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유지를 위해 광고비 쏟아붓는 미국 맥주회사, 한국 아파트도 그런가
▣ 이원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timelast@seri.org
어고노믹스 디자인, 그녀의 프리미엄, 밸류 트렌드 세터….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을 때, 나는 공중파 방송의 황금 시간대 광고를 독점하다시피 한 아파트 광고들에 압도당했다. 세련된 화면과 현란한 광고 카피에다 초일류 광고모델들까지, 그 모두가 예술이었고 감동 자체였다.
그 감동을 곧 궁금증이 뒤따랐다. 건설회사는 아파트를 팔아 얼마나 남기에 저렇게 풍족한 광고비를 쓰는 것일까? 어떤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기에 타깃 광고를 하지 않고 전 국민이 시청하는 황금 시간대에 광고를 할까? 광고를 보고 아파트 구입을 결정하는 소비자가 있을까? 의문은 꼬리를 물었고,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를 찾기에 이르렀다.
광고 보고 아파트 사는 사람이 있을까
![]() |
![]() △ 아파트 광고는 정말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한 전략인가. 다양한 브랜드의 아파트
광고. |
기업 광고비 지출의 적정성을 따지는 지표로는 광고 탄력성(advertising elasticity)이 있다. 광고 탄력성은 1952년 코펜하겐 비즈니스 스쿨(덴마크)의 경제학자 아르네 라무센에 의해 소개됐다. 특정 제품에 대한 광고 지출이 변하는 데 따라 수요가 얼마나 민감하게 바뀌는지를 측정하는 개념이다. 광고 탄력성이 높으면 광고비 지출에 따른 매출 증가 효과가 더 크다. 광고 탄력성의 기초가 된 개념인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은 가격 변화에 따른 수요 변화가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가격 탄력성이 높으면, 가격 인하에 따른 매출 증가 효과가 더 크다.
광고 효과는 광고 탄력성이 높을수록 크고, 가격 탄력성이 낮을수록 더 크다. 광고 탄력성은 광고의 매출 효과를 측정하고 가격 탄력성은 그 매출 추가에 따른 이익 증가 효과를 따진다. 가격 탄력성이 낮은 제품은 주로 마진이 높은 기업이다. 매출이 늘어나는 데 따른 이익이 크게 마련이다.
미국 경영학자들은 이 규칙이 여러 가지 업종에서 증명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형 할인점 식품매장이나 동네 대형 할인마트에 해당하는 미국 슈퍼마켓을 보자. 여러 연구에 따르면 미국 슈퍼마켓의 광고 탄력성은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매우 낮은 0.1에서 0.3 수준이다. 광고비 지출을 1% 늘릴 때 매출은 0.1~0.3% 정도만 늘어난다는 얘기다. 가격 탄력성은 매우 높아서, 가격이 1% 내릴 때 매출이 10% 정도 올라간다. 가격 탄력성이 높으니 마진이 박하다는 뜻이고, 광고 탄력성이 낮으니 광고비의 매출 증대 효과가 낮다는 뜻이다. 당연히 광고비 지출은 매우 적을 수밖에 없다. 미국 슈퍼마켓의 광고비 지출 비중은 매출의 1~3%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편의점의 경우에는 광고 탄력성이 훨씬 더 낮아진다. 편의점을 찾는 소비자들은 밤이 너무 늦었거나 멀리 가기가 귀찮아서 찾아오는 것이므로, 광고에 따라 소비 행태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라 광고 탄력성은 0이 나오기도 한다. 이게 편의점이 광고를 거의 하지 않는 이유다. 품질이 아닌 이미지를 파는 패션상품은 전통적으로 광고 탄력성이 높다. 그래서 전형적인 패션 청바지의 경우 광고비 지출이 매출의 약 10~20%로 높은 편이다. 세탁용 세제도 제품을 개봉해 눈으로 품질을 확인하기가 힘든 특성 때문에 광고 탄력성이 높은 제품이다. 세제의 광고비 지출은 매출의 30% 정도가 된다고 한다.
미국에서 광고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제품이 맥주다. 미국 최고 인기 스포츠인 프로 미식축구 결승전인 슈퍼볼 중계 시간은 늘 연간 전국 최고 시청률을 넘보는 황금 광고 시간대이기도 하다. 슈퍼볼 다음날이면 신문에는 올해 그 비싼 시간을 사들인 광고들에 대한 품평회가 벌어진다. 그때 절대로 빠지지 않는 게 맥주회사들이다. 슈퍼볼 중계 시간에 주요 맥주회사들은 반드시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는 광고를 긴 시간 동안 내놓곤 한다.
맥주광고, 협력적 경쟁의 신호
그런데 그 광고 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맥주의 광고 탄력성을 조사하면 0.1~0.2 정도가 나온다. 이를 포함해 분석하면 적정한 광고 지출액은 매출의 4% 정도가 된다. 그런데 앤하우저 부시(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 같은 대형 맥주회사들의 경우 실제로는 매출액의 10% 정도를 광고에 지출한다. 또 맥주 광고를 본 소비자 행동을 조사해보면, 광고가 맥주 소비를 늘리는 효과는 있지만 광고주의 브랜드에 대한 소비를 늘리지는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황금 시간대를 사들여 광고하는 회사들은 그렇지 않은 회사들의 광고를 대신 해주고 있는 셈이다. 이래저래 대형 맥주회사들이 광고비를 과다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슬론스쿨의 로버트 핀다익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맥주시장 같은 오래된 전통 산업에서는 선두주자들 사이에 과다광고를 통해 시장 질서를 유지하려는 암묵적 규칙이 형성돼 있다. 맥주라는 상품의 특성상 기술 개발을 통한 제품 혁신으로 경쟁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가격 경쟁을 시작하면 업계 전체의 수익률이 낮아지고 생산성 낮은 업체가 퇴출되는 유혈극이 벌이지기 쉽다. 어쩔 수 없이 시장 선두주자들은 일정 액수 이상의 광고 지출로 시장 규모를 유지하면서, 후발주자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이익을 만들어준다. 맥주회사들은 협력적 경쟁을 펼치자는 신호를 서로에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아파트의 광고 탄력성을 조사한 연구 결과는 아직 없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브랜드 아파트’ 신드롬이 일어나면서 광고비 지출이 크게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지출이 정말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한 전략일까? 협력적 경쟁을 도모하자는 은밀한 눈짓은 아닐까?
이주의 용어
가격 탄력성(price elasticity)
광고 탄력성(advertising elasticity)