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우주
일상의 번잡스러움이 싫어질 때면 인터넷을 뒤져 우주 사진을 찾곤 한다. 그 짧고 한가한 일탈이 내게 주는 위안은 크다. 안개가 휘감은 전설 속 산봉우리 모양의 ‘엔지시(NGC) 6357’이란 별구름(성운)은 막 태어난 푸른 아기별을 품었다. 며칠 전 나사가 공개한 ‘헬릭스’라는 별구름은 수명을 다한 별이 제 몸을 이뤘던 모든 성분을 우주로 비산시키며 사라져 가는 모습이다. ‘엔지시 6357’은 지구에서 8천 광년, ‘헬릭스’는 650광년 떨어져 있다. 그러니 사진 속 두 별구름은 지금이 아닌 8천년 전, 650년 전 모습들이다. ‘헬릭스’ 성운만 봐도 고려 공민왕 시절, 유럽에선 영국과 프랑스가 한창 백년전쟁을 벌이고 있을 무렵의 옛얼굴이다.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 삶과 죽음, 빛이 몇 억년을 가야 하는 거리의 막막함, 시간과 공간이 뒤엉키고 넘나드는 사건들 ….
화담 서경덕의 우주적 상상은 이미 15세기에 20세기에야 나온 ‘빅뱅 우주론’을 정확히 짚어냈다. 화담은 처음도 끝도 없는 태허(우주 생성 이전의 상태)에 하나의 기(氣)만 있었고, 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약동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세상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그대로 빅뱅론이다. 스탠리 큐브릭도 1968년에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시공의 상상을 담았다. 우주여행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리고, 막 태어나는 아기를 보면서 죽어가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물론 아기는 주인공 자신이다.
요즘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주요국들의 ‘우주전쟁’이 뜨겁다. 미사일, 핵탄두, 항공우주군이란 말이 난무한다. 그들에게 우주는 단지 확장된 싸움터일 뿐이다. 현실에선, 브라이언 그린이 쓴 <엘리건트 유니버스>(우아한 우주)는 보이지 않는 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2007.08.31 11:54
일상의 번잡스러움이 싫어질 때면 인터넷을 뒤져 우주 사진을 찾곤 한다. 그 짧고 한가한 일탈이 내게 주는 위안은 크다. 안개가 휘감은 전설 속 산봉우리 모양의 ‘엔지시(NGC) 6357’이란 별구름(성운)은 막 태어난 푸른 아기별을 품었다. 며칠 전 나사가 공개한 ‘헬릭스’라는 별구름은 수명을 다한 별이 제 몸을 이뤘던 모든 성분을 우주로 비산시키며 사라져 가는 모습이다. ‘엔지시 6357’은 지구에서 8천 광년, ‘헬릭스’는 650광년 떨어져 있다. 그러니 사진 속 두 별구름은 지금이 아닌 8천년 전, 650년 전 모습들이다. ‘헬릭스’ 성운만 봐도 고려 공민왕 시절, 유럽에선 영국과 프랑스가 한창 백년전쟁을 벌이고 있을 무렵의 옛얼굴이다.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것들, 삶과 죽음, 빛이 몇 억년을 가야 하는 거리의 막막함, 시간과 공간이 뒤엉키고 넘나드는 사건들 ….
화담 서경덕의 우주적 상상은 이미 15세기에 20세기에야 나온 ‘빅뱅 우주론’을 정확히 짚어냈다. 화담은 처음도 끝도 없는 태허(우주 생성 이전의 상태)에 하나의 기(氣)만 있었고, 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약동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세상이 열렸다고 주장했다. 그대로 빅뱅론이다. 스탠리 큐브릭도 1968년에 만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시공의 상상을 담았다. 우주여행에서 돌아온 주인공은 갑자기 나이가 들어버리고, 막 태어나는 아기를 보면서 죽어가는 게 마지막 장면이다. 물론 아기는 주인공 자신이다.
요즘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등 주요국들의 ‘우주전쟁’이 뜨겁다. 미사일, 핵탄두, 항공우주군이란 말이 난무한다. 그들에게 우주는 단지 확장된 싸움터일 뿐이다. 현실에선, 브라이언 그린이 쓴 <엘리건트 유니버스>(우아한 우주)는 보이지 않는 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2007.08.31 1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