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10일에 열린 ‘참성장포럼’에서 (왼쪽부터)이원재 LAB2050 대표, 이승윤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임동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가 토론하고 있다.
올 한해 우리사회의 큰 화두는 ‘격차’였다. 몇 달 사이 수억원대의 자산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모두의 자산이 커진 것은 아니다. 월급도 마찬가지다. 수천만원의 성과급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런 기업에 다니는 사람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LAB2050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기획한 ‘참성장포럼’의 네 번째 세션에서는 이렇게 소득 격차와 자산 격차가 결합된 불평등 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토론했다. 패널들은 불평등으로 인한 개인의 불행과 사회적 문제들을 짚으며, 불평등은 정책 개입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인의 소득 불안을 사회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소득 보장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았다.
포럼에는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임동균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 원장이 패널로 참석했으며, 지난 12월10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서대문구의 ‘공간이제’에서 이원재 LAB2050 대표의 사회로 100분간 진행됐다. (포럼 영상 https://youtu.be/6Q96NBxpFTU)
소득주도성장으로 소득 격차 완화됐지만, 자산 격차로 인한 불평등 커져
먼저 홍장표 원장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소득격차가 줄어들어 소득불평등이 완화된 것으로 분석했다. 시장에서 벌어들인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불평등은 악화와 개선이 혼재하지만, 공적이전을 포함한 처분가능소득을 보면 분명한 개선효과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가구단위 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2017년 0.354에서 2019년 0.339로 낮아졌다.
근로연령층은 특히 최저임금의 영향을, 은퇴가구는 기초연금과 노인일자리 사업 등의 영향으로 처분가능소득이 증가했다. 정책 투입의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코로나19 발생 이후에도 시장소득 분배는 악화되었지만, 처분가능소득 분배는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시장소득 5분위 배율과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이 모두 상승해 소득분배가 악화한 것과 대비된다. 홍 원장은 이러한 차이가 긴급재난지원금, 저소득층 소비쿠폰 지급 등 적극적으로 재정을 투입한 대응책에 힘입어 공적이전소득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 소장은 “소득 보다도 자산이 불평등의 주원인”이라고 강조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은 작년 한 해에만 400조원이 넘게 발생했는데, 이를 토지를 과다하게 보유한 소수 개인과 법인이 독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 중에서도 부동산이 소득불평등에 미치는 영향은 34%에 달해, 임금 소득은 어느 정도 노력의 대가로 이해되는 반면 부동산 불평등 심화에 따른 불로소득이 커질 수록 사람들이 느끼는 부당함이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불평등이 부른 혐오와 갈등, 사회 전반의 문제로 번져
이승윤 중앙대 교수는 이러한 불평등으로 인해 다수의 사회 구성원이 불행해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불평등이 지속되는 사회는 중하층에게 불안함을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상류층에도 과도한 내부 경쟁을 유발해 사회 전체에 고통을 안기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청년세대의 불안정성이 이와 관련이 깊다. 홍 원장은 “청년세대의 의식의 바탕에는 무한경쟁, 각자도생이 있고 불안과 불공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소수의 청년이 부모로부터 부동산을 상속받거나 ‘영끌’로 부동산을 구매하는 상황에 대해 다수의 청년들은 기성세대보다 훨씬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실제로 자산 불평등은 청년의 희망과 절망감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동균 서울대 교수가 지난 6월 ‘주관적 계층의식과 세대 및 성별 간 관계’ 온라인 설문조사(KBS) 결과를 분석한 결과, 청년의 약 70%가 희망이 없다고 응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주식으로 돈을 버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응답한 청년은 남성이 44%, 여성이 31%에 이른다고 임 교수는 밝혔다. 남기업 소장도 “평등한 출발, 반칙 없는 경쟁이 공정이라면 부동산은 출발도 다르고 과정도 반칙이 구조화되어 있다. 집값이 상승할수록 청년들에게는 부당함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증세, 국민적 공감이 필요
이어진 토론에서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서는 패널들 간에 강조하는 지점이 달랐다. 남 소장은 자산불평등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그 중에서도 부동산이 주된 원인이므로 토지보유세를 강화해 기본소득으로 분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면 기대수익률이 낮아져 투기가 줄어들 것이고, 이를 환수해 분배하면 국민의 90% 이상이 혜택을 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홍 원장은 기본소득으로 분배한다고 해도 그에 앞서 증세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우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도 우리나라 국민의 세금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를 봐도 “경제적 불안이 높을 수록 보편적인 분배제도를 지향하지만 세금을 통한 지원은 사회적 약자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보편지급에 대한 생각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생각이 혼재되어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남 소장은 보유세에 대한 불만은 세금이 어디에 정확히 쓰이는지 모르는 점과도 관련이 있다며, 기본소득과 같이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있다면 정책 수용성도 높아지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복지를 통한 보편적인 소득 기반 강화해야
패널들은 소득보장의 중요성에 대해 입을 모았다. 이승윤 교수는 자산불평등도 크지만 개인의 삶에 있어 임금소득의 불평등이 주는 영향은 여전히 강하다고 보았다. 또한 디지털 전환이 가속되면서 정해진 근로환경이 더이상 표준적이지 않고, 청년들이 하청노동, 플랫폼노동, 위장된 자영업 등 일의 형태가 모호한 ‘녹아내리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현상을 감안해 이 교수는 앞으로 보편적인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참여소득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활동들을 일로 인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동균 교수도 플랫폼노동 안에서 다양해지고 있는 일의 형태와 크게 늘어난 종사자 수에 주목했다. 이때 플랫폼 노동자의 복지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서는 고용형태가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고용보험 시스템을 운영하고 사회서비스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장표 원장은 최저소득보장이 중요하다며, 자산형성의 사다리가 사라진 청년과 노후소득을 마련하려는 기성세대 모두를 만족시킬 복지체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끝으로 패널들은 개인이 노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지금의 자산 불평등 시대를 초래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임동균 교수는 “산업화 시기에, 상승하고 있는 집값을 노후자금으로 쓰는 유사복지제도에 대한 경로의존성이 계속 작동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기업 소장은 “과거부터 내려오던 ‘내집 기반 복지’를 기본소득 등 소득보장 기반 복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참여소득, 고용보험, 기본소득 등 경로는 달랐지만, 개인의 소득 불안을 사회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소득 보장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불평등 해법의 핵심이라는 데로 의견이 모아졌다. 정리 LAB2050 김민진 연구원
<사람, 기술, 환경이 함께 나아가는 사회, 참성장포럼>은 시민사회 활동가, 정책 전문가, 기업가와 사회혁신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경제의 비전과 정책 패러다임을 토론하고, 실천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LAB2050이 주관하고, 고려대학교 정부학연구소,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한마음평화연구재단, 희망제작소가 공동주최, 지구와사람이 후원한다.
포럼은 지난 9월부터 매월 한 차례 성장, 환경, 지역, 분배 등을 주제로 토론을 이어가고 있으며, LAB2050유튜브채널(www.youtube.com/LAB2050TV)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