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 뉴스
[더 나은 사회]

사회혁신 역량 개발 프로그램 줄이어
‘아쇼카 U 체인지메이커 캠퍼스’ 등
글로벌 네트워크 구성 움직임 활발
기업들도 혁신 생태계 지원에 적극적

지난해 9월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IF 페스티벌'에 한양여대 사회혁신 동아리 ‘드림온’이 참가해 한복 스니커즈를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있다.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 제공
지난해 9월 신촌 연세로에서 열린 ‘IF 페스티벌'에 한양여대 사회혁신 동아리 ‘드림온’이 참가해 한복 스니커즈를 외국인에게 소개하고 있다.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 제공

# 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에는 직육면체 기둥 하나가 행인들의 발길을 잡는다. 2년 전 이곳에 세워진 이 설치물은 ‘대트리스’라 불리는 소액기부 플랫폼이다. 후불 교통카드를 갖다 대면 1회당 500원이 기부되는 방식이다. 기부금은 테트리스 블록으로 시각화돼 기부자들이 한눈에 알아보기 편하다. 한양대생 최규선씨가 ‘사회적기업가 정신’ 수업을 수강하다가 떠오른 사회혁신 아이디어가 출발점이 됐다.

# 꽃분홍 한복 저고리와 스니커즈가 만난다면? 한양여대 동아리 ‘드림온’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구두 장인과 협업해 한복 저고리를 모티브로 한 스니커즈를 제작했다. 이들은 지난해 에스케이(SK) 행복나눔재단의 사회혁신 동아리 모임 ‘루키’(Lookie)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전통적 가치를 확산시킬뿐더러, 대학이 자리한 성수동 지역 산업과 협업할 수 있는 아이템을 개발했다는 점에서 유독 눈길을 끌었다.

국내 대학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게 공무원이나 민간기업 취업률이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각 대학 경력개발센터의 직업교육 프로그램들도 학생들의 취업을 목표로 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대학가에도 새로운 변화 바람이 조심스레 불고 있다. 사회혁신이 중요한 열쇳말로 등장하면서, 사회문제 해결에 보탬이 되는 사회혁신 역량을 개발하는 프로그램이 잇달아 늘어나고 있어서다. 한양대는 지난해부터 학부에 ‘사회혁신융합전공’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들이 사회혁신 관련 이론을 배우고 사회문제 해결 아이디어를 시나리오를 통해 적용하며, 실제로 사회혁신 기업에서 실습도 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설계돼 있는 게 이 과정의 특징이다. 대트리스 프로젝트도 이 교육과정의 전신인 ‘사회적기업가 정신’ 수업에서 싹텄다.

한양여대 동아리 ‘드림온’이 제작한 한복 스니커즈. 이들은 지난해 에스케이(SK) 행복나눔재단 사회혁신 동아리 모임 루키로 활동하며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사업 아이템을 개발했다.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 제공
한양여대 동아리 ‘드림온’이 제작한 한복 스니커즈. 이들은 지난해 에스케이(SK) 행복나눔재단 사회혁신 동아리 모임 루키로 활동하며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사업 아이템을 개발했다.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 제공

다른 대학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화여대는 지난해 9월 일반대학원 사회적 경제 석·박사 협동과정을 신설했다. 사회복지학·경영학·사회학·경제학 등 9개 전공 분야 교수 14명이 참여해 사회정책연구, 조직개발과 혁신 등 연계 과목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 이해, 사회적 경제 실전 창업 등 사회적 경제에 특화된 강의를 진행한다. 사회적 경제 관련 이슈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현장 활동에 적용할 수 있도록 이론과 실천 현장을 연계하는 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밖에 숭실대와 카이스트는 사회적기업에 특화된 사회적기업 전공 석사과정과 사회적기업가 엠비에이(MBA) 과정을, 한신대와 성공회대는 협동조합 전문가를 양성하는 사회혁신경영대학원 사회적경제학과와 협동조합경영학 석·박사, 사회적경제대학원 협동조합 엠비에이 과정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지난해 12월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열린 제1회 사회혁신 교육자 네트워크 콘퍼런스 모습. 에스케이(SK) 행복나눔재단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대학의 사회혁신가 육성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사회혁신 교육 관련 대학교수, 연구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 제공
지난해 12월 연세대 백양누리에서 열린 제1회 사회혁신 교육자 네트워크 콘퍼런스 모습. 에스케이(SK) 행복나눔재단이 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대학의 사회혁신가 육성 현황과 전망’을 주제로 사회혁신 교육 관련 대학교수, 연구자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 제공

44개 대학 포함된 ‘체인지메이커 캠퍼스’

대학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발길도 분주하다. 대학 네트워크를 통해 사회혁신 정보를 교류하고 대학 자원을 공유하는 일도 새로운 트렌드로 꼽힌다. 무엇보다 대학은 다양하고 풍부한 지적·인적 자원의 집합체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기업과 달리 이익 창출이나 비용 절감의 압박도 덜한 편이다. 대학이 소셜벤처나 사회적기업 등 지역 내 기업들은 물론 커뮤니티 기관들과 협업해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중심지로 떠오르는 이유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경우, 스탠퍼드, 버클리 등 인접한 대학과의 활발한 교류를 성공 요인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아쇼카 U 체인지메이커 캠퍼스’는 글로벌 비영리단체인 아쇼카가 운영하는 사회혁신 생태계를 갖춘 글로벌 대학들의 네트워크다. 아쇼카는 2008년부터 아쇼카 U 체인지메이커 캠퍼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아쇼카 U에 가입하려면 아쇼카 담당자, 아쇼카 U 대학 교수, 아쇼카에서 매년 사회혁신리더로 선정되는 아쇼카펠로 등으로 구성된 패널들로부터 2년여에 걸친 까다로운 심사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아쇼카 U 대학들은 매년 열리는 사회혁신포럼을 통해 회원 대학들과 사회혁신 관련 자원을 공유할 수 있다. 현재 아쇼카 U 체인지메이커 캠퍼스엔 미국의 브라운·코넬·듀크대를 비롯해 싱가포르경영대학 등 전세계 44개 대학이 포함돼 있다. 한국에선 올해 한양대가 동아시아 최초로 가입했다. 권보경 아쇼카한국 매니저는 “대학은 사회혁신 관련 지적·인적 자원이 풍부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협력할 수 있는 기회도 많기 때문에 사회혁신을 확산시키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기업들도 대학 내 사회혁신 인프라를 마련하는 데 애쓰는 중이다. 에스케이 행복나눔재단은 지난해부터 대학교수 및 연구자들의 사회혁신 연구와 인재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사회혁신 교육자 네트워크’(ENSI·Educators’ Network for Social Innovation)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참여 대학은 카이스트·명지대·서울대·숭실대·연세대·이화여대·한양대 등 10곳에 이른다. 올해는 ‘사회혁신과 인재양성’을 주제로 한 연구 공모사업을 진행 중이다. 6월부터 1년간 관련 연구 활동을 지원하고, 심사를 거친 연구물은 주요 학술지와 출판물을 통해 공유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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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에 세워져 있는 소액기부 플랫폼 ‘대트리스'. 후불 교통카드를 접촉하면 1회 500원의 기부금이 적립된다. 적립된 기부금은 지역 복지단체 후원이나 교내 소셜벤처 지원금으로 사용된다. <한겨레> 자료사진

특히 교육자뿐 아니라 대학생들이 직접 사회혁신 생태계 조성에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눈에 띈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루키는 대학 동아리를 중심으로 대학생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재단에서 제공하는 교육과 사회적기업가 멘토링 외에 대학 동아리에서 직접 프로젝트에 필요한 교육들과 멘토들을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조성현 행복나눔재단 매니저는 “루키는 자발적 모임인 동아리라는 접점을 활용해 대학생들이 사회혁신을 좀더 쉽게 이해하고 교내외 사회혁신 네트워크를 주도적으로 만들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전국 대학 10곳의 동아리 10개 팀으로 시작된 루키는 현재 대학 19곳의 20개 팀으로 확대된 상태다.

한양대 ‘사회적기업가정신' 수강생과 소셜벤처 기업가들이 ‘2016 한양-크레비스 소셜벤처 네트워킹대회'에 참가해 사회혁신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양대 제공
한양대 ‘사회적기업가정신' 수강생과 소셜벤처 기업가들이 ‘2016 한양-크레비스 소셜벤처 네트워킹대회'에 참가해 사회혁신 아이디어를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한양대 제공

“창업과 같은 양적 성과에 집착 말아야”

하지만 우려 섞인 시선도 있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사회혁신 교육 프로그램들이 자칫 취업이나 창업을 위한 또 다른 경력개발 경로로 변질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는 게 뼈대다. 관련 활동을 체험한 학생들 가운데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해 루키에서 활동했던 경희대생 유재경(시각디자인학과)씨는 “교내외 몇몇 소셜벤처 교육기관들이 성과를 올리기 위해 단기간 내 창업하라고 독려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창업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법을 알려주고 그 과정을 인정해주는 교육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현상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도 “이제 막 시작된 사회혁신 교육들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창업률과 같은 양적 성과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며 “청년들의 사회혁신 가치관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질적 성과지표를 개발해 사회혁신 교육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운영·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은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ekpar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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