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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배우고 받아들이는 자세로 인텔의 전설적인 CEO가 된 앤디 그로브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던 시절이 있었다. 정보 검색이 어려운 시절이었다. 누가 몇 년에 태어났고 어떤 일의 자초지종은 어떻게 됐는지, 그런 지식을 필요할 때 턱턱 꺼내놓는 사람이 대접받았다. 대답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던 시절이었다.

이제 회의 중 다들 기억나지 않는 게 있다면, 그저 한마디만 하면 된다. “가서 인터넷 한번 검색해봐.” 지금 중요한 능력은 질문할 줄 아는 능력이다. 즉 인터넷 검색창에 어떤 단어를 넣어야 원하는 답이 나올지를 생각해내는 능력이다. 제대로 된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 중 새로운 것을 잘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 그게 이 시대 성공하는 사람의 기본 소양이다. 그런 점이라면,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앉아서도 배우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던 인텔의 전설적인 CEO 앤디 그로브에게서 한 수 배울 만하다.

‘배움 경영’으로 세계 최고 자리에


△ ‘인텔 인사이드’라는 전략을 성공시킨 앤디 그로브.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배우려는 자세가 그의 성공 비결이었다.(사진/ AFP/ MARIO TAMA)

때는 1991년, 미국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수업시간이었다. 한 강사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질문 내용은 이렇게 흘러갔다.
“한 CEO가 그 산업의 유력 경영자들이 모이는 중요한 행사에서 연설을 하려고 합니다. 연설 내용을 세 가지 중에서 골라야 합니다. 첫째, 아주 매력적이고 정교해 보이지만 실전에 투입된 일은 없는 신기술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둘째, 현재 갖고 있는 기술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다는 내용입니다. 셋째, 두 가지 모두 하지 않고 판단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내용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강단 위에 선 강사는 인텔의 전설적인 CEO 앤디 그로브였다. 그의 질문은 실화였다. 그것도 지나간 일이 아닌, 며칠 뒤에 실제로 그가 내려야 할 의사 결정이었다. 그 역시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전설적인 CEO가 이제 막 경영학을 배우려고 하는 초보자들에게, 기업과 산업의 운명을 바꿀지도 모르는 중요한 경영 의사 결정에 대해 의견을 구한 것이다.

‘인텔 인사이드’라는 전략을 성공시키며 인텔을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앤디 그로브는 이렇게 질문을 던질 줄 아는 기업인이었다. 자기의 결정을 전력을 다해 설득하는 열정적인 경영자는 많지만, 귀를 열어놓고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배우려는 겸손한 CEO는 정말 드물다. 앤디 그로브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도 자세를 낮추고 배우려 했다. 그리고 그 ‘배움 경영’이 인텔을 세계 최고 자리에 올려놓았다.
앤디 그로브가 내세우는 중요한 두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새로운 문제에 부닥치면 이전에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잊어버리라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새로운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80년대 중반 인텔은 커다란 위기를 맞았다. 메모리 반도체로 승승장구하던 인텔이 새로 나타난 일본 경쟁사들과의 가격 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1984년 인텔의 이익은 2억달러에 육박했는데, 1985년에는 200만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인텔 직원들은 모두가 메모리 반도체로 성공했고 그 기술에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본 기업에 뒤진다는 상황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이때 인텔의 2인자이던 앤디 그로브는 당시 CEO 고든 무어에게 물었다. “만일 주주들이 우리를 내쫓고 새로운 경영진을 들여온다면, 새 경영진은 무엇을 할 거라고 생각합니까?” 고든 무어가 대답했다. “회사의 역사를 생각지 않고 모든 것을 확 바꿔놓겠지.” 그러자 앤디 그로브의 명언이 나온다. “그럼 우리가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하는 게 어떨까요?”
져야 하는 논쟁에서 이기지 말라

둘째 원칙은 져야 하는 논쟁에서 이기지 말라는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신기술인 RISC가 처음 나왔을 때, 기술자들은 열광했다. 패션으로 따진다면 아주 고급스럽고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기술이 RISC였다. 여기에 매료된 앤디 그로브는 인텔의 기존 주력 기술인 CISC를 버리고 RISC로 방향을 잡으려 했다. 그때 인텔의 오래된 기술자 두 명이 모든 보고 체계를 무시하고 회장이던 앤디 그로브에게 곧장 달려간다. 그들은 인텔에 가장 많은 돈을 가장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벌어다줄 기술은 CISC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RSIC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유행이라는 게 그들의 판단이었다. 그들이 제시한 모든 근거를 검토한 앤디 그로브는, 두 기술자의 설득에 RISC를 포기했다.

나중에 앤디 그로브는 이렇게 회고한다. “나는 회사를 거의 망쳐놓을 뻔했다. 신기술의 유혹에 홀렸던 모양이다. 나는 그 두 기술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앤디 그로브는 196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기술자로 일하던 그가 인텔에 경영진의 일원으로 합류한 것은 1968년이었다. 인텔에 합류하고 난 직후 그는 “이런, 경영을 맡은 내가 경영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잖아!”라고 깨달았다. 그의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각종 경영학 저널을 빼놓지 않고 읽고 토론을 즐겼다. 신문 칼럼이나 강의나 책을 통해 자신이 배운 것을 끊임없이 정리해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세상은 분업구조로 이뤄져 있다. 음악 비평가는 작곡을 하지 않고, 축구 해설가는 경기장에서 뛰지 않는다. 그러나 앤디 그로브는 달랐다. 그는 비평하면서 작곡했고, 경기장에서 뛰면서 해설도 했다.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하면서, 받은 피드백을 경영 의사 결정에 활용한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끝없이 배우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신은 금방 아집이 된다. 질문할 줄 아는 열린 마음이 점점 더 중요한 경쟁력이 되어가는 시절이다.

한겨레21 2007/06/28 6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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