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속 HERI


[더 나은 사회]
보육·요양·장애인 보조 등 사회서비스
이윤 좇는 민간 중심 운영 공공성 뒷전
서비스 노동자 장시간·저임금 시달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모델 대안 주목
시민 참여로 양질 서비스·일자리 창출
정부·시장·시민사회 연대적 공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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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28일 자정 무렵. 전남 장성의 한 노인요양병원에 불이 났다는 다급한 전화가 119에 걸려왔다. 곧바로 소방차가 출동해 불은 24분 만에 껐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21명의 환자와 간호조무사가 목숨을 잃었다. 희생자는 대부분 혼자서는 거동이 어려운 고령의 환자였다. 유족들은 불이 나기 전 병원에서 환자들의 손발을 묶어놓은 흔적이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비용을 아끼려 간병인력을 최소화하려다 보니, 불이 나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 같은 시설이 됐다는 것이다.


사회서비스 시장화의 그늘

노인 요양이나 영유아 보육. 장애인 활동보조같이 복지의 세부적인 내용을 제공하는 활동을 사회서비스라고 한다. 현재 사회서비스의 95%를 민간에서 공급한다. 하지만 장성 요양병원 사례에서 보듯이 민간업체들의 이윤 극대화 욕구와 당국의 미흡한 규제?감독이 겹쳐서 서비스의 질이 하락하는 등 다양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사회서비스 정책은 전자바우처(Electronic Voucher) 사업과 시설이용 지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바우처 사업은 서비스 이용자가 원하는 민간업체의 사회서비스를 선택·이용하면, 해당 지원 금액이 자동적으로 업체에 전달되는 방식이다. 이용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전달 방식이다.

그러나 고객인 바우처 이용자가 들쭉날쭉할 수밖에 없는 민간 업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 역시 불안정한 형태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다. 즉 대부분 일자리가 일이 있을 때만 민간업체에 나가 일하는 ‘호출형 노동’을 띠고 있다.

이들은 고용된 것으로 간주되지만 보장된 노동 시간이 없어 수익이 불안정하다.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 불안정한 노동 환경 역시 사회서비스 노동자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서비스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작 사회서비스가 담보해야 할 공공성은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비영리기관 등에 한해 인가제로 운영되던 사회서비스 사업은 시장화하기 시작한 지 9년이 지났다. 2008년 노인재가장기요양보험을 시작으로 2013년 일부 사회서비스 바우처 사업에서 영리기업도 참가가 가능하도록 등록제를 실시했다. 사회서비스가 시장의 이윤 논리에 맡겨지고, 시장화·민영화·개방화가 사회서비스의 정책 방향이 되어버렸다.

사회서비스, 공공부문 흡수가 대안?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크게 세 가지 방안이 거론된다. 하나는 사회서비스의 공공영역 비율을 높여가며 민간에 적정한 모델을 제시하고 지원하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가 직접 노동자를 채용해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셋째는 공단이나 재단 등의 공공 주체를 통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를 공공화하는 방안이다.

이와 관련해 2월28일 국회에서는 윤소하 의원실(정의당)과 사회서비스시장화 저지 공동대책위원회 주최로 ‘사회서비스 전달체계 개편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공공영역 비율을 높이면 민간기관 난립으로 인한 과당경쟁을 해소하고 부실 기관을 자연스럽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연구위원은 “공공 직영기관에만 공적 재원을 투입하면 민간이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느냐는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며 적정한 민간 모델을 제시하고, 지원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는 “공공부문 확대가 고용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는 있지만 서비스 질이 높아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며 자원 투여량 자체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후보 가운데는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공약을 내걸면서, 사회서비스 영역의 공공영역 전환을 공약해 관심을 끌었다. 공무원 일자리 17만개, 사회서비스 일자리 34만개, 공공기관이 민간에 용역을 준 일자리 30만개 확보가 주요 내용이다. 이 중 사회서비스 부문은 공단을 설치해 공공부문으로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사회서비스 건강한 공급 방안, 시민참여

위에 언급한 대안 외에도 최근 사회적 경제를 통해 사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시민이 주체가 되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자는 논의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열린 ‘시민참여와 협동조합, 좋은 사회서비스 시대를 연다’ 포럼이 그런 논의의 하나이다. 포럼을 주최한 서형수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박근혜 정부의 지난해 일자리 예산이 16조원에 육박했지만, 실업률은 더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자조와 호혜, 민주적 운영을 핵심가치로 하는 사회적 경제 영역이 사회서비스 분야의 새롭고 좋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발제를 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이철선 연구위원은 “사회서비스 일자리 증가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나, 임금과 근로 환경 등에서 종사자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며, 최저임금 상승률보다 낮은 서비스 수가를 현실화하고 시급제 임금 체계를 기본급 체계로 변경해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2009년부터 2015년까지의 최저임금 연평균 인상률이 5.7%인 데 비해, 4대 바우처(가사간병, 노인돌봄, 장애인돌봄, 산모신생아)의 수가 인상률은 0.5~3.7%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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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위원은 “해외에서는 연대 조직들이 일반협동조합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사회서비스를 수행하는 사회적협동조합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이 직접 돈을 내는 것이다. 국내 사회적 경제 분야에서도 사회서비스를 위한 자조적인 재정 확보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회서비스의 건강한 공급자로서 사회적 경제 기업들을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사회적 경제 기업을 돕는 것만은 아니다. 중간 착취를 없애고 부패 방지가 가능하며, 지역의 소득을 증대시켜 자원이 지역에서 선순환하도록 하는 지역순환경제를 도모할 수도 있다. 나아가 서비스 제공자가 피고용인 상태로 머무는가, 사회서비스의 공급 주체가 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노동자 스스로 협동조합을 만들어 투명하게 운영하면서 그 안에서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적 운영구조가 생겨난다. 건강한 공급자들이 연대하며 지역사회에 대한 사회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것 역시 기대할 수 있다.

촛불혁명 이후 고양된 시민의식이 사회서비스 분야에서의 공공성 회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최영미 대표는 “촛불 이후 시민들이 주권자임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며, “사회서비스 분야도 정책을 만들고, 공급하고, 모니터링하는 체계 속에 시민들이 어떻게 위치할 것인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시민 참여가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환우들의 백혈병 치료제 및 진료비 등의 문제에 대해 당사자의 입장을 대변하여 행동해왔다. 성소수자들이 모여 만든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성소수자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직접 행동하고 있다. 지난해 6월엔 그림자 노동이라며 가려져 있던 3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시터(육아도우미), 가정부 등 가사노동자들이 노동권 확보와 인권 보호를 위한 법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시민들이 주권자로서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공공성을 추구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동적 시민’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촛불을 든 시민들의 각성이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 변화로 이어지는 셈이다. 당사자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정부와 시장,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의 ‘연대적 공존’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gobogi@hani.co.kr



한겨레에서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894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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