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이주의 용어
성분 브랜딩(ingredient branding)
동네 커피숍 테이블 위, 투박한 설탕통이 놓여 있던 그 자리를 언제부터인가 인공감미료가 차지했다. 칼로리가 적어 다이어트 제품이라고 알려진 인공감미료 말이다. 그 이름도 화려하다. 누트라스위트(NutraSweet), 스위트 앤 로(Sweet’N Low) 같이 외우기도 힘들 정도로 멋진 이름들은 멋있게 디자인돼 작고 예쁜 컬러 포장지에 새겨져 있다. 디자인에 돈 깨나 들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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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광고비도 적지 않게 지출하는 모양이다. 누트라스위트 같은 감미료는 그 광고가 칸광고제에서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광고 마케팅에 그만큼 투자를 많이 했다는 얘기다.
몸에 좋은 감미료, 대대적인 광고 공세
그런데 궁금했다. 설탕이나 밀가루 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어느 회사가 자동차 부품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돈을 많이 들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가?
그럴 리 없다. 설탕, 밀가루, 자동차 부품 같은 제품은 일반 소비자에게 많이 팔리는 최종 소비재가 아니다. 무언가 다른 제품, 즉 과자나 빵이나 자동차 같은 최종소비재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성분'이다. 그리고 인공감미료도 주로 다른 제품의 성분으로 사용된다.
이렇게 성분 성격이 강한 제품은 보통 한정된 기업만을 수요자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시장에서는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브랜드 알리기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브랜드 이름 디자인이나 광고에 그리 투자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통념을 깨고 공격적 성분 브랜딩(ingredient branding) 전략을 펼쳐 성공한 제품이 바로 인공감미료 누트라스위트이다. 성분 브랜딩 전략은, 이렇게 제품이 최종소비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으며 다른 제품의 성분으로만 존재하면서도 스스로 브랜드로서 힘을 갖도록 만드는 전략을 말한다.
누트라스위트는 처음 나왔던 1983년만 해도 100% 완전한 성분 제품이었다. 제품은 모두 청량음료 등 식품에 첨가하는 감미료였고, 식탁용 감미료는 아예 내놓지 않았다. 즉, 소비자는 누트라스위트라는 제품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었다. 펩시콜라나 코카콜라를 통해서만 누트라스위트를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누트라스위트는 '성분의 브랜드화'(branded ingredient)라는 구호를 내걸고 공격적 브랜딩 전략을 펼친다.
첫 단계로 누트라스위트는 일반 소비자 대상의 파상적인 광고 공세를 펼친다. 누트라스위트에만 연간 3천만달러(300억원)가량의 광고비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 두 번째로 구매자와 거래할 때 성분 브랜드를 제품에 표기하도록 유도했다. 우선 감미료로 누트라스위트를 100% 사용하며 다른 제품을 섞지 않는 업체에게 가격을 40%나 깎아줬다. 여기다 그 업체들의 제품에 ‘누트라스위트’ 로고를 찍도록 하고, 제품 광고에 누트라스위트를 함께 넣도록 했다. 1986년 조사 결과 미국 소비자 가운데 98%가 누트라스위트라는 상표를 알고 있었다. 엄청난 투자를 벌여 광고한 만큼 브랜딩 효과도 대단했던 것이다.
1983년 누트라스위트 출시 당시 주요 고객은 콜라 회사들이었다. 미국 청량음료 시장은 코카콜라와 펩시콜라가 양분하고 있었는데, 누트라스위트 이전까지는 사카린이 이 두 콜라 제품의 감미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누트라스위트는 아스파탐이라는 신물질에 기반한 감미료였다. 이게 사카린보다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가격이 비싸서 식음료 제조업체들이 선뜻 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분 브랜드화 이후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당시 미국에서 웰빙 바람이 불면서 이미 사람들은 칼로리가 낮고 건강에 덜 나쁜 식음료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콜라는 모두 콜라일 뿐, 건강에 덜 나쁜 콜라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때 문득 누트라스위트의 광고가 쏟아져나왔다. 소비자들은 콜라 표면에 붙어 있는 ‘칼로리 낮고 사카린이 없는 신형 인공감미료’ 누트라스위트 로고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 만에 아스파탐 감미료 누트라스위트는 그전에 사카린이 차지하던 자리를 완전히 대체했다.
누트라스위트는 콜라뿐만 아니라 아이스크림, 빵 등 300여 가지 제품에 누트라스위트 로고를 명시하게 했다. 그 결과로 출시 6년 만에 8억5천만달러(8500억원)의 매출과 1억8천만달러(1800억원)의 이익을 내는 대성공을 거뒀다.
소비자의 마음에 먼저 다가서기
누트라스위트 이후 성분 브랜딩은 많은 '성분' 제조업종에서 일반화됐다. 인텔의 펜티엄 프로세서도 대표적 성분 브랜딩 전략을 썼다. 유명한 ‘인텔 인사이드’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소비자가 직접 프로세서를 고를 일이 거의 없는데도, 인텔은 자신들의 프로세서를 쓰는 컴퓨터 표면이나 컴퓨터 광고에 반드시 인텔 프로세서가 들어가도록 계약을 맺으면서 엄청난 광고비를 썼다. 결과적으로 인텔은 프로세서 분야의 선두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오디오에서 흔히 보는 돌비 잡음 제거 시스템, 고어텍스 방수 섬유 등도 마찬가지로 성분 브랜딩에 성공한 사례다.
일반 소비자들이 잘 모르는 제품이라고 해서 브랜딩 전략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럴수록 선제적이고 공격적 브랜딩 전략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경쟁자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을 때, 소비자의 마음에 먼저 다가가서 강력한 브랜드의 깃발을 꽂아둘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오솔길은 먼저 발자국을 찍는 사람이 임자가 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