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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 가까워진 세상에 매트릭스 네번째 ‘리저렉션’ 개봉
알고리즘의 힘 커진 디지털 세상의 면면 따져봐야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에게 안락한 시뮬레이션의 세계(파란 알약)와 고통스러운 진실의 세계(빨간 알약) 중 무엇을 선택할지 묻는다.
1999년 개봉한 <매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에게 안락한 시뮬레이션의 세계(파란 알약)와 고통스러운 진실의 세계(빨간 알약) 중 무엇을 선택할지 묻는다.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지난 22일 국내 개봉했다. 1999년 선보인 <매트릭스>는 실감나는 액션 장면과 혁신적 촬영기법 등으로 이후 공상과학 영화 제작에 큰 영향을 주며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2003년 후속작 <매트릭스: 리로디드>와 <매트릭스: 레볼루션>이 잇따라 개봉되며 3부작이 완결됐고, 18년 만에 오마주 성격의 <매트릭스: 리저렉션>이 나온 것이다. 미래에 기술 발달로 생겨날 디스토피아적 상상을 토양으로 하는 공상과학 영화 분야에서 <매트릭스>는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다. 21년 전 영화속 상상과 개념은 상당 부분 현실이 되었고 영향력은 여전하다. 컴퓨터 코드로 구현된 가상현실(시뮬레이션) 개념은 디지털 환경에서 영화적 장치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고, 철학적 논의로 이어졌다. 가상세계와 현실 인식, 기계에 의한 지배와 착취, 순응과 저항, 자유의지, 주체와 정체성 문제, 악과의 대결, 구원과 같은 개념이 등장하고 보드리야르·플라톤·장자의 철학, 불교·기독교적 세계관이 작품 감상을 위해 불려나왔다.

현실 속의 ‘매트릭스’ 메타포

<매트릭스> 시리즈의 핵심 개념인 시뮬레이션된 세계는 코로나19 비대면 사회를 거치면서 ‘메타버스’라는 정보기술 산업계의 미래 키워드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영화 속에서 ‘파란 알약’이 상징하는 시뮬레이션된 세상은 마찰 없는 매끄러운 삶이지만, 기계가 지배하는 매트릭스의 조종을 받으며 인간성이 착취되는 거짓의 세계이자 파괴 대상이다. 하지만 오늘날 메타버스와 가상현실(VR) 기술이 그리는 가상세계는 현실의 제약이 사라진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적극적 구현 대상이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 10월 ‘페이스북 커넥트’ 행사에서 “미래는 메타버스에 있다”며 가상현실에서 스스로 아바타로 변신한 모습을 선보이며, 페이스북의 법인명을 아예 ‘메타’로 변경했다.

‘파란 알약’이 의미하는 질서있고 근사한 세계와 ‘빨간 알약’이 상징하는 문제투성이 고통스러운 현실의 대비는 근래의 ‘탈진실(포스트트루스)’ 환경에서 영화속 은유(메타포)를 넘어선 현실의 문제가 됐다. 사실보다 자신의 감정과 신념을 더 중시하는 ‘탈진실’ 현상은 2016년 영국 브렉시트와 미국 대선을 거치며 주목할 정치 현실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은 탈진실 현상을 부추긴 대표적 정치인으로, 퇴임 뒤에도 지지와 영향력이 여전하다. 코로나19 상황에서는 신념과 어긋나는 진실을 외면하고 허위정보를 퍼뜨리는 정보전염병이 심각한 보건위협이 되고 있다.

컴퓨터 코드로 구현된 시뮬레이션이 인간 의식을 대체한다는 영화속 개념은 ‘뇌-컴퓨터 연결(BCI)’과 인간의 생물학적 속성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트랜스휴머니즘으로 구현되고 있다.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사람 두뇌를 컴퓨터와 연결하기 위한 칩(뉴럴레이스)을 개발하는 기업 ‘뉴럴 링크’를 설립해, 돼지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를 발표해오고 있다. <매트릭스> 3부작을 함께 만든 워쇼스키 형제는 차례로 성전환 수술을 받아 자매로 변신하며, 스스로 트랜스휴머니즘을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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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개봉한 <매트릭스: 리저렉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새롭게 필요한 ‘빨간 알약’

영화에서는 빨간 알약의 도움이 없으면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현실의 메타버스와 가상현실은 자발적 선택을 통한 이용이기 때문에 사용자의 인지와 통제 아래 있다. 가상현실 헤드셋 착용과 로블록스, 제페토 이용은 위험하지 않다. 전세계를 지배하는 압제자의 출현도 걱정할 필요없으며, 세상은 빨간 알약의 현실과 파란 알약의 매트릭스로 양분되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현실과 가상이 혼합되고 매끄럽게 연결되어 경계가 사라지는 현실이 과제를 던진다. 영화에선 거대한 매트릭스 시스템이 실제와 분리된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내어 통치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디지털 세상에서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모든 것을 제공하고 지배하는 빅브러더보다 이용자들의 동의와 수용을 통해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알고리즘을 주목해야 한다. 자발적 동의를 통한 맞춤형 서비스로 이용자 만족을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알고리즘의 부정적 영향력을 깨닫기 어렵다.

플라톤의 ‘동굴의 죄수’ 우화를 떠올리게 하는 진실 인식의 도구 ‘빨간 알약’은 오늘날 탈진실 현상과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의 영향력이 커지는 디지털 환경에서 어느 때보다 필요한 개념이 되고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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