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5분경영학] 피자는 자장면이 부럽다

HERI 2011. 06. 27
조회수 8125

[이원재의 5분 경영학]


“먹어봐야만 맛을 아는” 경험재는 일반 재화 시장보다 진입장벽 높아
질레트도 3천억원 쓰고서야 삼중날 면도기 성공, 자장면의 균질성 돋보인다



2005-12-28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새로 이사간 집 문 앞에는 매일매일 피자집과 치킨집 광고전단이 덧붙여진다. 맛을 보지 못했으니 품질은 알 수 없지만, 가격과 양에서만큼은 어느 곳이나 훌륭해 보인다. 전국 체인을 가진 피자집에서는 2만원을 훌쩍 넘을 것 같은 피자가 1만2천원밖에 하지 않는데다, 콜라와 샐러드는 기본이고 어떤 경우에는 치킨까지 서비스로 딸려온다. 하여간 싸긴 정말 싸다.

새 브랜드 위험 감수할 수 있나

피자 재료값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고, 맛이 차이나면 얼마나 날까. 이런 생각을 되뇌며 주문해볼까 한 일도 많다. 그러나 막상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려고 할 때마다 온갖 근심걱정이 찾아든다. 혹시라도 너무 맛이 없어서 모처럼의 오붓한 식구들과의 저녁식사를 망치면 어쩌나. 기름이 너무 많아서 아이가 먹지 않으면 어쩌나. 너무 짜서 짠맛 싫어하는 아내 입맛을 망쳐 이 황금 같은 시간에 모두 기분이 상해버리면 어쩌나. 역시나 위험이 너무 크다. 언제나 결론은 전국 체인을 갖고 있는 피자집으로 향한다. 결국 돈 만원 더 주더라도 안전한 길을 간다.

배달 음식은 전형적인 경험재(experience good)다. 경험재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는데, 그 첫 번째 특징이 직접 구입해 경험해봐야만 물건의 품질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를 수집해 품질을 짐작할 수 있는 탐색재(search good)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산다면 CPU와 메모리, 하드디스크 등 부품 사양을 하나하나 조사해 품질을 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화장품을 산다면, 어느 제품이 피부에 잘 ‘먹을지’ 짐작하는 것은 성분 분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사서 써보는 수밖에 없다.


△ 피자와 같은 경험재는 한번 선택한 브랜드를 계속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피자업체의 자선행사. (사진/ 한겨레)

둘째, 특정한 브랜드는 어떤 소비자에게는 잘 맞지만 다른 소비자에게는 잘 맞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잘 맞지 않았을 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경우가 흔하다. 기저귀를 보자. 아기들도 체형과 피부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아기에게 잘 맞는 기저귀가, 어떤 아기에게는 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잘 맞지 않는 기저귀는 부모에게 재앙이다. 새기도 하고 습진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우는 아기를 밤새도록 안고 달래야 할 수도 있고, 심하면 소아과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한 번 맞는 기저귀를 찾고 나면, 아무리 값싸고 질 좋다는 기저귀가 새로 나와도 브랜드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셋째, 소비자는 해당 시점, 해당 장소에서 단 한 가지 브랜드만을 사용할 수 있다. 피자를 한 군데서 시키는 게 불안하다고 두 군데에서 한꺼번에 주문해, 이것저것 맛보면서 2배 분량의 저녁식사를 즐길 수는 없다.

경험재의 이런 특징 때문에, 경험재 시장의 진입 장벽(entry barrier)은 탐색재 시장에서보다 높다. 소비자가 품질을 짐작하기 어렵고, 새 브랜드 사용에 따른 위험이 크고, 부분적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사용해보면서 탐색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경험재 시장에 새로운 브랜드가 들어가려면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를 사용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위험까지도 보상해주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면도기 제조업체 질레트가 삼중날 면도기를 시장에 들여온 과정은, 경험재 시장에 제대로 진입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질레트는 1998년 삼중날 면도기 ‘마하3’를 시장에 최초로 소개하면서, 15개월 동안 3억달러(3천억 원)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질레트는 이미 ‘센서’ 등의 브랜드로 미국 수동 면도기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면도기’를 말해주면 바로 ‘질레트’가 연상될 정도의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 월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업계의 독보적 1위 업체가 신제품을 내놓았으니, 다들 열광할 만도 했는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동 면도기는 직접 써보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잘 맞는지 알기 어려운, 대표적인 경험재이기 때문이다.

신규 피자집의 물량공세는 자충수

질레트가 소개한 삼중날 면도기가 기존 면도기보다 외형에서나 품질에서나 확실히 나은 것은 모두가 인정했다. 질레트의 브랜드 파워도 인정했다. 그러나 소비자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위험이 크다. ‘폼나는’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제품이 얼굴에 생채기를 낼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정말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질레트는 사상 유례없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3억달러는 텔레비전 광고와 신문 광고는 물론이고,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인터넷 옥외광고판 광고에다 소비자 대상 프로모션까지 뿌려졌다. 그런 마케팅 공세를 펼치고 나서야 질레트 삼중날 면도기는 시장을 뚫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배달 피자나 치킨은 먹어보기 전에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소비자는 보수적이 되고, 신규 진입자들은 “먹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서비스를 자꾸 제공한다. 가격 할인은 기본이다. 콜라같이 품질이 예측 가능한 공산품을 서비스로 내세우는 것도 약발이 먹힐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신규 진입 피자집이 대형 브랜드의 피자집처럼 “피자 한 판 시키면 한판 더 드립니다”며 경쟁하려고 든다면? 소비자의 위험을 증대시키는 자충수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는 어느 동네에서나 배달 음식 시장의 강자인 중국집이 부럽다. 팔도강산 모두에서 대체로 균질하다는 공감을 얻고 있는, 그래서 경험재의 늪에서 조금 비껴서 있는, 자장면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주의 용어

경험재(experience good)
탐색재(search good)
진입장벽(entry barrier)

   
서비스 선택
댓글
로그인해주세요.
profile image
powered by SocialXE
List of Articles

[나라살림가족살림] 사회적 기업과 경영능력

2008-04-30 7년 전, 이철종 대표이사의 꿈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취업을 하고 싶은데 일자리를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사람도 제대로 된 직장에서 일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했다. 그래서 직접 나서서 일자리를 만들기로...

  • HERI
  • 2011.06.27
  • 조회수 8010

‘사회적 기업가’ 양성학교 문 두드리세요

2008-08-20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는 교육 아카데미가 전국에 문을 연다. 실업극복국민재단은 노동부가 주관하고 에스케이(SK)가 후원하는 사회적 기업가 아카데미 교육 운영기관으로 한겨레경제연구소 등 18곳을 최종 선정해 20일...

  • HERI
  • 2011.06.27
  • 조회수 7951

(나라살림가족살림) “착한 경제”의 코드

2008-01-30 부산의 엔지오 활동가들을 만났다.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좋은 일’을 하는 데 헌신적으로 보낸 그들의 주요 관심사는 이제 ‘돈벌이’였다. 자신이 이끄는 조직이 하고 있는 좋은 일을 지속시키려면 경제적 자립이 필요...

  • HERI
  • 2011.06.27
  • 조회수 7254

[5분경영학] 가게 땅값 올랐다고 웃지 마세요

2006-03-30 건물주가 가게 주인인 경우 자산은 늘어났지만 이익은 줄어든 셈… 늘어난 임대료를 챙긴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을 계산하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회계적 ...

  • HERI
  • 2011.06.27
  • 조회수 7931

[5분경영학] 피터 드러커의 시간관리법

2007-07-12 지식노동자의 가장 중요한 자원, 시간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통합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미국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시간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경영...

  • HERI
  • 2011.06.27
  • 조회수 8549

[5분경영학] 프로구단은 왜 신인을 지명할까

2006-06-09 선수가 의무적으로 한 구단에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드래프트제의 경제학… 수요독점으로 가격 낮추는 전략, 공급업체를 독점한 월마트나 GM을 보라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

  • HERI
  • 2011.06.27
  • 조회수 8295

[5분경영학] 컴퓨터 가격은 왜 자꾸 떨어질까

2006-04-26 다른 사람들이 많이 갖고 있을수록 수요가 높아지는 네트워크 외부효과… 허영심 때문이 아니라 기술의 발전으로 주변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구매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 HERI
  • 2011.06.27
  • 조회수 11811

[5분경영학] 차별 있는 곳에 이익 있다

2007-07-12 최대 지불 의사’에 따라 각각 다른 값에 파는 가격 차별 전략 기업의 음모라 봐야 할까 모두의 ‘꿩먹고 알먹기’로 봐야 할까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영화값도 얼마 안 내...

  • HERI
  • 2011.06.27
  • 조회수 8126

[5분경영학] 주위를 둘러보고 “깎아주세요”

2006-02-15 물건값 흥정에 숨어 있는 경영학, 탐색비용을 둘러싼 게임 독과점이라면 정가 판매를, 경쟁이 치열하면 흥정을 권한다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선물을 사러 서울 인사동에 들렀다. 여...

  • HERI
  • 2011.06.27
  • 조회수 8278

[5분경영학] 죄수의 딜레마, 기저귀의 딜레마

2006-07-06 가만 있는게 더 이익인 기저귀 회사들은 왜 연구개발에 거액을 투자할까 … 게임이론이 두 업체의 경쟁 설명, 죄수의 딜레마가 소비자를 승리자로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

  • HERI
  • 2011.06.27
  • 조회수 11624

[5분경영학] 제품의 성분을 널리 알려라

2006-08-10 인텔 인사이드·누트라스위트·돌비·고어텍스의 성공 비결… 최종소비재가 아닌 성분을 광고하는 ‘성분 브랜딩’ 전략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성분 브랜딩(ingredient b...

  • HERI
  • 2011.06.27
  • 조회수 8333

[5분경영학] 전직을 성공으로 이끄는 전략

2007-01-19 회사를 옮길 때 예상되는 변화는 기능적·위계적·문화적 축으로 분석 가능…의미 창출을 단단히 하고 위험을 예상하고 실망을 운명으로 받아들여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이주의 용어 전직(career tran...

  • HERI
  • 2011.06.27
  • 조회수 8142

[5분경영학] 재포지셔닝으로 운명을 바꿔라

2007-10-25 타이레놀·하얀 바나나 우유처럼 소비자의 마음에 틈새를 만들어 파고드는 전략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아스피린을 복용해서는 안 되는 수백만 명을 위해서….” 광고는 이렇게 시작했...

  • HERI
  • 2011.06.27
  • 조회수 81583

[5분경영학] 자동차 ‘순정품’에 얽힌 미스터리

2006-11-23 옵션을 묶음으로 파는 것은 국지적 독점을 통한 이익 극대화 전략…인터넷 커뮤니티의 도토리 판매도 회원들에 대한 독점력 때문에 가능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류우종 기자 ...

  • HERI
  • 2011.06.27
  • 조회수 8943

[5분경영학] 일하기 좋은 기업은 돈을 못 번다?

2008-02-21 직원 만족도 높으면 투자 이익이 작아진다는 신고전파 이론, 이미 현실에 맞지 않아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간단한 계산부터 해보자. 기업의 주가는 이익과 비례한다. 이익은 매출에서...

  • HERI
  • 2011.06.27
  • 조회수 9106

[5분경영학] 인터넷 뉴스는 영영 공짜일까

2006-12-21 신문사들이 공짜로 서비스하자 독자들의 최대지불의사도 0으로 굳어져…이대로 가면 사회적으로도 손실, 전문화된 콘텐츠일수록 유료화 가능성 높아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 사진 윤운식...

  • HERI
  • 2011.06.27
  • 조회수 8184

[5분경영학] 유명한 CEO가 돈도 잘 벌까

2007-01-03 실적이 좋으면 훨씬 높은 연봉 받지만 나쁘면 정상보다 더 많이 깎여…CEO가 유명해지면 단기적으로는 연봉이 오르지만 장기적으로는 하락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

  • HERI
  • 2011.06.27
  • 조회수 9703

[5분경영학] 오너 경영자의 성공 확률은?

2008-03-06 미국 기업에서 증시 상장까지 자리 지킨 창업자는 25%도 안 돼…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하라 ▣ 이원재 한겨레경제연구소 소장 timelast@hani.co.kr 부자가 되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업을 해서 대기업의 최...

  • HERI
  • 2011.06.27
  • 조회수 8364

[5분경영학] 악플이 매출을 키운다?

2006-12-14 기업의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소비자 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바뀌는 마케팅…댓글은 웹이라는 공간에서 퍼지는 입소문, 소비는 능동적 행위로 다시 태어나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

  • HERI
  • 2011.06.27
  • 조회수 8425

[5분경영학] 아파트 광고는 왜 하시나요

2005-12-15 업종의 광고 탄력성이 높고 가격 탄력성이 낮을수록 광고 지출은 늘어나 시장 유지를 위해 광고비 쏟아붓는 미국 맥주회사, 한국 아파트도 그런가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어고노믹스...

  • HERI
  • 2011.06.27
  • 조회수 8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