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의 눈    시민경제 • 민생 이슈 현장 전문가 칼럼
[HERI의 눈]
기대수명보다 건강수명이 더 중요한 시대
65세 이상 진료비 지출액 해마다 늘어
바르셀로나, 빈곤가구에 ‘건강수당’ 지급
사회적경제·공유경제 활동과 연결 특징

지난해 12월11일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기본소득의 건강수당 방안 모색 포럼’에서 안무엽 한림의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건강실천수당과 관련해 발표를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11일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기본소득의 건강수당 방안 모색 포럼’에서 안무엽 한림의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건강실천수당과 관련해 발표를 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해 계획을 세우는 일 중의 하나가 건강이다. 올해는 운동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헬스장 이용권을 끊고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덕담을 나눈다. 수명이 100세 가까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삶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를 반영하는 수치가 바로 건강수명이다. 건강수명은 평균수명에서 질병으로 인해 몸이 아픈 동안을 제외한 기간을 뜻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출생자의 기대수명은 82.36세인데 반해 건강수명은 64.9세다. 대략 17년간 병고에 시달린다는 얘기다. 과식에 의한 대사성 증후군과 운동 부족 등 생활습관 문제인 경우가 많다. 의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난치병도 극복해가고 있지만, 본인 스스로 건강한 생활 습관을 갖지 않으면 인생의 5분의 1은 병고에 시달리게 된다.

문제는 개인의 고통만이 아니라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6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자의 진료비 지출액은 24조5643억 원. 건강보험상 전체 진료비 64조6623억 원의 38%다. 금액면에서 2015년에 비해 15% 증가한 수치다.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이 수치는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5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60년 기준 노인 진료비는 최소 281조 8826억 원에서 최대 390조 7949억 원으로 추정된다.

보험료 하위 20%, 부담 대비 혜택은 5.4배

“55세부터 저소득층이 폐지를 줍다가 골병이 들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보다는 이들에게 건강실천수당을 지급하는 게 더 이득이다.” 지난해 12월11일 열린 ‘기본소득의 건강수당 방안 모색 포럼’에서 안무엽 한림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건강수당의 효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응급실에서 30년 근무를 한 안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건강대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한다.

안 교수가 생각하는 근본대책은 건강생활 습관 형성에 따른 노후 건강 선순환 구조 확립이다. 저소득층의 경우, 생활습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몸이 약해지고 진료비가 크게 늘어나기 일쑤다. 경제할동도 어려워지고 소외된 노후의 삶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기도 쉽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국가가 건강실천수당을 지급해 건강수명을 늘리며 지속적인 경제활동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생각이다. 불필요한 예산낭비라고 치부될 수도 있는 건강실천수당 지급이 외려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2017년 보험료 부담 대비 급여비 현황 분석’에 따르면, 보험료 하위 20% 세대는 월평균 2만 7793원을 보험료로 부담하고 14만 9360원을 보험급여로 받아갔다. 보험료 부담 대비 건강보험 혜택이 5.4배다. 이에 반해 상위 20%의 경우 1.15배에 그친다.

지난해 LAB2050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시민소득 정책실험 연구팀을 방문해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지난해 LAB2050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시민소득 정책실험 연구팀을 방문해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물론 건강실천수당을 제도화하는데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예산 투입 대비 건강증진 효과가 과연 있는지 검증도 거쳐야 한다. 참고할 만한 사례는 있다. 행정안전부의 2018년 국민참여 사회문제해결 프로젝트는 국민이 아이디어 제공에 그치지 않고 문제 해결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사회적 건강관리 분야에서 활동하는 ㈜헬스브릿지가 서울 서대문구에 ‘가재울 마을건강방’을 열고 건강취약계층 주민들을 대상으로 생활습관을 종합적으로 관리해 주는 사업을 벌였다. 주민들의 참여를 높이기 위해 유인을 위해 건강방 이용률, 식단 관리, 건강 미션 수행 등을 평가한 뒤 격주로 평균 2만원의 ‘건강실천수당’도 지급했다. 입소문을 타면서 처음 10여 명에 그쳤던 참가자 수가 80명으로 늘어났고 이용시간도 증가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시제품’

생산량은 늘어나지만 일자리는 줄어드는 ‘고용없는 성장’ 시대의 노후 보장을 위해선 새로운 정책실험이 필요하다. 인류가 지금껏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변화들이기에 직접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섣불리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건강실천수당과 유사한 정책실험을 해나가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례는 여러모로 시사점을 준다. 바르셀로나에선 빈곤지역 1000가구에 매월 1000유로(약 130만원) 내외를 2년 간 지급하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여타 기본소득 실험과 다른 점은 적극적 정책 참여 여부에 따라 지급액이 달라지는 구조로 짜여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사회적경제 활동 프로그램, 빈 방을 개조해 관광객에 제공하는 공유경제 프로그램 등이 있다.

지난해 10월 국내의 대표적인 정책실험연구소인 LAB2050이 바르셀로나의 시민소득 정책실험 연구팀을 방문해 토론을 벌인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바르셀로나 정책실험의 총괄자인 루이스 토렌스는 “사람들로 하여금 의욕을 갖게 하는 게 실험의 의의”라며 “외부 경기변동에 휩쓸리지 않고 아침에 일어나면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만드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강에 힘쓰고 공동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활동이 당장 국내총생산(GDP)을 증가시키지는 않더라도 사회적 비용은 줄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생산성으로부터 벗어난 새로운 소득 개념을 만들어내야 한다. 오는 23일엔 국회에서 청년기본소득 정책실험 방안에 대한 토론회도 열린다. 이원재 LAB 2050 소장은 “4차 산업혁명 등 사회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사회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정책실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은 한 번에 이뤄지지 않는다. 상품 개발을 위해 프로토 타입(시제품)이 필요하듯이 새로운 시대를 위한 획기적인 정책 도입을 위한 정책실험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글·사진 주수원 전국학교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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