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재의 5분 경영학]
“먹어봐야만 맛을 아는” 경험재는 일반 재화 시장보다 진입장벽 높아
질레트도 3천억원
쓰고서야 삼중날 면도기 성공, 자장면의 균질성 돋보인다
2005-12-28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새로 이사간 집 문 앞에는 매일매일 피자집과 치킨집 광고전단이 덧붙여진다. 맛을 보지 못했으니 품질은 알 수 없지만, 가격과 양에서만큼은 어느 곳이나 훌륭해 보인다. 전국 체인을 가진 피자집에서는 2만원을 훌쩍 넘을 것 같은 피자가 1만2천원밖에 하지 않는데다, 콜라와 샐러드는 기본이고 어떤 경우에는 치킨까지 서비스로 딸려온다. 하여간 싸긴 정말 싸다.
새 브랜드 위험 감수할 수 있나
피자 재료값이 차이가 나면 얼마나 나고, 맛이 차이나면 얼마나 날까. 이런 생각을 되뇌며 주문해볼까 한 일도 많다. 그러나 막상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누르려고 할 때마다 온갖 근심걱정이 찾아든다. 혹시라도 너무 맛이 없어서 모처럼의 오붓한 식구들과의 저녁식사를 망치면 어쩌나. 기름이 너무 많아서 아이가 먹지 않으면 어쩌나. 너무 짜서 짠맛 싫어하는 아내 입맛을 망쳐 이 황금 같은 시간에 모두 기분이 상해버리면 어쩌나. 역시나 위험이 너무 크다. 언제나 결론은 전국 체인을 갖고 있는 피자집으로 향한다. 결국 돈 만원 더 주더라도 안전한 길을 간다.
배달 음식은 전형적인 경험재(experience good)다. 경험재는 세 가지 특징을 가지는데, 그 첫 번째 특징이 직접 구입해 경험해봐야만 물건의 품질을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를 수집해 품질을 짐작할 수 있는 탐색재(search good)와 대비되는 지점이다. 예를 들어 컴퓨터를 산다면 CPU와 메모리, 하드디스크 등 부품 사양을 하나하나 조사해 품질을 짐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화장품을 산다면, 어느 제품이 피부에 잘 ‘먹을지’ 짐작하는 것은 성분 분석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사서 써보는 수밖에 없다.
![]() |
![]() △ 피자와 같은
경험재는 한번 선택한 브랜드를 계속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어느 피자업체의 자선행사. (사진/
한겨레) |
둘째, 특정한 브랜드는 어떤 소비자에게는 잘 맞지만 다른 소비자에게는 잘 맞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잘 맞지 않았을 때 부작용이 만만치 않은 경우가 흔하다. 기저귀를 보자. 아기들도 체형과 피부가 천차만별이다. 어떤 아기에게 잘 맞는 기저귀가, 어떤 아기에게는 맞지 않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잘 맞지 않는 기저귀는 부모에게 재앙이다. 새기도 하고 습진의 원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부모는 우는 아기를 밤새도록 안고 달래야 할 수도 있고, 심하면 소아과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한 번 맞는 기저귀를 찾고 나면, 아무리 값싸고 질 좋다는 기저귀가 새로 나와도 브랜드를 바꾸기가 쉽지 않다.
셋째, 소비자는 해당 시점, 해당 장소에서 단 한 가지 브랜드만을 사용할 수 있다. 피자를 한 군데서 시키는 게 불안하다고 두 군데에서 한꺼번에 주문해, 이것저것 맛보면서 2배 분량의 저녁식사를 즐길 수는 없다.
경험재의 이런 특징 때문에, 경험재 시장의 진입 장벽(entry barrier)은 탐색재 시장에서보다 높다. 소비자가 품질을 짐작하기 어렵고, 새 브랜드 사용에 따른 위험이 크고, 부분적으로 새로운 브랜드를 사용해보면서 탐색할 수 있는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경험재 시장에 새로운 브랜드가 들어가려면 소비자가 새로운 브랜드를 사용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위험까지도 보상해주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면도기 제조업체 질레트가 삼중날 면도기를 시장에 들여온 과정은, 경험재 시장에 제대로 진입하려면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질레트는 1998년 삼중날 면도기 ‘마하3’를 시장에 최초로 소개하면서, 15개월 동안 3억달러(3천억 원)라는 천문학적 액수의 마케팅 비용을 지출하겠다고 발표한다.
당시 질레트는 이미 ‘센서’ 등의 브랜드로 미국 수동 면도기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었다. 소비자들에게 ‘면도기’를 말해주면 바로 ‘질레트’가 연상될 정도의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 월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업계의 독보적 1위 업체가 신제품을 내놓았으니, 다들 열광할 만도 했는데 말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동 면도기는 직접 써보지 않고서는 자신에게 잘 맞는지 알기 어려운, 대표적인 경험재이기 때문이다.
신규 피자집의 물량공세는 자충수
질레트가 소개한 삼중날 면도기가 기존 면도기보다 외형에서나 품질에서나 확실히 나은 것은 모두가 인정했다. 질레트의 브랜드 파워도 인정했다. 그러나 소비자가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위험이 크다. ‘폼나는’ 면도기를 사용하는 것도 좋지만, 그 제품이 얼굴에 생채기를 낼 가능성이 1%라도 있다면 정말 문제가 아닌가.
그래서 질레트는 사상 유례없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3억달러는 텔레비전 광고와 신문 광고는 물론이고,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인터넷 옥외광고판 광고에다 소비자 대상 프로모션까지 뿌려졌다. 그런 마케팅 공세를 펼치고 나서야 질레트 삼중날 면도기는 시장을 뚫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배달 피자나 치킨은 먹어보기 전에는 그 맛을 알 수 없다. 소비자는 보수적이 되고, 신규 진입자들은 “먹어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서비스를 자꾸 제공한다. 가격 할인은 기본이다. 콜라같이 품질이 예측 가능한 공산품을 서비스로 내세우는 것도 약발이 먹힐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신규 진입 피자집이 대형 브랜드의 피자집처럼 “피자 한 판 시키면 한판 더 드립니다”며 경쟁하려고 든다면? 소비자의 위험을 증대시키는 자충수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는 어느 동네에서나 배달 음식 시장의 강자인 중국집이 부럽다. 팔도강산 모두에서 대체로 균질하다는 공감을 얻고 있는, 그래서 경험재의 늪에서 조금 비껴서 있는, 자장면을 갖고 있지 않은가.
이주의 용어
경험재(experience good)
탐색재(search good)
진입장벽(entry barr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