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사회적 약자 위한 사회 안전망과 생태전환 복지정책 필요
불안정·이주노동자 품으려면 사회복지 개념도 바뀌어야
분절화된 노동, 기업별 교섭체계 등 구조적 노동시장 과제 해결부터
정부·시장·노동 주체별 혁신 노력까지 사회 다방면 노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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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한 여성이 ‘지금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피켓을 들고 시민행렬 속에 서 있다. 크리에이티브커먼즈 제공


기후위기 시대에 복지국가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지금까지 환경과 사회복지는 별개의 영역으로 간주돼 이 둘 사이의 연결점을 찾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 직격탄을 맞은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회 안전망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실이 드러나며, 재난 위기 상황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경제, 산업 시스템의 전환 과정도 마찬가지다.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탄소세 적용은 저렴한 고탄소에너지를 사용하는 저소득층의 세금 가중으로 이어진다. 이렇듯 생태전환의 과정에서 사회 취약계층을 비롯해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 복지국가는 어떤 역할을 해야할까.

지난 26일 서울 중구 여성플라자에서는 정의로운 생태전환과 새로운 복지국가 실현 방안을 모색하는 ‘2021 한국사회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사회정책학회와 한국노동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공동 주최로 인권과 노동, 복지 정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의로운 생태전환 실현을 위한 과제를 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기조발제자로 나선 김병권 정의정책연구소장은 “탈탄소경제사회에서는 경제복지와 생태복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목표와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소장은 이를 위해서는 현재 성장 중심으로 경제를 추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벗어나, 지구 생태적 한계 안에서 성장과 경제활동을 하는 탈탄소, 생태경제로의 전환이 우선되야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복지서비스는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힘입어 발전됐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곧 생태파괴로 이어지는 미래에는 경제와 생태 복지서비스는 서로 대립되는 관계에 놓이게 된다. 과거에 경제성장과 뗄래야 뗄 수 없었던 복지에 대한 개념이 기후 위기 시대에는 바뀔 수밖에 없단 얘기다.

김소장은 “탈탄소경제 전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환 과정에서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의 반발과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옥스팜은 전세계 상위 1% 부자가 탄소배출의 15%의 책임이 있고 상위 10% 부자는 52%의 책임을 져야 하는 반면, 전세계 소득 하위 50%의 책임은 7%에 불과하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부자들일수록 자연자원을 더 많이 활용해 탄소 배출이 많고, 기후위기를 피할 수 있는 수단도 많지만, 저소득층의 형편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향후 녹색전환 과정에서 탄소배출 책임이 적은 저소득층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실제로 2019년 프랑스에서는 정부가 탄소세 부과의 명목으로 실행한 유류세 인상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대규모 시위(노란조끼 시위)가 있었다. ‘더 배출한 사람이 더 책임지는’ 정의로운 전환의 논의가 나오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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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중구 여성플라자에서 ‘2021 한국사회정책학회 춘계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사회정책학회와 한국노동연구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공동주최한 이날 행사에서는 정의로운 생태전환과 새로운 복지국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한국정책학회 유튜브 제공


김 소장은 “생태전환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불평등의 주된 피해자들의 충격을 완화하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고, 전환과정에 동참을 유도하는 사회복지 정책이 필요하다”며 저소득층과 중소득층을 위한 생태전환 복지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한편에선 생태위기 시대 복지국가의 새로운 구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복지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자로 나선 한동우 강남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현재 임금노동과 국민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복지체계에서는 생태전환에 맞는 복지정책을 구상하기 어렵다”며 디지털경제로 인해 늘어나는 불안정 노동자와 이주민 노동자 등 변화하는 노동환경에 맞는 복지체계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성장은 저렴한 자연 자원과 저렴한 노동이 이끌어왔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탈탄소경제 전환에서 고갈되는 자연자원에 대한 논의는 많지만, 저렴한 노동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창근 민주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시장 내 구조적인 불평등 격차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정의로운 전환과 복지체계 설립은 실현되기 어렵다”며 분절화된 노동시장의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과거 조선업 구조조정 사례를 들며, 탈석탄 전환 과정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노동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불안정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해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2014년부터 18년까지 진행된 조선업 구조조정 당시, 하청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3배 가량 더 많이 해고됐지만 정부의 고용유지 지원 정책은 다양한 하청구조 속에 존재하는 불안정노동자까지 닿지 못했다.

이 연구위원은 “구조화되고, 분절화된 노동시장 속에서 기업 단위 교섭체계는 다양한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노동조합들의 충분한 참여를 보장하는 포용적 시장체계로의 전환이 우선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대표는 “자본주의는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서 여성의 노동과 돌봄의 가치에 기대어 성장해온 게 사실”이라고 짚고, “여성돌봄노동을 포함해 사회를 유지하고 보수하는 필수노동자를 포용하기 위해서는, 탈성장 탈탄소 경제는 사회구성원에 대한 돌봄 중심 사회로 가치가 전환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론자들은 정의로운 전환과 복지체계의 재설계를 위해서는 정부의 아래서부터 정책 수립과 시장의 탈성장 탈탄소 가치 변화 외에 노동, 시민사회 주체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창근 연구위원은 “지금 노동시장은 기후위기가 현실화되면 결국 저임금 노동자들이 먼저 희생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의로운 전환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구조적 개혁 외에도, 정부, 사용자뿐 아니라 노동계의 노력도 동반되야 한다”며 주체들의 혁신을 강조했다.

장이정수 대표도 “과거 정부의 억압 속에서 국내 시민사회 운동이 환경, 인권, 여성 등 영역별로 분절화된게 사실”이라며 “아래서부터의 전환 논의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에서도 환경과 노동, 환경과 복지 등 연대의 지점을 찾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기조강연 및 기획세션에 앞서 진행된 특별좌담에서는 기후위기와 인권, 복지국가를 주제로 이창곤 한겨레신문 선임기자가 사회를 맡아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와 한상진 울산대 사회복지학 교수가 생태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인권과 생태학적 관점의 연계 필요성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이 진행됐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팀장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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