시협동조합 방화사건’에 대한 단상 다른 기업들처럼 협동조합도 흥망성쇠 겪는 유기체 협동조합 전체를 도매금으로 넘기는 부당한 상황 우려 협동조합 정신과 원칙, 민주적 거버넌스 추구하는 업그레이드 된 ...

  • HERI
  • 2020.04.14
  • 조회수 586

광주 광산구 의료혁신의 교훈…‘1차 의료’ 개혁이 커뮤니티케어 핵심

영구임대주민 생활 실태 전수조사 토대로 ‘광산형 의료혁신 모형’ 제시돼 눈길 끌어 의료·돌봄·주거·일자리 문제 통합 해법 정부, 커뮤니티케어 시범사업 16곳 시행 중 지자체 의지 높고 지역 자원 풍부한 곳 한정 보편적 ...

  • HERI
  • 2020.01.16
  • 조회수 690

협동조합 ‘올림픽’ 서울에서…더 나은 세상을 상상해 보자

[2020 서울 세계협동조합대회] 12월11일~17일,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주최로 협동조합 정체성, 선언 25주년 맞아 재점검 예정 지속가능성 등 시대에 맞는 새 정체성 포함 기대 서울 영등포구의 꿈더하기사회적협동조합은 직업을 찾...

  • HERI
  • 2020.01.02
  • 조회수 836

혁신의 방향을 묻는 과학기술의 새 흐름…사회문제에서 길을 찾다

【HERI의 눈】 ‘혁신정책 3.0’이 온다 혁신이 곧 사회문제 해결은 아니라는 인식에서 출발 더 많은 과학기술혁신 대신 온난화 등 난제에 주목 지속가능성 등 ‘방향’ 중시하는 임무 지향적 혁신정책 기술과 사회혁신, 전문가...

  • HERI
  • 2019.07.09
  • 조회수 1339

산업논리 넘어 지속가능성 고민하는 기술혁신 움튼다

[HERI의 눈] 디지털 사회혁신이 보여주는 새로운 프레임 디지털기술 활용을 활용하는 사회혁신 확산 기술변화의 궤적 다양, 기술결정론 벗어나야 포용적· 사회 친화적 기술발전의 관점 제시 빠른 혁신보다 좋은 혁신이란 방향...

  • HERI
  • 2019.07.01
  • 조회수 1160

미국 대 중국의 ‘표준 세계전쟁’,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HERI의 눈] 5G 표준 기술 둘러싸고 사활 건 싸움 중국, 20년 가까이 국제 표준계 잠식 지리적·산업적으로 전방위 확대될 듯 데이터 현지화 갈등으로 비화 가능성 최근 5G 표준 기술을 둘러싼 경쟁은 단지 정보통신기술 ...

  • HERI
  • 2019.07.01
  • 조회수 1153

‘병원 떠도는 환자들’ 집에서 치료 받을 방법 없을까?

페이스북 트위터 공유 스크랩 프린트 크게 작게 [HERI의 눈] 퇴원 환자들 가정간호로 집에서 치료 가능 돌봄 서비스 없으면 요양병원 ‘전전’ 정부 ‘지역사회 통합돌봄’ 사업 추진 “기존 서비스 연결시키고, 사각지대 돌...

  • HERI
  • 2019.06.21
  • 조회수 1134

‘뉴닉’의 고슴이는 어떻게 뉴스를 ‘힙’하게 만들었을까

[HERI의 눈] 밀레니얼을 사로잡은 뉴스레터 ‘NEW NEEK’ 친구와 대화하듯 친근하게 풀어주는 뉴스 20~30대의 ‘뉴스 알고 싶은 욕구’ 저격 서비스 6개월 만에 4만 구독자, 개봉률 50% 이상 ‘고슴이’ 캐릭터 통해 독자와...

  • HERI
  • 2019.06.04
  • 조회수 1767

디지털 플랫폼 경제, 화려한 만큼 짙어지는 노동의 그늘

【HERI의 눈】 플랫폼 오디세이① ‘라이더 유니온’이 한국의 플랫폼 경제에 던지는 질문 제도 보완 없이 ‘문 연 채’ 일단 출발한 플랫폼 경제 플랫폼 노동자들 노동법 및 복지 황무지로 내몰아 ‘노동자인지 자영업자인지...

  • HERI
  • 2019.05.13
  • 조회수 1676

북한의 ‘전환경제’ 성공에 사회적 경제가 해답이다

[HERI의 눈] 사회적 경제를 북한 전환의 ‘그랜드플랜’ 삼아야 남북한 공통의 미래 화두로 소중한 역할 가능 북한과 개발자본주의의 ‘연대’ 막는 일 절실 통합경제의 주체 및 수혜자는 젊은 세대 박봉주 북한 내각총리가 ...

  • HERI
  • 2019.03.12
  • 조회수 1245

‘협동조합 유치원’이라는 신대륙을 찾아…‘한유총 사태’가 주는 교훈

[HERI의 눈] 유치원에도 ‘새로운 학교 모델’ 접목 가능 화성 동탄, 서울 노원 등 이미 변화 시작돼 학교협동조합, 6년 만에 90여개 늘어난 경험 전파자·당사자, 지원조직 등 협업이 성공 열쇠 지난 2월 22일 열린 스페인...

  • HERI
  • 2019.03.12
  • 조회수 1555

‘건강실천수당’ 정책실험이 필요한 이유

[HERI의 눈] 기대수명보다 건강수명이 더 중요한 시대 65세 이상 진료비 지출액 해마다 늘어 바르셀로나, 빈곤가구에 ‘건강수당’ 지급 사회적경제·공유경제 활동과 연결 특징 지난해 12월11일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기본소득의...

  • HERI
  • 2019.01.16
  • 조회수 1491

빌바오에서 보낸 사흘…그곳은 사회적경제 ‘희망의 땅’이었다

[HERI의 눈] 국제사회적경제포럼(GSEF) 참관기 4회째인 올해 행사에 84개국 1700여 명 모여 성황 도시가 중심이 된 사회적경제 공유·협력의 마당 전 세계의 연구자·활동가들 네트워크도 활발 한국 사례가 새로운 발전모델로 논...

  • HERI
  • 2018.10.12
  • 조회수 1758

‘어머니 같은 정부’를 원한다면 시장의 구조를 바꿔야

〔헤리의 눈〕 김병준의 ‘탈국가주의’ 비판 “시장안에서 어떤 국민은 다른 국민보다 더 평등해” 국가없이 자율적인 시장과 공동체는 불가능 권력 불균형을 시정하지 않는 자율적 통제란 강자의 통제일 뿐 “저는 앞으로 좀 더...

  • admin
  • 2018.08.24
  • 조회수 1853

인수위 없이 출발했다지만, ‘B급 정책’은 여기까지

HERI의 눈_정책의 품질 왜 이런가? 꼬리를 무는 주요 경제-사회 정책 혼선 우선순위, 속도, 소통 등 실행전략 엉성 ‘무엇을’ 못지않게 ‘어떻게’에 성패 달려 정책 결정 방식인 ‘거버넌스’ 재점검해야 국민연금 개편을 두...

  • HERI
  • 2018.08.17
  • 조회수 2145

위기의 언론, ‘컨스트럭티브 저널리즘’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다

Weconomy | HERI의 눈 문제 들춰내기보다 ‘해결’에 무게 싣는 시도들 ‘5W 법칙’에 ‘이제 무엇을?'이라는 질문 추가 유료 독자 늘고 매체 영향력도 커지는 추세 “미래에 초점 맞추고 사회에 영감 주기를 원해” 최근...

  • HERI
  • 2018.08.02
  • 조회수 2330

누가 라오스 주민들을 울렸나

Weconomy | HERI의 눈 정부가 ‘민관협력’ 우수사례 꼽은 라오스 댐 전력은 태국에 수출, 국내 기업은 이익 챙겨 주민은 두 차례 이주당하고 댐 붕괴 피해까지 국제사회, ‘구속성 원조’ 비판하는 목소리 높여 붕괴된 라오...

  • HERI
  • 2018.07.27
  • 조회수 2182

‘고용쇼크’, 과연 사실일까?

[HERI의 눈] 생산가능인구 증가 폭, 1년 새 11만 명 줄어 건설업 영향으로 일용직 줄어든 것도 영향 올 상반기 들어 자영업자 수 감소세로 돌아서 최저임금 상승으로 무분별한 진입 막는 효과도 지난달 28일 오전 청와대 ...

  • HERI
  • 2018.07.26
  • 조회수 2110

사회적경제의 내일은 청소년에게 있다

[HERI의 눈] 올해 학생조합원의 날 행사 대구서 열려 8개 시도 130여 학생조합원 등 한자리에 청소년에겐 협동의 경험을 안겨주고 지역에는 사회적경제 홍보 기회 제공 7월14일 대구 동구 신무동의 대구교육팔공산수련원에서 열...

  • HERI
  • 2018.07.26
  • 조회수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