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이 된 이동필 전 농림부 장관
2016년 퇴임하자마자 40년 만에 귀향
스러져가는 농촌 보며 공직 자괴감
“농가고령화·청년유출로 영농체계 붕괴
실태 파악 기반, 농업구조 재설계 필요”
귀농 6년차 농사꾼인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지난 5일 오후 경북 의성 자택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의성/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공수신퇴(功遂身退: 일을 마치면 물러난다는 뜻으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의 마음으로 어머니가 계신 고향에 내려왔는데 농촌은 붕괴 직전이더군요. 서울 가서 공부도 하고 공직도 오래 했지만, 그동안 뭘 했나 자괴감이 듭디다.”
지난 5일 오후 경북 의성군 단촌면 마을 끝자락에서 만난 이동필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손은 상처투성이였다. 2016년 9월 장관직에서 퇴임하자마자 낙향한 이 전 장관은 귀농 6년차 농사꾼이 됐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농촌의 현실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 전 장관은 “여기 나가면 바로 왼쪽은 전부 빈집이고 오른쪽을 돌면 독거노인 집 두 채가 있다. 한 분은 얼마 전 돌아가셨다. 청년 유출과 고령화로 스러져가는 농촌의 실상이다”라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2013년 3월부터 농림부 장관으로 3년6개월 동안 농정을 맡았다. 40년 만에 내려온 고향 집 마당에는 그가 손수 지은 애일당(愛日堂)이란 이름의 정자가, 건너편엔 사원재(思源齋)라는 사랑채가 있다. 그 뒤편의 밭과 앞들의 논을 합쳐 3천평가량 농사를 짓던 이 전 장관은 최근 밭작물 가짓수를 줄였다. 그는 “안 하던 일을 하다 보니 갈비뼈도 부러지고 타박상과 찰과상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경북은 23개 시·군 가운데 4곳을 제외하고 모두 소멸위험지역에 속한다. 읍·면 단위 농촌지역은 훨씬 심각하다. 의성군 인구는 1960년대 20만명을 넘었으나 2000년 7만6천명에서 지난해 5만명으로 감소했다. 전국의 다른 농촌지역 사정도 의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늙고 지친 농업과 농촌에 미래는 있을까? 이 전 장관은 “농촌이 갖고 있는 장점과 잠재력, 가능성은 많다. 의성만 해도 자연경관이 뛰어나고 관광문화유산이 있다. 특히 마늘과 사과, 고추 같은 특산물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으로 바꾸려면 지금의 정책 틀을 크게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업 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인한 지역소멸을 극복할 대안은 무엇일까? 그는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삼농’(三農) 정책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그는 “무엇보다 농사짓기가 수월해야 하고(便農), 농업의 수익성이 높아야 하고(厚農), 농민의 지위가 향상돼야 한다(上農). 농사짓는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것, 이들이 잘살게 되면 근자열 원자래(近者說 遠者來: 가까운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까지 찾아온다는 뜻)가 된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지역특화산업과 문화관광 개발, 스마트팜과 6차산업화를 통한 농업 경쟁력 강화와 귀농·귀촌 촉진을 통한 인구 유입을 농촌 살리기를 위한 접근 방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2020년 귀농·귀촌 인구가 49만4569명인데, 그중 귀농자는 3.5%밖에 안 된다. 거의 귀촌자임에도 정책은 귀농 지원에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역 균형발전과 인구의 재배치라는 관점에서 귀촌자에 대한 세제 감면 등 과감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지방 출신 베이비부머 400만명이 수도권에 살고 있고 상당수는 귀향을 꿈꾸고 있다. 이들이 돌아가면 세상이 바뀐다. 족쇄를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주목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농업 구조의 현대화’다. 고령화된 농가 경영주의 연령 구조와 농지의 소유 및 이용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바탕으로 농업의 구조와 지원제도를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전 장관은 “경험·기술, 고유 철학·노하우의 축적이 가능한 가업 승계농을 육성하는 것도 농업·농촌이 발전하는 근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의성/홍대선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센터장, 녹취 민수빈 보조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